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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 (루카11,47-54)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10-14 조회수1,079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0월 14일 목요일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 (루카11,47-54)

 

1독서<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로마3,21-30)

형제 여러분, 21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26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27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전혀 없습니다무슨 법으로 그리되었습니까행위의 법입니까아닙니다믿음의 법입니다.

28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29 하느님은 유다인들만의 하느님이십니까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은 아니십니까아닙니다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30 정녕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화답송 시편 130(129),1-2.3-4.5(◎ 7ㄴㄷ)

◎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 깊은 구렁 속에서주님당신께 부르짖나이다주님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애원하는 제 소리에당신 귀를 기울이소서

○ 주님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주님감당할 자 누구이리까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니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 나 주님께 바라네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복음<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루카11,47-54)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7 “너희는 불행하여라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그렇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너희 율법 교사들아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제1독서 (로마3,21-30ㄱ)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3-24)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 개신교에서 의인론(義認論; 믿음을 통한 구원;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원리를 제시하는 필연적 이유가 되는 구절로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모든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죄인들의 구속과 의인으로 인정받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로마서 3장 23절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예레17,9), 사람의 능력으로는 결코 하느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는 절망적 선언이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로 번역된 '판테스'(pantes; all) '모두', '누구나'를 의미하며 인류 전체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이다.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또한 율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여기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판테스'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전 인류 가운데 아무도 없다

 

그리고 '죄를 지어'로 번역된 '헤마르톤'(hamarton; have sinned)은 '하마르타노'(hamartano)의 부정 과거 시제로서, '목표에서 벗어나다', '과녁을 맞추지 못하다(벗어나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70인역(LXX)에서는 대부분 도덕적인 면에서 일탈된 행위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으며, 신약에서는 하느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사오 바오로 모든 사람의 영적, 도덕적 상태에서 설정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나타내는 데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가 하느님의 신정법(신법)과 자연법을 어겼다는 것이다.

 

로마서 3장 23절에서도, 사도 바오로는 인간이 자기들을 지으신 하느님의 창조 목적과 질서와 의도에서 벗어나 그분과의 친교가 단절된 것을 죄로 규정하고, 그 결과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었음을 밝힌 것이다(창세3,8; 로마5,12).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된 것은 아담의 범죄에서 기인한다. 인류의 시조이며 대표인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 죄의 결과인 형벌과 원죄성이 그와 연대한 전인류에게 전가되어 전인류가 죽음과 영원한 벌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인류를 묶고 있는 죄의 고리가 대표와 연대성의 원리에 의해 인류의 시조 아담에게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잃었습니다'로 번역된 '휘스테룬타이'(hysteruntai; come short; fall short)는 '미치지 못하다', '모자라다', '이르지 못하다'등의 뜻을 가진 '휘스테레오'(hystereo)의 현재 시제이다.

 

모든 사람이 그 죄로 말미암아 본래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자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하느님의 영광에 이르기에 부족한 상태임을 알게 한다.

 

여기서 불변하는 진리를 나타낼 때 쓰는 현재형 시제를 사용해서 인간적 기준으로 볼 때 아무리 착하고 의롭다 할지라도, 그 의로움은 하느님의 영광에 도달하기에는 모자라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속량을 통하여' 

 

로마서 3장 24절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는 인간에 대해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으로 의롭게 된 것을 나타낸다.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값진 십자가상 구속 성혈의 공로로 말미암은 대속의 은혜이다.

 

여기서 '속량을'로 번역된 '아폴뤼트로세오스'(apollytroseos; redemption)의 원형 '아폴뤼트로시스'(apollytrosis) '~로부터'(from)라는 분리의 개념을 나타내는 전치사 '아포'(apo)와   '풀어줌'이라는 의미를 지닌 '뤼트로시스'(lytrosis)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인간을 얽어매고 있던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완전하게 분리하여 해방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을 위해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몸을 대속의 제물로 바치신 것이다. 

 당신의 무죄하신 몸을 '모든 사람의 몸값', 즉 '속전'(贖錢)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인간을 사온 것이다(1티모2,6).

 

구약에서는 인간의 죄를 씻음받기 위해서는 흠없는 과월절(유월절;해방절; 파스카절) 어린양의 대속의 피가 필요했다(탈출12,1-13). 하지만 이것은 완전한 것이 될 수 없고, 하느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이신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인류를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온전히 해방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육화(강생)하신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피를 흘려 인간을 구속하셨던 것이다(마태20,28; 2코린5,15).

