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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8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10-09 조회수1,529 추천수8 반대(0)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쓴 호메로스에 대해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평가는 달랐다고 합니다.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었던 플라톤은 호메로스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호메로스의 작품은 기존의 질서와 체계를 위협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분노, 방황, 전쟁, 열정, 혁명, 권위에 대한 도전을 이야기하였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불온한 사상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도덕적이어야 했고, 순수해야 했습니다. 법과 질서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권위에 도전하고, 반항하고, 분노하는 이야기는 아이들을 사상적으로 오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플라톤은 이 세상은 순수한 이상의 그림자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순수, 사랑, 나눔, 희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소크라테스는 호메로스를 그리스 사람들이 꼭 배워야 할 시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호메로스의 작품 속에 있는 영웅들은 트로이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할 수 있도록 목숨을 바쳐서 싸웠기 때문입니다. 당시 가장 강대한 국가였던 페르시아를 상대로 그리스는 제2의 트로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그리스인들은 하나가 되어서 그리스를 침공하려는 페르시아를 물리쳐야 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의 지도자들에게 페르시아를 상대로 싸우자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그리스 사람들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페르시아의 힘이 워낙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그리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리스를 통합한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를 물리쳤고, 당시에 가장 넓은 제국을 만들었습니다.

 

문득 예수님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호메로스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는 나라입니다. 기쁜 소식은 억눌린 이들이 자유를 얻고, 묶인 이들이 해방되고, 가난한 이들이 부유해지고, 아픈 이가 치유 되는 것입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자리에서 내치고, 미천한 이들을 높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표징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가 지금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눈 먼 사람이 보게 되었습니다. 귀가 먼 사람은 듣게 되었습니다. 중풍병자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나병환자는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로 5000명이 충분히 먹고도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와 기쁜 소식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었던 헤로데는 2살 이하의 어린이를 죽이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마귀의 뜻을 따른다고 선동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른다고 선동했습니다. 자신들의 권위와 기득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은전 서른 닢에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는 이스라엘 백성을 로마의 지배에서 해방 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배반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 기득권을 가진 사람, 폭력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 두려움에 빠진 사람은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와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였을까요? 예수님께서 전하신 기쁜 소식을 받아들였을까요? 십자가의 길에 함께 하였던 성모님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품에 안으신 성모님입니다. 성모님은 시메온의 예언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의 죽음까지도 받아들였습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습니다. 베로니카는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드렸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 십자가의 길에 끝까지 함께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났습니다.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변하였습니다. 거리로 나가서 당당하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 겸손한 사람, 회개한 사람, 부활을 체험한 사람은 하느님 나라와 기쁜 소식을 받아들였습니다.

 

플라톤은 지혜는 궁극적인 진리와 원리를 아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그러한 진리가 비쳐지는 허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는 상황을 극복하는 의견이라고 하였습니다. 상황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상황에 맞는 의견을 내는 것이 지혜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또 다른 지혜를 전해 줍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기도를 통해서 자라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실천을 통해서 열매 맺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실천하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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