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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루카9,43ㄴ-45)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9-25 조회수1,165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9월 25일 토요일

[연중 제25주간 토요일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루카9,43-45)

 

1독서<정녕 내가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즈카2,5-9.14-15)

내가 눈을 들어 보니손에 측량줄을 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내가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자그가 나에게 예루살렘을 측량하여그 너비와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러 간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때에 나와 이야기하던 천사가 앞으로 나가자다른 천사가 그에게 마주 나와 말하였다. “저 젊은이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일러 주어라. ‘사람들과 짐승들이 많아 예루살렘은 성벽 없이 넓게 자리 잡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내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 벽이 되고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영광이 되어 주리라.

14 딸 시온아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주님의 말씀이다.

15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화답송 예레 31,10.11-12ㄱㄴ.13(◎ 10ㄹ 참조)

◎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

○ 민족들아주님의 말씀을 들어라먼 바닷가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이스라엘을 흩으신 분이 그들을 다시 모으시고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지켜 주시리라.” 

○ 정녕 주님은 야곱을 구하셨네강한 자의 손에서 구원하셨네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산에 올라와주님의 선물을 받고 웃으리라

○ 그때에는 처녀가 춤추며 기뻐하고젊은이도 노인도 함께 즐기리라나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위로하리라그들의 근심을 거두고 즐거움을 주리라

 

복음<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루카9,43-45)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제1독서(즈카2,5-9.14-15)

 

즈카르야는 하까이보다 성전이 주는 혜택을 더 많이 강조한다. 성전을 통하여 유다는 좋은 방향으로 완전히 변형되고, 세상은 이상향으로 바뀔 것이다.

 

제1즈카르야서의 저자는 이 변형을 여덟 개의 환시를 이용하여 묘사한다. 즈카르야서의 환시들은 성경 묵시 문학의 기초를 놓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오늘 독서는 세번째 환시(2,5-9)의 내용이 들어있다. 예언자가 직접 환시의 장면으로 들어간다.

 

 

예언자는 측량줄을 잡고 있는 어떤 사람을 만나는데, 곁에 있던 천사가 다른 천사를 시켜 그 사람에게 예루살렘을 측량할 필요가 없다고 일러준다.

그곳에 주민과 짐승이 너무 불어나서, 경계를 지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친히 불벽이 되어 이 도성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도 있다.


 

"저 젊은이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일러 주어라. '사람들과 짐승들이 많아 예루살렘은 성벽없이 넓게 자리 잡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 벽이 되고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영광이 되어 주리라.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2,7-9.14-15)

 

'내가 에루살렘을 둘러싼 불 벽이 되고~'의 '불 벽'이 무엇일까?  불의 의미가 무엇일까?

 

창세기 3장 24절에도 '하느님께서 사람을 내쫓으시면서 에덴 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는 말씀이 있고, 히브리서 12장 29절에는 "우리의 하느님은 태워버리는 불이십니다" (탈출24,17참조)라는 말씀이 있다.

 

그것은 외경과 두려움의 대상이며,초월적인 대상이라는 말이다.

동시에 접근하면 태워버리고 죽임을 당하기 때문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튼튼한 방어벽과 보호벽이 되어준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예루살렘을 측량줄로 재는 세번째 환시는 에제키엘의 성전을 재는 환시(에제40-48장)와  아모스의 다림줄 환시(아모7,7-10)와 흡사하다.

세번째 환시가 끝나고 신탁(2,10-17)이 하나 끼어드는데, 주님께서 온 천하 사방에 흩어진 당신 백성을 다시 불러 모으시고, 시온과 백성 가운데에 머무르시어 이스라엘을 온전히 회복하실 것임을 확인하는 내용이다.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4)

 

 

즈카르야서 2장 14절은 이미 즈카르야서 2장 10절에 나온 말씀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즈카르야서 2장 10절 이하 13절에서는 주님께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할 것과  선민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의 회복 및 주님께서 임재할 것이 예언된다.

그 가운데 서두에 나오는 즈카르야서 2장 10절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징계가 다 끝나고, 그들과 하느님이 원래 처음 맺었던 계약의 상태로 되돌아 갈 것을 암시하는 예언이다.

