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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일흔 두 제자 파견 (루카10,1-1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9-30 조회수1,38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9월 30일 목요일

[연중 제26주간 목요일일흔 두 제자 파견 (루카10,1-12)

   10월 5일 (녹)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1독서<말씀을 알아들었으므로, “아멘아멘!” 하고 응답하였다.>(느헤8,1-4.5-6.7-12)

온 백성이 일제히 물 문’ 앞 광장에 모여율법 학자 에즈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서를 가져오도록 청하였다.

에즈라 사제는 남자와 여자그리고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이로 이루어진 회중 앞에 율법서를 가져왔다때는 일곱째 달 초하룻날이었다.

그는 물 문’ 앞 광장에서해 뜰 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읽어 주었다백성은 모두 율법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율법 학자 에즈라는 이 일에 쓰려고 만든 나무 단 위에 섰다.

에즈라는 온 백성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므로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책을 폈다그가 책을 펴자 온 백성이 일어섰다.

에즈라가 위대하신 주 하느님을 찬양하자온 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아멘!” 하고 응답하였다그런 다음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

그러자 레위인들이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쳐 주었다백성은 그대로 서 있었다.

그들은 그 책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그래서 백성은 읽어 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느헤미야 총독과 율법 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10 에즈라가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11 레위인들도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조용히 하고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하며 온 백성을 진정시켰다.

12 온 백성은 자기들에게 선포된 말씀을 알아들었으므로가서 먹고 마시고 몫을 나누어 보내며 크게 기뻐하였다.

 

화답송 시편 19(18),8.9.10.11(◎ 9ㄱㄴ)

◎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네.

○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 주님을 경외함 순수하니 영원히 이어지고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 금보다 순금보다 더욱 값지며꿀보다 참꿀보다 더욱 달다네

 

복음<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루카10,1-12)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11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제1독서(느헤8,1~4ㄱ.5~6.7ㄴ~12)

 

그는 '물 문'앞 광장에서,해 뜰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읽어 주었다~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느헤미야총독과 율법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8,3.8-9)

 

'물 문' 앞 광장에서(3)

느헤미야서 3장 26절에도 나오지만, '물 문'앞 광장이란 예루살렘 동쪽 성벽에 있던 성문인 '수문(水門; 샤아르 함마임; shaar hammaim; the Water Gate) 앞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넓은 광장을 말한다.

 

동쪽 '물 문'(동편 수문)은 성 밖에 있던 기혼샘과  느티님(the Nethinims)사람들의 거주지인 오펠(Ophel)사이에 있는 문을 말한다.

이 문이 기혼샘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수문(水門)으로도 불리워졌으며, 식수를 얻기 위하여 사람들이 이 문으로 많이 드나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공중 집회를 가질 수 있는 넓은 광장도 있었다(느헤8,1).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여기서 '번역하고' 해석된 '메포라쉬 웨솜'(mephorash wesom; making it clear; gave distiinctly)에서 '메포라쉬'(mephorash; clearly; distinctly) 에즈라에 의해서 봉독된 율법책의 말씀을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레위인들이 통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설명하고 해석하였음을 묘사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오랜 기간 동안 바빌론 지역에서 생활하였던 이스라엘 후손 가운데는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잊어 버렸거나 능통하게 사용하지 못해서 히브리어로 봉독된 율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통역이 필요했다는 견해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는다.

동시에 하느님의 뜻이 담겨있는 내용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아들을 때까지 뚜렷하게 설명해 주었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느헤미야와 에즈라 및 가르치는 일을 맡았던 레위인들은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통회하며 울자 그들에게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권고하였다.

 

비록 그 슬픔과 눈물이 그들의 죄에 대한 자각과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에서 오는 긍정적인 것이었지만 그들이 울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원문은 '하이욤 카도쉬 후 라이흐와 엘로헤켐'(haiyom qadosh- hu laihwah ellohekem; This day is sacred to the LORD your GOD)이다.

여기서 새 성경에서 번역이 불분명하게 된 히브리어 '후'(hu) 인칭 대명사 3인칭 단수로 '그'  '주 여러분의 하느님' 가리킨다.

 

또한 이 '후'(hu) '거룩한 날' 해당하는 '카도쉬'(qadosh) '막켑'(-)으로 직접 연결됨으로써, 그 거룩한 날이 바로 '그'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거룩한 날의 근거가 바로 주 하느님께 있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새 성경이 '주(의)' 번역한 '라이흐와'(laihwah)는  '주'를 뜻하는 '예흐와'(yehwah)에 전치사 '레'(le)가 결합된 형태이다. 전치사 '레'(le)는 여기서 '~에게 속한'이란 소유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원문은 '오늘'이 누구에게 속한 날인지를 강조하여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본문은 '오늘은 거룩한 날이다. 너희 주 하느님께 속한, 바로 그분의 거룩한 날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주 하느님이시고 모든 것은 그분을 중심으로 그분의 뜻대로

그분의 말씀대로 행해져야만 되었다.

