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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3. 게하지의 탐욕 / 북 이스라엘의 멸망[1] / 2열왕기[13]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10-20 조회수644 추천수3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3. 게하지의 탐욕(2열왕 5,19-27)

 

그때에 시종 게하지는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보여 준 대화와 행동을 다 보았다. 주인인 엘리사가 이방인 나아만에게 베푼 그 치유의 은혜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한 것 같았다. 나아만이 엘리사를 떠나 얼마쯤 갔을 그때에, 하느님의 사람인 엘리사의 종 게하지가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주인님께서 저 아람 사람이 가져온 것을 받지 않으시다니, 그에게 너무 관대하게 대하셨구나.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그의 뒤를 쫓아 달려가서는 무엇이든 좀 받고야 말겠다.’

 

그리하여 게하지는 나아만의 뒤를 쫓아갔다. 나아만은 누군가 자기 뒤를 쫓아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그를 맞이하려고 병거에서 내려 별일 없지요?” 하고 물었다. 시종 게하지가 당돌하게 대답하였다. “별일 없습니다. 그런데 저의 주인님께서 저를 보내시어 이렇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막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서 예언자 무리 가운데 두 사람이 나에게 왔습니다. 그들에게 줄 은 한 탈렌트와 예복 두 벌을 보내 주십시오.’” 정말 탐욕스러운 거짓말을 내 뺏는다.

 

그렇지만 이방인 나아만은 기왕이면 두 탈렌트를 받아 주시오.” 하면서, 억지로 은 두 탈렌트를 두 자루에다 묶고 예복 두 벌을 젊은 부하 두 사람에게 주어, 게하지 앞에서 메고 가게 하였다. 오펠에 이르자 게하지는 그들 손에서 짐을 받아 집 안에 두고, 그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지명을 뜻하는 오펠을 일반 명사 언덕이나 성채로 옮기기도 한다. 오펠은 사마리아 도성의 한 구역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러나 메사의 기념비 등의 기록에 따르면, 예루살렘과 디반에도 이와 동일한 이름의 장소가 있었다. 그리고 칠십인역은 오펠의 첫 글자의 자음을 바꾸어 어두움으로 옮겼다. 이는 게하지의 어두운 행위, 일부러 드러내려는 것으로도 볼 수가 있다.

 

그들이 떠난 다음, 게하지는 사마리아로 들어가서 자기 주인 앞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섰다. 그때에 엘리사가 게하지야, 방금 어디를 갔다 왔느냐?” 하고 물으니, 게하지가 이 종은 아무 데도 갔다 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벌써 엘리사에게 이 모든 것을 알리셨다. 그러기에 엘리사는 시종의 이런 태연스러운 행동에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이렇게 게하지는 자신의 세속적인 욕구를 숨기려 한 탐욕스러운 이었다. 엘리사는 시종에게 뉘우칠 기회를 주지만,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마냥 부인을 한다.

 

그래서 엘리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누군가가 너를 맞이하려고 병거에서 몸을 돌릴 때, 내 마음 곧 심장이 거기에 가 있지 않은 줄 아느냐? 지금이 돈을 받아 옷과 올리브 나무와 포도밭, 양과 소, 남종과 여종을 사들일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너에게 옮아 네 후손들에게 영원히 붙어 다닐 것이다.” 여기서 마음이나 심장은 정신이 작용하는 자리이다. 아무튼 엘리사는 그의 시종은 물론 다른 이들에게도 일어나는 일들의 환시를 이미 봐 왔다. 그래서 게하지가 엘리사 앞에서 물러나오니, 그가 나병으로 눈처럼 하얘졌다. 하얀 살갗은 나병의 징후다.

 

아무튼 이방인 나아만은 주님께서 그저 주시는 치유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아마도 그는 엘리사의 도움으로 주님께서 바라시는 그 믿음을 터득할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것은 그가 이스라엘 땅의 정결한 흙을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충분히 알 수가 있다. 비록 그가 이방인으로 그의 임금의 시중을 들지만, 주님의 은혜를 입어 이스라엘의 흙을 제물을 바칠 다마스쿠스인들이 섬기는 신이 머무는, 림몬 제단을 세울 때 사용할 것이다.

 

그렇지만 게하지의 탐욕스런 그 마음이 나아만에게 주어질 주님의 은혜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아무튼 엘리사는 나아만의 신분과 처지를 감안하여 그에게 외적인 우상 숭배 예식에 참여하는 것은 허락했다. 이러한 관용은 유배 이후의 유다인들이 이교 종교와 풍습에 대하여 가진 강경한 태도와는 다소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나아만의 믿음은 엘리사가 바라는 그대로 주님의 은총의 손길이 닿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히브리인인 게하지는 이방인 나아만과는 달리, 하느님께서 예언자들 안에 머무르신다는 믿지 않음으로 부끄러운 나병에 걸렸다.

 

그 무렵 한 무리의 예언자들이 한 장소에 모여 살고 있었는데, 그곳이 매우 비좁았다. 사실 그들은 서로가 의존하면서 매우 경건하게 살고 있었다.[계속]

 

[참조] : 이어서 ‘14. 도끼를 찾은 기적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게하지,나아만,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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