 

여기서 '시온의 딸' 번역된 '치욘 빠트'(tsiyon bath; O Daughter of Zion)는 구약의 관점에서는 예루살렘 성읍의 거주민들 지칭하고, 신약의 관점에서는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

 

많은 주석가들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전해 준 메시지 안에(루카 1,28.30.31~33.49.54~55)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유배로부터 귀환한 후에 예언자 즈카리야(즈카 2,14-15; 9,9-10), 스바니아(스바 3,14-17), 요엘(요엘 2,21-27)이 '시온의 딸'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에게 선포한 신탁이 반영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런 사건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도시('시온의 딸'이라 불리우는 도시)는 약속의 땅에 거주하는 온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기뻐하라는 초대 받는다.

 

그토록 기뻐해야 하는 동기는 유배의 어두운 시기 가 지난 후,  하느님께서 재건된 성전 안, 성도 한 가운데에 거처하러 다시 오신다는 사실에 있다.

 

두려움에 떨 이유가 전혀 없다. 실제로 주님께서 그들의 왕이고 구세주이시기 때문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실제로 마리아를 '시온의 딸' 묘사하려 하였다.

복음사가의 눈에 동정녀 마리아는 자신의 인격안에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 백성을 종합한다.

온 이스라엘이 동정녀 마리아안에 총괄된다. 동정녀 마리아야말로 이스라엘을 가장 훌륭하게 나타낸다. 나자렛의 마리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하신 약속들을 앞서 실현하셨다(루카1,49ㄱ.54-55참조).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이유 접속사 '키'(ki; for)로 시작하는 본문은 왜 시온의 딸이 노래하고 기뻐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새 성경에 단순히 '정녕 내가' 번역된 '힌니'(hinni)는 문자적으로 '보라 내가'라는 의미이며, 이 예언을 읽는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며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한 표현이다.

 

장차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에게 오셔서 그들 가운데에 머무를 것이다.

'머무르리라'에 해당하는 '웨샤카느티'(weshakanthi; I will dwell)의 원형 '샤칸'(shakan)은 어원상 여행자가 장막을 쳐서 머무는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이다(창세9,27; 탈출25,8; 여호18,1).

본문에서 이 단어는 단지 얼마 동안 임시적으로 머문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장막을 치시고, 그들과 함께 거처할 것임을 나타낸다.

 

희랍어 구약 성경 번역본인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 '카타스케노소'(kataskenoso)로 번역되었는데, 이것은 장차 종말의 날에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 하느님께서 친히 장막을 치시고, 그의 구원받은 백성들과 거처하실 것을 예언하는 묵시록 21장 3절의 내용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본문의 예언이 종말론적 성취를 지향하고 있음 암시한다.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묵시21,3)

 

한편, 하느님께서 당신백성과 함께 거처하신다는 표현 애초에 히브리 민족을 계약의 백성으로 삼으실 때 베푸셨던 계약의 본질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그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주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계약의 기본 내용이었다(탈출6,7; 레위 26,12).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약의 효력을 결코 중단하거나 계약을 폐기하시는 법이 없다.

 

비록 바빌론에 의한 멸망과 성전의 파괴로 인해 그 계약이 중단되는 듯이 보였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다시 고향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고, 성전 역시 재건하게 하셨다.

그리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근거로 세워진 교회를 통해 계약의 백성의 흐름이 계속 이어지게 하셨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약의 백성들 가운데에 친히 임재하셔서 그들 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그들과 함께 머무를 것이다. 

이러한 계약은 궁극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한 성취를 보게 될 것이다.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루카 9,43ㄴ-45)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 말씀 안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감추어진 진실?

 

(판관2,12-14) 12 그들은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이신 주님, 저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주님을 저버리고, 주위의 민족들이 섬기는 다른 신들을 따르고 경배하여, 주님의 화를 돋우었다. 13 그들은 주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스타롯을 섬겼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는 풍요의 신이다.) 14 그리하여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어 그들을 약탈자들의 손에 *넘겨 버리시고 약탈당하게 하셨다. 또한 그들을 주위의 원수들에게 *팔아넘기셨으므로, 그들이 다시는 원수들에게 맞설 수 없었다.

