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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라 (루카11,5-13)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10-07 조회수876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0월 7일 목요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청하고찾고문을 두드려라 (루카11,5-13)

 

 

1독서<보라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말라3,13-20)

13 너희는 나에게 무엄한 말을 하였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런데도 너희는 저희가 당신께 무슨 무례한 말을 하였습니까?” 하고 말한다.

14 너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만군의 주님의 명령을 지킨다고그분 앞에서 슬프게 걷는다고 무슨 이득이 있느냐?

15 오히려 이제 우리는 거만한 자들이 행복하다고 말해야 한다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번성하고 하느님을 시험하고도 화를 입지 않는다.”

16 그때에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이 서로 말하였다주님이 주의를 기울여 들었다그리고 주님을 경외하며 그의 이름을 존중하는 이들이 주님 앞에서 비망록에 쓰였다.

17 그들은 나의 것이 되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나서는 날에 그들은 나의 소유가 되리라부모가 자기들을 섬기는 자식을 아끼듯 나도 그들을 아끼리라.

18 그러면 너희는 다시 의인과 악인을 가리고 하느님을 섬기는 이와 섬기지 않는 자를 가릴 수 있으리라.

19 보라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날은 그들에게 뿌리도 가지도 남겨 두지 않으리라.

20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화답송 시편 1,1-2.3.4와 6(◎ 4039,5ㄱㄴ)

◎ 행복하여라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 행복하여라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제때에 열매 맺고잎이 아니 시들어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복음 <청하여라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루카11,5-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빵 세 개만 꾸어 주게.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청하여라너희에게 주실 것이다찾아라너희가 얻을 것이다문을 두드려라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찾는 이는 얻고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제1독서 (말라3,13-20ㄴ)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20)

 

말라기 3장 19절에서는 주님의 심판이 최종적으로 실현될 그 날에 악인이 처할 궁극적 운명이 무엇인지를 다루었다. 그것은 완전한 파멸이었다.

이제 말라기 3장 20절에서는 심판이 최종적으로 실현되는 그 날에 의인이 완전한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제시된다.

 

이처럼 악인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의 날은 반대로 의인에 대한 하느님의 축복을 도래케 할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제시되는 주요한 예언의 패턴인데, 악인의 멸망과 의인의 구원, 악인의 패망과 의인의 궁극적 승리를 병렬시켜 쌍으로 제시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여기서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에 대조되는 존재를 '의인' 또는 '겸손한 자'로 표현하지 않고,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이들'로 표현하신다. 이것은 말라기 3장 16절과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이러한 표현은 말라기서 전반에 제시된 당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악인들이 죄를 고집하고 악을 자행하는 이유가, 주님을 경외하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심판의 대상인 악인들과 대조되어 하느님의 축복의 대상으로  나오는 자들이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로 표현되는 것은 적절하다.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종말론적 심판의 날에 악인은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지만,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은 그와 반대로 복을 받게 된다.

여기서 '의로움의 태양이 ~떠오르리라'에 해당하는 '웨자레하 ~셰메쉬 체다카'(wezareha ~shemesh tsedakqah; but the sun of righteousness will rise)는 비유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두 가지 대표적인 견해가 공존하는데, 하나는 의로움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은총을 베푸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공의로운 날이 새롭게 시작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어떤 번역본은 여기의 '태양'(해)을 의미하는 '셰메쉬'(shemesh)를 대문자 'S'를 사용해 'Sun'으로 번역했는데, 이것은 이 태양을 그리스도로 본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런데 문제는 신약에서 그리스도가 '의로움의 태양'으로 표현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그와 동의어로 볼 수 있는 '빛'으로 묘사하는 실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요한1,4.8.9; 8,12; 12,46).

