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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깨어 있는 종들! (루카12,35-3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10-19 조회수64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0월 19일 화요일

[연중 제29주간 화요일깨어 있는 종들! (루카12,35-38)

 

 

1독서<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로마5,12.15.17-19.20-21)

12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5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17 그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20 그러나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21 이는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화답송 시편 40(39),7-8ㄱㄴ.8-9.10.17(◎ 8과 9ㄱ 참조)

◎ 주님보소서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 당신은 희생과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제가 왔나이다.” 

○ 두루마리에 저의 일이 적혀 있나이다주 하느님저는 당신 뜻 즐겨 이루나이다당신 가르침 제 가슴속에 새겨져 있나이다

○ 저는 큰 모임에서정의를 선포하나이다보소서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주님당신은 아시나이다

○ 당신을 찾는 이는 모두당신 안에서 기뻐 즐거워하리이다당신 구원을 열망하는 이는 언제나 외치게 하소서. “주님은 위대하시다.” 

 

복음<행복하여라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12,35-38)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그 종들은 행복하다!”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제1독서 (로마5,12.15ㄴ.17-19. 20ㄴ-21)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18)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19)  그러나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20)

 

 

로마서 5장 18절과 19절은 아담과 그리스도께서 각각 자기에게 속한 자들과 영적으로 일치된 영적 대표로서그들의 행위의 결과가 자신에게 속한 자들에게 전가됨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이 전가는 신학적으로 대표와 연대에 따른 죄의 책임과 의로움의 전가라고 할 수 있다. 즉 아담의 행위는 모든 사람을 유죄 판결을 받게 한 반면,  그리스도의 행위는 많은 이를 의로움과 생명에 이르게 한 점이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다.

 

로마서 5장 18절에서 '모든 사람'으로 두 번씩이나 사용된 '판타스 안트로푸스' (pantas anthropus) '모든 사람들'(all men)이란 뜻이다.

즉 '판타스'(pantas)는 '많은'(many)이 아니라 '모든'(all)이란 형용사로 사용된 것이다.

 

따라서 '판타스 안트로푸스'는 '아담 아래 있는 모든 사람'과 '그리스도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이며, 전자는 아담의 육적인 혈통 아래 있는 전인류를 가리키며, 후자는 그리스도의 영적인 혈통 아래에 있어서 의롭게 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1코린5,22).

 

한편, 사도 바오로는 아담의 행위 '범죄'로 묘사한 반면에 그리스도의 행위 '의로운 행위'로 표현하였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아버지 하느님께 바치신 의로운 순종 즉 십자가상 구속 사업을 가리킨다.

 

그분은 본래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으며,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다(필리2,6-8).

 

이것이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속을 위해 취하신 행위의 전부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통해 의롭게 되어 생명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분이 취하신 행동은 아담의 그것과 전혀 대조적이다.

 

아담은 일개 피조물로서 교만과 불순종으로 창조주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고 그분과 같이 되려 하였으나(창세3,5) 그리스도께서는 태초부터 존재하신 하느님이심에도(요한1,1-3) 겸손과 순명으로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으로 오셨고(요한1,14), 자원으로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따르셨다(요한10,18; 마태26,39).

 

그리스도의 이와 같은 행위가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의 신분과 모든 것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분의 '의로운 행위'(디카이오마; dikaioma)가 우리를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에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의인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로마서 5장 19절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먼저 '되었듯이'로 번역된 '호스페르 ~카테스타테산'(hosper~katestathesan)에서 동사 '카테스타테산'은 '~이 되게 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카티스테미'(kathistemi)의 부정 과거 수동태 3인칭 복수형이다.

 

이것은 대표와 연대의 원리에 의해 아담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의 범주에 들어갔고, 죄인의 신분이 되었다는 것을 확증한다.

 

이런 원리는 '될 것입니다'는 표현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될 것입니다'로 번역된 '카타스타테손타이'(katastathesontai) '카티스테미'(kathistemi)의 미래 수동태 3인칭 복수형으로서 법적인 신분으로서 뿐만 아니라 실제 상태에서도 의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경우에 있어서도, 대표와 연대의 원리에 의해서 많은 사람이 법적인 신분에서 의인이 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유기적 관계로 말미암아 의인의 범주 및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사도 바오로는 아담의 행위와 그리스도의 행위의 결과를 모두 동사 '카티스테미'(kathistemi)로 나타내는데, 아담에 대해서는 부정 과거 수동태로서 그로 말미암아 인류가 '단번에' 그리고 '이미' 죄인의 상태에 들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반면에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미래 수동태로 표현해 많은 사람이 그분을 통해 계속해서 의롭게 될 것을 시사한다.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20)

 

어두움이 깊을수록 그 가운데 비치는 빛은 더 밝아 보이듯이, 죄가 더 많아지고 많이 드러날수록 하느님의 용서의 은혜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즉  하느님의 인류를 향하신 은총은 언제나 풍성하고 변함이 없지만, 인간의 죄가 더 많아지고 죄의 책임이 더 커질수록, 그 은총의 풍성함 또한 더욱더 커보인다는 말이다.