= 하느님은 죄를 지은 그들을 죽음(시련)에 넘기신 것, 아니! 어떻게 사랑의 하느님께서 그러실 수 있어?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의 원칙이며 정의, 규정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그분의 뜻을 거스르는 그 죄의 존재가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창세2,16-17) 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 판관기는 이집트(세상)의 노예생활에서 구출된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살았던, 곧 세상으로부터 구출되어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말씀)을 받은 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그렇게 시련에 빠진 그들이 부르짖으면 하느님께서 판관을 세우시어 원수들에게서 건져, 평온하게 해 주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또 죄를 지어 하느님의 진노를 사곤 하였다.

 

(판관6,1) 1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그들을 일곱 해 동안 미디안족의 손에 넘겨 버리셨다.

= 그들이 또 부르짖으면 또 판관을 세워 원수를 물리쳐 주셨다. 그렇게 그들은 12판관이 다 있기까지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우상을 섬겼다.

판관기는 계속 인간들의 죄와 하느님의 용서, 그 이야기인 것이다. 인간들이 하느님 당신만을 바라 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당신 (사랑)만이 그들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고, 그들을 당신의 자녀로 찾으시기 위한 것이다.

 

(판관21,25) 25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하였다.

= 판관기 마지막 장,절이다. 끝까지 임금, 곧 왕이신 주님의 뜻, 그분의 길이 아닌 자신들의 뜻인 사람의 길로 살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똑 같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로마1,20-32참조)

그렇게 끝까지 고집부리는 그 인간들에게 구원자는 필요했다. 그래서 판관기 다음 룻기에서 보아즈(구원자)가 나오고 그가 아들 오벳을 낳는다.

 

(룻기4,22) 22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을 낳았다.

= 오늘 예수님께서 그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인간들의 죄 때문에 그들을 다시 살리시려고 그 인간들의 죄로 팔아 넘겨지시는 것이다.

 

(로마4,25) 25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구원의 뜻이다.

 

(루가10,22)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 하느님을, 그분의 뜻을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감추어져 있기에~~~

그래서 성령을 찾고, 그분의 이끄심을 받아야 한다.

 

(요한14,26)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교란 나의 환경을 바꾸어 평안을 얻어내는, 곧 나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만사형통의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환경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예수님(말씀)이 자꾸 확인됨으로 내가 변하는 것, 곧 내 생각이 바뀌는 것, 버리는 것이다.(마태16,23-27참조)

그래서 하늘을 담아 하늘의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 신앙이다.

 

(코헬1,3. 14-15) 3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14 나는 태양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는데 보라, 이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이다. 15 구부러진 것은 똑바로 될 수 없고 없는 것은 헤아려질 수 없다.

*하늘아래 땅, 그 세상의 모든 것은 없음이다. 아멘~!!!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9,43ㄴ-45)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 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4)

 

루카 복음 9장 44절의 '이 말'에 해당하는 '투스 로구스 투투스'(tus logus tutus; these sayings)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이 말'에 해당하는 원문은 복수형이고, 희랍어 지시 대명사는 바로 앞의 내용을 받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루카 복음 9장 43절에서 찾아야 한다.

 

한글 새 성경은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라고 전한다. 말하자면, '이 말'은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사람들의 놀란 말들'을 뜻한다.

풀이하면, 예수님께서 '나의 가르침과 기적으로 인해 놀라서 떠들어대는 이 사람들의 소리를 잘 기억해라. 왜냐하면(gar; '가르') 내가 바로 이 사람들의 손에 의해 넘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 속에는 예수님께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한탄하고 계심이 드러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단지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게 될 것 때문이라기 보다는, 당신의 말씀과 영적을 보고 '하느님의 위엄'이라고 할 정도로 따랐던 그들이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아프셨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자들을 위해 당신 자신의 몸을 내놓으셔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더 예수님을 상심케 했을 것이다.

루카 복음 사가는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9장 43절과 44절을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다.

 

 

2017년 9월 30일 가해 연중 제25주간 토요일(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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