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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10.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10-21 조회수1,166 추천수6 반대(0) 신고

 

(주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습니다)

2021년 10월 21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아니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제 세례명은 마태오입니다. ‘

빠다킹을 세례명으로 생각하시는 분도 있는데,

이는 별명일 뿐입니다.

사실 어렸을 때 이 세례명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멋진 외국말 같은 세례명도

참 많지 않습니까예를 들어 그레고리오,

프란치스코헨리코 등의 멋진 세례명도 많은데

우리나라 이름과 비슷한 마태오라는 세례명을

부모님께서는 왜 정하셨을까 싶었습니다.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유아세례를 받았기에

제 뜻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세례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신학교에 들어간 뒤,

마태오 성인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주보 성인을 따라간다는 말처럼 저는

마태오 성인처럼 주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역할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보여주신 모든 모범이

제게는 정말로 커다란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멋진 이름이 중요할까요그렇지 않습니다.

멋진 이름보다는 멋진 삶이 더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도 멋진 이름을 가지고 엉망으로

사는 것보다어떤 이름이든 상관없이

멋진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응원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멋진 이름이 더 중요한 것처럼

생각할 것입니다그러나 멋진 삶을 사는 것이

주님과 함께 하는 참 진리의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라고

하십니다이 불은 어떤 불일까요?

아마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는 노력

이 불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 노력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에 잘 보이는 세상의 법칙에

더 관심이 많고이를 철저히 따르려고만 합니다.

그러면 행복할 것이라 착각합니다.

남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면서 재물을

모은다고 행복할까요?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

라면서 각종 비리를 저지릅니다.

마음이 편안해질까요?

주님의 법칙은 세상의 법칙처럼

겉으로만 멋지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법칙을 따르는 사람이

바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살아.’라는 비판도

들을 수 있습니다이 안에서 세상 사람들과

큰 분열이 일어납니다예수님 말씀처럼

평화가 아니라 분열이 일어날 것입니다.

분열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법칙보다 주님의 법칙을 따르면서

주님 마음에 드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멋진 삶입니다.

주님의 관점을 철저히 따르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이렇개 행복하세요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는 만큼

자신의 행복도 커진다(제러미 벤담)

신앙도 안정 괘도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비행기가 사고 나는 구간은 이륙할 때의

3분과 착륙할 때의 8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구간을 마의 11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착륙할 때의 사고는

조금 이해되기는 합니다.

날다가 땅에 착륙할 때의

충격이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조금의 실수가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륙할 때의 사고는 왜일까요?

모든 엔진을 한꺼번에 가동해 폭발력을 내어

하늘을 나는 것이었습니다.

일정 고도에 이르면 6개의 엔진 중에서

2개만 가동해도 비행기는 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엔진이 켜지는

이륙 직전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비행기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께

나아가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비행기가 어느 정도의 고도에 이르러야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어느 정도의 괘도에

이르기까지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 안에서

커다란 안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금의 노력만 하고서 힘들다고

또 어렵다고 포기한다면 안정된

신앙생활이 아닌 불안정한 신앙생활로

큰 혼돈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노력하며 주님께 나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아무런 노력 없이 받기만을

청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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