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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자선을 베풀어라. (루카11,37-4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10-12 조회수67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0월 12일 화요일

[연중 제28주간 화요일자선을 베풀어라(루카11,37-41)

 

1독서<하느님으로 찬양하지 않았습니다.>(로마1,16-25)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17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18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과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가 하늘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19 하느님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이미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사실 하느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21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거나 그분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오히려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우둔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22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

23 그리고 불멸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인간과 날짐승과 네발짐승과 길짐승 같은 형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24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마음의 욕망으로 더럽혀지도록 내버려 두시어그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몸을 수치스럽게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25 그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버리고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받들어 섬겼습니다창조주께서는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아멘.

 

화답송 시편 19(18),2-3.4-5ㄱㄴ(◎ 2)

◎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네.

○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고창공은 그분의 솜씨를 알리네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밤은 밤에게 앎을 전하네

○ 말도 없고 이야기도 없으며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그 소리 온 누리에 퍼져 나가고그 말은 땅끝까지 번져 나가네

 

복음 <자선을 베풀어라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11,37-41)

37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38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39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40 어리석은 자들아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41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소돔의 멸망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제1독서 (로마1,16-25)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과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가 하늘에서 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18)

 

로마서 1장 18절부터 3장 20절까지는 인간의 보편적인 타락상과 믿음을 통한 의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안에서 로마서 1장 18절부터 1장 32절까지는 본론의 도입부로서 타락한 이방인들의 범죄와 하느님의 유기(버리심)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로마서 1장 18절은 불경건한 이방인에 대해 나타나는 하느님의 진노에 대한 진술이다. 여기서 '진노'로 번역된 '오르게'(orge; the wrath)는 본래 '자연스러운 충동', '기분', '천성', '기질'등을 의미했는데, 점차 '강한 내적 열정을 나타내는 격한 감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정되었다.

 

구약에서 '오르게'(orge)는 불의에 대해 반응하시는 하느님의 공의로운 속성을  묘사하는데 쓰였으며, 로마서 1장 18절에서 사도 바오로도 이러한 전통을 따르고 있다.

하느님의 '오르게'는 죄에 대해 그분께서 나타내시는 반응이며,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정당한 분노라는 것이 사도 바오로의 관점이다.

 

그는 로마서 1장 18절에서 이 '오르게'의 출처가 '하늘'임을 강조한다. '하늘에서부터'로 번역된 '아프 우라누'(ap' uranu; from heaven)에서 전치사 '아프'의 원형 '아포'(apo)가 나타내는 것은 어떤 것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진노가 시작되는 '하늘'은 물리적인 공간인 허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곳은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거처, 즉 옥좌(보좌)로 인식되었으며(마태23,22 ; 사도7,55), 비유적으로는 초월적이며 전능하신 하느님과 동의어로 나타나기도 한다(루카15,18.20).

 

따라서 이 '오르게'의 출처가 '하늘'이라는 사도 바오로의 진술 죄인들이 결코 초월적이고 전능하신 하느님의 진노로부터 피할 수 없음에 대한 경고적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이러한 피할수 없는 진노는 '모든 불경(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해 나타난다. 여기서 '불경'에 해당하는 '아세베이안'(asebeian)의 원형 '아세베이아'(asebeia; godlessness; ungodliness)는 부정 불변사 '아'(a)와 '예배하다'라는 뜻이 있는 '세보마이'(sebomai)의 합성어로서 '예배하지 않음','신(神)을 믿지 않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태도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상을 하느님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을 가리키며,'불의'의 발판이기도 하다.

그리고 '불의'로 번역된 '아디키안'(adikian)의 원형 '아디키아'(adikia; nrighteousness; wickedness)는 이처럼 '경건치 않은', '불경(不敬)한' 자들의 당연한 결과로서 '부도덕한 삶의 총체'를 가리킨다.

이런 죄를 짓는 자들의 특징은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것'이다.

 

여기서 '진리'  즉 '알레테이아'(alletheia; truth)는 문맥으로 볼 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명백히 계시된 하느님의 업적과 자취이며, 하느님을 경외하는 삶이 바로 바른 삶임을 알게 하는 지식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진리를 '불의'(아디키아)로 억누르고 있어서 하느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

 

여기서 '억누르는'으로 번역된 '카테콘톤'(katechonton; hold; suppress) '~을 하지 못하게 억누르다','막다'라는 의미를 지닌 '카테코'(katecho; 루카4,42; 2테살2,6.7; 필레몬1,13)의 현재 분사로서, 그들의 부도덕한 삶을 버릴 수 없어서 명백히 계시되어 있는 하느님의 진리를 지속적으로 억눌러 불의로 충만한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런 자들에게는 당연히 공의로우신 하느님의 진노가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시점은 언제인가? 이것은 '나타나고 있습니다'에 해당하는 '아포칼륍테타이'(apokallyptetai; is being revealed)가  계속됨을 나타내는 현재 시제로 쓰였다는 데서 암시된다. 