 

이 사실을 감안하면, 본문은 빛이신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강생(육화)과 재림의 양자의 의미를 모두 염두에 둘 수 있지만, 후자에 보다 무게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절에서 제시하는 '치유'는 궁극적이고도 완전한 치유,  영육간의 온전함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메시야가 재림하심으로 모든 의인들은 그 동안의 아픔과 괴로움을 모두 치유받고, 영육간에 온전히 회복을 체험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이러한 견해는 전통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견해는'의로움의 태양'이라는 표현에서 '태양'이 아닌 '의로움'에 초점을 맞춘 표현으로 이해하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을 취한다면, '의로움의 태양이 ~ 떠오르리라'는 표현은 모든 어두움과 슬픔, 부조리와 불법을 물러가게 하는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날이 밝을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과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에게는 그 날이 어두움의 날, 고통의 날, 슬피울면서 이를 가는 날,  화덕(용광로) 속의 지푸라기처럼 완전히 타버리는 날이 될 것이지만,

의로운 사람들과 주님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그 날이 정당성을 인정받는 날, 억울함을 벗고 명예를 회복하는 날, 모든 눈물이 씻겨지는 회복의 날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견해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 '의로움'이라는 표현을 '승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즉 지금 현재 보고 있는 패배와 굴욕의 날이 끝이 나고, 승리와 영광의 날이 온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한편, '날개에 치유를 싣고'에 해당하는 '우마르페 삐케나페하'(umarpe ikenapeha; with healing in its wings)는 '그 날개들 안에 있는 치유'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날개에'에 해당하는 '삐케나페하'(bikenapeha)는 직역하면, '그 날개들 안에'라는 뜻인데, 이것은 태양에 날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태양에서 퍼져 나오는 광선이라는 의미이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태양을 묘사할 때, 광선을 상징하는 여러 날개달린 원반 물체로 묘사했다.

특히 구약에서 '날개'를 뜻하는 '카나프'(kanap)는  끝이나 가장자리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많이 사용되는 데(시편104,2; 호세4,19),  여기서도 태양의 가장자리에 있는 광선이라는 의미를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

(루카 11,5-13)

어제 우리는 주님의 기도의 중심인 일용할 양식을, 하늘의 진리의 말씀으로 묵상했다. 말씀을 위에 양식, 꼭 필요한 양식으로 또 내일, 다가올 날의 차원이 다른 양식으로, 곧 하늘의 생명을 위한 양식을 구해야 한다.고 묵상했다.

오늘 그 양식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기 위해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로 시작하신다.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 빵 세 개만(트레스알토스-셋빵) ‘셋 이라는 빵’이다. 셋(3)이라는 성격의 빵인 것.

 

(1요한5,5-8)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일, 곧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피, 그 말씀이 진리의 생명수, 물인 것이고 그 모든 것을 하느님의 일로 , 일차로 증언하시는 성령, 곧 셋을 하나의 뜻으로 알아듣는 것, 우리의 내일의 꼭 필요한 양식인 것이다.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 단식하며 계속 간청하는 기도, 그 의미와 다른 것이다. 줄곧 졸라대면(아나데이아- 수치, 체면을 버리고 받을 것이 있는 것처럼 뻔뻔스럽게 기도하다.), 그러면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라 하시는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청하여라(아이테오- 빚 갚으세요) 먼저 주신다고 약속 하셨으니 주실 것이라는 것, 그 약속은 구약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요한16,23)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이름(쉠-분석된 말씀), 곧 하늘의 진리의 말씀으로~, 성경에서 이름을 말씀으로 읽어도 된다는 것이다.

 

*찾아라(제테오-껍데기 속의 것) 성경의 율법과 말씀 그 문자 속에, 그리고 우주 만물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해 달라는 것이다.

 

*두드려라(낙하-죽일 목적으로 치다.) 양들의 문이신 예수님, 그분을 표징과 기적의 능력의 예수님이 아닌,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매 맞으시고 죽으시는 구원자로 보라는 것, 그러면 하늘이 열릴 것이다. 그러면 하늘에서 생명의 물이 나온다.

 

(요한19,34)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십자가의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민수20,11 참조-같은 의미)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 *열리다(아노고이고- 위에 것으로 열리다) 하늘의 지혜로 알아듣게 된다는 것.