여기서 '오늘'은 유대 종교력으로 칠월 초하루인데,  나팔을 불어 기념일임을 알리고 거룩한 모임을 열어야 하는 날이다.

 

이 날은 주님을 위한 향기로운 번제물 황소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숫양 일곱 마리를 바쳐야 하고, 이와 함께 기름을 섞은 고운 곡식 가루 곡식 제물 곁들일 뿐 아니라 숫 염소 한 마리 속죄 에식을 드리는 매우 특별한 날이다(레위 23,24.25;

민수29,1-6; 여호6,21; 1사무 22,19; 1역대16,3).

 

 칠월 초하루에는 모든 노동을 금하였을 뿐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하는 거국적인 절기였다. 유대 종교력으로 7월은 새해가 시작하는 첫날이며, 유대 민간력으로는 1월이다.

이스라엘 후손들은 이 날, 새해 첫날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그밖의 모든 날도 하느님의 날임을 고백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를 다짐함으로서 자신이 하느님의 백성임을 확인하는 날이다.

 

하느님께 이 날을 드림으로써 한 해 전체를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기를 다짐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오늘' 칠월 초하루 주님의 말씀에 따라 기쁘고 즐거운 축제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레위23,24.25; 민수29,1-6; 신명12,7.12).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느헤미야서 8장 4절에서 8절까지 에즈라가 율법을 봉독하고 레위인들이 그 말씀을 알기 쉽게 해석해 주어 백성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였음을 보도하였다. 

이제 본문은 이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을 보도한다. 율법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백성들은 모두 울었다.

 

여기서 '울었기' 해당하는 '보킴'(bokim) '울다'라는 뜻의 동사 '빠카'(baka) 분사형이다. 이처럼 분사형이 사용된 것은 백성들이 잠시 잠깐 운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느껴 울었음 보여준다.  

바빌론에서 돌아온 유다 귀환민들은 율법책에 기록된 말씀을 듣고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율법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하여 진정한 회개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연중 제26주간 목요일복음(루카10,1~12)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2~3)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갑작스런 도래와 함께 그때 올 악한 자에 대한 심판의 준엄함에 대해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루카12,12)고 말씀하셨다.

복음을 직접 전해 듣고 회개할 시간을 충분히 가진 고을들이 그렇지 못한 소돔보다 훨씬 더 무거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런 심판의 엄정섬을 전제하고 급격하게 온다면, 시급하게 선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추수하는 행동은 그들을 하느님의 나라로 모으는 종말론적인 과업을 뜻한다.

 

여기서 '수확'에 해당하는 '테리스모스'(therismos; harvest) '수확'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수확의 대상인 거두어 들여야 할 곡식  수확의 과정을 의미할 때도 사용된다.

무르익은 곡식을 거두어 들이는 수확은 농경 사회의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주제이다.

하지만 '수확'이란 예수님께 있어서 하느님의 나라의 여러 국면들을 설명하는 좋은 소재였다.

 

여기서는 하느님께서 이미 복음을 받아들일 소지를 미리 마련해 놓으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수확을 기다리는 완전한 무르익은 곡식과도 같다는 의미를 전달해 준다. 

따라서 여기서의 예수님의 명령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나라로 빨리 들어오게 하라는 말씀이다.

 

 루카 복음 10장 2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이 시급한 데 비해서, 이 일을 몸소 행할 일꾼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안타까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내용이다. 

또한 지금 파견을 받고 있는 일흔두 제자들의 책임이 중대하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부르심을 받은 일꾼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다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주인에게 또 다른 일꾼들을 더 보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로 번역된 '데에테테'(deethete; ask; pray) 단순히 '요청하다'는 의미 이상의 '기도하다', '간구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 '테오마이'(deomai)의 부정 과거 명령법으로서, '너희들은 간구하라' 매우 간절하면서도 강력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천국의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할 당시의 그 복음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영혼들을 보시는 주님의 안타까움이 묻어있는 말씀이다.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사실은 루카 복음 10장 3절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마태오 복음 10장 16절에는 제자들을 상징하는 단어가 '양'('프로바타'; probata)이라고 되어 있는 반면에, 여기서는 '어린 양'('아렌'; aren; lamb)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루카 복음사가는 마태오 복음사가보다 이 단어를 통해 제자들의 '연약함'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

 

양은 목자의 보호가 없으면 이리에게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짐승이다.

또한 '양'이 착한 것의 상징이라면, '이리'는 악한 것의 상징이다.

그러니까 이 구절은 양과 같은 제자들이 이리 떼와 같은 세상의 악한 세력들과 영적 싸움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특히 '가운데로'에 해당하는 '엔 메소'(en meso; among)라는 전치사구는 이미 그 자체로 '가운데'라는 뜻이 있는 '메소'(meso) '~안에'라는 뜻의 전치사 '엔'(en; in)이 결합되어 '한가운데 속에'라는 뜻이다.

 

이것은 어린 양과 같이 연약하고 착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선교하기 위해 험악하고 공격적인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러기에 복음 전파자들은 험하고 공격적인 세상 속에서 마땅히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온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마태10,16).

 




2019년 10월 3일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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