이것은 하느님의 진노가 최종적으로는 최후의 심판 때에 완전하게 나타나지만, 지금 현 시점에 있어서도 부분적으로는 계속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하느님의 공의(정의)의 속성이 범죄를 방치할 수 없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범죄하는 자로 하여금 회개하여 구원의 자리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복음(루카11,37~41)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38~41)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는 행위는 당시 유대 사회의 하나의 예의요 관습이었으며, 단순히 위생상의 문제 뿐만 아니라, 죄많은 세상과 접촉함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부정과 불결을 제거하기 위한 정결례였다.

이 제의적 식사 관습은 바리사이들 뿐만 아니라 일반 유대인들에게서 조차도 철저하게 지켜온 규범이었다(마르7,3.4).

 

사실 식사전에 손을 씻는 행위는 단지 의식적인 차원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그것이 무슨 거룩한 계명인 것처럼 우월감을 가지고 매우 엄격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본래적 정식을 왜곡한 유대들의 위선을 지적하시며, 강하게 책망하시기 위해 의도적인 행동을 하신 것이다.

 

바리사이들은 겉으로는 식사 전에 손도 씻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치며,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는 등 거룩하고 고결한 삶을 사는 것처럼 행했지만, 실상은 하느님의 말씀의 참된 뜻을 왜곡하고, 그 속마음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멸시하는 등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차 있었다.

 

여기서 '탐욕'에 해당하는 '하르파게스'(harpages; greed) '억지로 끌고 가다', '탐심을 가지고 붙잡다'라는 뜻을 지닌 '하르파조'(harpazo)에서 온 말로서 '강탈', '약탈', '착취'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히브10,34; 마태23,25).

 

루카복음 16장 1~13절의 '약은 집사의 비유'가 끝난 다음에 바로 루카복음 사가는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루카16,14)이라고 하면서 바리사이들에 대한 원색적인 평가를 한다.

또한 마르코 복음 12장 40절에는 바리사이들이 돈에 대한 탐욕으로 '과부들의 가신을 등쳐' 먹는 행위까지 한다고 나온다.

 

그리고 그들의 속마음은 '사악'으로 가득차 있었다. '사악'에 해당하는 '포네리아스'(ponerias; wickedness)는  '악한 성품의', '타락한'이라는 뜻을 지닌 '포네로스'(poneros)에서 유래하여 '시기심', '악의'(로마1,29)를 의미한다.

 

루카 복음 15장 11~32절에 나오는 '되찾은 이들의 비유'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상징하고 있는 큰 아들은 분명히 작은 아들이 돌아온 사실과 또한 돌아온 작은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잔치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루카15,28).

이처럼 죄인들과 세리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지독한 시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죄인들과 세리들의 회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욕심과 시기심으로 인해 그들이 그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바리사이들은 내용보다 형식을 중요시하고, 외적 행위만 깨끗하고  거룩하게 잘 꾸미면,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내면세계도 아름답게 보아 줄 줄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처럼 본말이 전도된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바리사이들을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부르신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들아'에 해당하는 '아프로네스'(aphrones;  you foolish people)는 '어리석은', '지각이 없는'을 뜻하는 '아프론'(aphron)의 복수 호격이다.

말하자면, 옳고 그름과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에 대한 분별력이 없었고, 영적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다.

 

자칭 타칭 의인이요, 존경받는 자들이라는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겉 뿐만 아니라 속도 만들었다는 사실조차도 망각하고, 보이지 않는 속의 정결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종교적 형식 준수를 통해 겉만 거룩하게 보이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점을 강력하게 비판하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루카 복음 11장 41절의 '속에 담긴 것'에 해당하는 '타 에논타' (ta enonta; what is inside)가 무엇인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 논란이 많은데, 음식, 마음, 재물로 보는 경우가 그것이다.

 

루카복음 11장 39절의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는 말씀과 연관지어 볼 때, 그런 탐욕과 사악의 마음으로 부정한 재물을 축적했기에 그런 마음을 버리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에서 부정한 재물을 되돌려 줄 뿐 아니라'자선'에 해당하는 '엘레에모쉬넨'(eleemosynen; alms)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정당하게 모은 것에 대해서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마음의 깨끗함을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는 말씀은 자선의 결과 그들 자신이 깨끗해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관계된 것들이 깨끗해진다는 말이다.

그들과 관계된 '모든 것'('판타'; panta; all thing; everything)  부당한 방법으로 축재했다는 죄의식을 비롯한 하느님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말한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선하게 되면, 재물을 옳게 사용하는 데서 오는 마음의 평화와 양심의 자유가 그들을 더러운 탐욕과 사악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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