 

여기서 '충만히 내렸습니다'로 번역된 '휘페레페릿슈센'(hypereperisseusen)의 원형 '휘페스페릿슈오'(hyperperisseuo)는 최상급의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양을 초과하다', '넘치다'라는 의미를 지닌 '페릿슈오'(perisseuo) '~을 초과하는'(more than; beyond; over)의 의미를 지닌 접두어 '휘페르'(hyper)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이 동사는 더 이상 넘쳐흐를 수 없을 정도로 넘쳐흐른 풍성한 상태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죄의 무게보다 하느님의 은총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크고 놀라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죄가 바닷가에 산더미처럼 쌓아올린 모랫더미에 비유된다면, 그것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리스도의 은총이라는 밀물이 파도가 되어 밀려오면 순식간에 다 없어지는 것과 같다.

 

이 세상에는 하느님께서 용서하실 수 없을 정도로 큰 죄가 없으며, 동시에 하느님의 은총없이 하느님께 받아들여지는 의인 또한 없는 것이다.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복음(루카12,35~38)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5~36)

 

루카 복음 12장 35절에서부터 38절까지는 깨어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의 비유인데, 12장 35절에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세와 관련해서 두 가지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허리에 띠를 매고 있는 모습이다.

'페리에조스메나이'(periezosmenai; girded about)는 '띠를 매다' 뜻의 동사 '페리존뉘미'(perizonnymi)의 완료 수동태로서 '이미 허리에 띠가 매여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허리띠를 지금 당장 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맬 것도 아니며, 이미 허리띠를 맨 상태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입었던 겉옷은 길고, 그 통이 넓은 것이었다. 따라서 일을 할 때나 여행을 하거나 전쟁을 수행할 때에는 겉옷을 허리띠로 졸라 매야만 했다.

본문에서 종들이 허리에 띠를 맨 이유는 문맥상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느님의 백성들도 혹시라도 나태해져 방심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깨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항상 준비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등불을 켜 놓은 상태로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켜 놓고'로 번역된 '카이오메노이'(kaiomenoi; burnning) '불을 켜다' 뜻의 동사 '카이오'(kaio)의 현재 분사 수동태로서 '계속적으로 불이 켜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등불을 켜 놓고 있는 목적은 어두워진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하며 기다리던 주인을 맞아들이기 위한 것이다(마태25,1~13).

따라서 본문은 주님이 언제 오실지라도,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히 감당하고, 항상 깨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사람이 될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있어라'에 해당하는 '에스토산'(estosan; let be) '에이미'(eimi; be)동사의 현재 명령형 3인칭 단수로서 '계속적으로 있어라'는 뜻이다.

여기서 '에이미'(eimi)동사는 '있다' 또는 '존재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동사가 여기서 현재형으로 사용된 것은 이러한 상태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 지는 아무도 모르므로, 하느님의 백성은 늘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혼인 잔치'로 번역된 '가몬'(gamon; wedding banquet) 기본형 '가모스'(gamos)는 혼인 잔치 자체를 가리킨다.

 

당시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는 주로 밤중에 이루어졌기에, 그 주인이 혼인 잔치로부터 돌아올 때는 모든 사람이 잠든 시간이 되므로, 그 종들은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라는 교훈을 주기에 적절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러한 배경 설정의 이유만이 아니라, '혼인 잔치' 천상에서의 기쁨과 영광의 혼인 잔치를(묵시19,9), '그 주인'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혼인 잔치의 집'은 하늘 옥좌를 암시함으로써, 종말론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돌아오는'으로 번역된 '아날뤼세'(analyse; he will return) 기본형 '아날뤼오'(analyo)는 '풀다'는 뜻에서 발전하여 '떠나기 위해 천막을 걷거나 배의 닻줄을 푼다'는 점에서 '떠나다','출발하다'는 뜻도 갖는다.

 

여기서는 혼인 잔치 집을 떠난 것을 가리키며, 이것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주님으로 오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하늘 옥좌를 떠나 내려오실 것을 상징하고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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