 


'거저 의롭게 됩니다'
 

 

여기서 '의롭게 됩니다'로 번역된 '디카이우메노이'(dikaiumenoi)는 '디카이오오' (dikaioo)의 현재 수동태 분사이며, '의롭게 되다'(being justified; are justified)라는 의미이다.

 

하느님께서는 구속 사업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의롭게 만들어주신다.

 

개신교에서는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본성을 원상 회복이 불가능한 '부패된 본성'(nature corrupta)으로 보기 때문에, 속은 썩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 사업의 성혈 공로로 말미암아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인정해주고 칭해준다고 해서, '칭의'(稱義) 혹은 '의인'(義認)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아담의 범죄로 부패되어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원상회복이 가능한 '타락한 본성'(nature lapsa)으로 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 성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겉만이 아니라 속(내면)까지 의롭게 된다, '의화'(義化) 된다고 믿고 가르친다.

 

우리가 이렇게 의롭게 되면 원죄와 본죄와 죄의 결과인 잠벌의 완전한 사면이 이루어지면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잃어버린 품위와 신분을 되찾고, 성령의 궁전이 되고, 영원한 생명과 복락의 상속자가 된다.

 

그런데 이 의로움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하면, '거저' 얻어진다.

 

'거저'로 번역된 '도레안'(dorean; freely) '선물'을 뜻하는 명사인데, 로마서 3장 24절에서처럼 부사적으로 쓰이면 '선물로'(as a gift), '값없이', '무료로' 등을 뜻한다.

 

만일에 하느님께서 값을 요구하셨다면, 우리 중에 단 한 사람도 여기에 참례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선물로 주셨기에 거저 의롭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구속 성혈의 공로에 의지하지 않고는 우리가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간구할지라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지 못하면 개신교든 천주교든 오류에 빠지는 헛된 신앙을 하는 것이다.

사제의 글이라고 다 올바른 것은 아닌듯 싶다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복음(루카11,47~54)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2)

 

율법 교사들을 향한 예수님의 세번째 저주가 선언되고 있다. 율법 교사들이 예수님께 책망받는 이유는 그들이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사람들 앞에서 치워 버린 것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지식'이라고 번역된 '그노세오스'(gnoseos; knowledge) '알다'를 뜻하는 동사의 원형 '기노스코'(ginosko)에서 유래하였다.

 

'소피아'(sophia)가 진리를 추구하는 능력을 의미한다면, '지식'(gnoseos) 진리에 대한 직관적 앎과 인지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래서 이 단어는 '하느님을 아는 지식'(2코린2,14; 10,5)을 의미할 경우에는 관용구처럼 쓰였는데, 여기서도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수님 당시의 율법 교사들은 하느님 율법의 수호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나름대로의 해석 방법으로 구약에 나타난 단순하고도 명확한 진리를 오히려 애매하고 복잡하게 만들었다.

 

'열쇠'는 보통 '주권' '권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데, 여기서는 율법을 해석하는 권한을 '열쇠'('클레이다'; kleida; key)라고 표현하고 있다.

 

율법 교사들은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계시인 구약 가운데서 그 중심적인 정신은 다 없애버리고 형식만을 남겼다.

그리고는 스스로 복잡하고 무겁게 만든 이 규정을 인위적 권위로서  사람들에게 가르친 그들의 잘못이 바로 예수님의 책망의 대상이다.

 

결론적으로 '하느님의 의로운 종들'을 상징하는 예언자들을 죽이는 것도  악한 것이지만, 더 악한 것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차단시켜버리는 행위라는 것이 여기서 밝혀진다.

 

실상 율법 교사들은 하느님과 성경에 대한 지식을 독점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 교사들은 마치 '천국의 열쇠'를 독점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따라서 그들은 그 열쇠를 가지고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어야 하는 사명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율법에서 정신은 죽여버리고 형식만 남겨둔 그들의 행위나, 인간적인 전통에 맹목적으로 순종하여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짐을 부과하는 그들의 행위는, '진리의 문','천국의 문'을 잠가 버리고,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조차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행위였던 것임에 틀림없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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