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10-10 조회수1,761 추천수9 반대(0)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두 가지 주제를 전해 줍니다. 하나는 가벼움입니다. 감각적인 삶, 육체의 만족, 하고 싶은 일을 사랑하려는 삶입니다. 다른 하나는 무거움입니다. 이성적인 삶, 영적인 만족, 해야 할 일을 사랑하려는 삶입니다. 이 두 가지 주제를 연결해 주는 단어가 있습니다. ‘키치입니다. 키치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밤 길 운전에 오두막을 봅니다. 오두막에 한 가족이 식사를 합니다. 그 가족이 참 행복하다고 보는 것은 나의 생각입니다. 실제로 그 가족이 행복한지는 모릅니다. 독재정권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은 민주화된 나라의 생활을 동경합니다. 그러나 민주화된 사회에도 희로애락은 있기 마련입니다. 풍족하고, 만족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모험과 열정을 동경합니다. 투쟁의 현장으로 가보지만 모험과 열정 뒤에는 위험과 죽음이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복음을 이야기합니다. 바오로가 전하는 복음은 육적으로 우리에게 오셨던 예수님입니다. 바오로가 전하는 복음은 영적으로 죽었지만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육적으로 오신 예수님의 삶을 보는 것입니다. 많은 표징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새로운 권위에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감각적인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복음은 십자가의 고통으로 죽으셨지만 영적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었고,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는 이제 복음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구원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로마인들은 바오로 사도가 전한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했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율법과 계명의 잣대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어기는 사람,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하느님 아들의 죄명이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다는 혁명의 기준으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팔아넘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을 사람들은 직업과 가문으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목수 집안의 사람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놀라운 표징을 보일 리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빌라도는 권력의 기준으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아무런 죄목을 찾지 못하였지만 권력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서 십자가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표징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당신을 믿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것을 보여 주셨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세상에는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표징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이 솔로몬보다 더 큰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많은 보물을 남겨 주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연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발견합니다. 어떤 이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어떤 이들은 감성, 이성, 오성을 통해서 참된 진리의 길을 찾아갑니다.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보물은 하느님의 마음으로 보면 잘 보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보물은 잠시 멈추어서 바라모면 보일 것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수 있는 것도 큰 표징입니다. 우리는 밤에 잠을 자면서 죽음을 체험합니다. 자는 동안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자는 동안 우리는 깊은 어둠을 체험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은 어쩌면 늘 새로운 부활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하느님의 뜻으로 바라볼 때, 내가 만나는 이웃, 내가 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표징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육의 눈으로 바라볼 때, 교만함과 원망의 눈으로 바라볼 때, 서로를 믿을 수 없고, 서로를 이용하려하고, 모두가 경쟁의 상대로 보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새로운 한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면서 지내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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