 

(1코린2,6-10) 6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7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8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9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이끄심을 받으면, 생명의 말씀을 죽음의 거짓된 법으로 받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참 양식)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거짓 양식)을 주겠느냐? 12 달걀(생명)을 청하는데 전갈(죽음)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 기도의 목적은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그리스도의 영, 진리의 성령을 받는 것이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야 위에 모든 말씀이 이해되어 믿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성령으로 아래의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된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로마8,1-3)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아멘.

 

 

 

2019년 10월 10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11,5-13)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르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10)

 

루카 복음사가는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 11장 5~8절에서 '한밤중에 찾아온 벗의 비유'를 들고, 기도 응답에 대한 보다 분명한 확신을  주기 위해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세로 기도할 때 반드시 응답받으며, 하느님께서 응답하신다는 내용이 기록된 11장 9~13절을 첨가한다.

 

11장 9절에 '청하여라'로 번역된 '아이테이테'(aiteite; ask) 아랫 사람이 윗사람에게 청하는 것 뜻할 때 사용되는 '아이테오'(aiteo)의 현재 명령형이다.

이것은 아들의 신분인 하느님의 자녀가 위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이 동사가 현재 명령법으로 사용되어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청할 것을 강력하게 명령하고 있으며, 또한 능동태로 사용되어 자신이 직접 청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 단어가 '기도'와 관련해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루카10,13; 마태18,19; 마르11,24).

 

한편 '주실 것이다'로 번역된 '도테세타이'(dothesetai; it will be given)는 '주다'를 뜻하는 '디도미'(didomi)의 미래 직설법 수동태이다.

희랍어 문법에서 미래 직설법은 미래에 반드시 발생할 어떤 사건에 대한 강한 확신을 뜻하므로, 여기서는 하느님께 청하면 '반드시 응답받는다'는 강한 확신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찾아라'로 번역된 '제테이테'(zeteite; seek)는'발견하기 위해서 애써서 찾는 것'을 의미하는 '제테오'(zeteo)의 현재 명령형이다.


'제테오'(zeteo)는 되찾은 은전의 비유(루카15,8), 되찾은 양의 비유 (마태18,12)에도 사용되었고, 하느님을 찾는 데도 자주 사용되었으며 (신명2,29; 이사55,6; 65,1; 사도17,27), 천국의 잔치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묘사할 때에도 사용되었다(루카13,24).

따라서 '찾아라'는 것은 단지 성도 개인에게 필요한 것만을 위해 기도하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축복의 근원이신 하느님 자신을 찾으라는 의미까지도 포함된다.

 

한편 '얻을 것이다'에 해당하는 '휴레세테'(hyuresete; you will find)는 미래 능동태로서 '너희들이 능동적으로 발견할 것이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느님을 향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생겨나는 을 암시한다.

 

"너희가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내가 너희를 만나 주겠다." (예레29,13~14ㄱ)

 

그리고 '문을 두드려라'로 번역된 '크루에테'(kruete; knock)는 문을 열어주지 않고는 안되게끔 열성을 다해 간절히 두드린다는 의미를 가진 '크루오'(kruo)의 현재 명령형이다.

이렇게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가 구하는 실제 내용이 하느님께 상달되어 문제에 대한 해결의 문을 하느님께서 반드시 확실하게 열어 주신다는 것이다.

 

'열릴 것이다'에 해당하는 '아노이케세타이'(anoigesetai; will be opened)는 '열다'를 뜻하는 '아노이고'(anoigo)의 미래 직설법 수동태이다.

이것은 멀지 않은 장래에 반드시 열릴 것이라는 확신을 불어넣어 주고, 또한 수동태로서 그 응답의 비결이 바로 하느님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루카 복음 11장 9절의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는 점점 적극성을 띠는 자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이같은 집요함과 끈질긴 인내, 그리고 열성이 담긴 기도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루카 복음 11장 10절에서는 11장 9절의 이유를 밝히는 접속사 '가르'(gar; for; 왜냐하면)로 시작하여 왜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설명해준다.

 

11장 10절의 원문은 모두 동사가 현재 직설법으로 사용되어, 하느님의 기도의 응답이 먼 미래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일이라는 것을 생동감있고 실감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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