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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란도란글방/아가(雅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10-27 조회수591 추천수0 반대(0) 신고

 

(공동번역성서) 2021. 10. 27.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도란도란글방

 

아가(雅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오늘은 아가(雅歌)서에 대해 공부를 하겠습니다.

아가서의 히브리어 제목은 쉬르 하쉬림인데 쉬르가 노래라는 뜻이고 하쉬림이 쉬르의 복수입니다. 그래서 그 뜻은 노래들 중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70인 역도 아스마 아스마톤이라 번역을 했고 라틴 벌게이트 성경도 칸티쿰 칸티코룸이라 했습니다. 전부 노래들 중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아가(雅歌)라고 번역이 된 것은 조금 의역이 된 것입니다. ()자가 우아 할 아자입니다. 우아한 노래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으로 번역을 한 것입니다.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 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아가서가 남녀 간의 애정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그런 책은 아닙니다. 어떤 교회에서 이 아가서를 인용해서 부부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들을 하는 것을 보고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가서에 보면 솔로몬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신랑이 떠났을 때 신부가 어떻게 처신을 하는가 하는 내용이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단순히 연인(戀人)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늘 그렇듯 구속사(救贖史) 적인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결론이 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의 지혜를 얻어내는 책이 아닌 것입니다.

아가서의 저자는 솔로몬입니다. 11절에 그 저자가 뚜렷이 나와 있습니다.

(아가1:1) 가장 아름다운 솔로몬의 노래

뿐만 아니라 (1:5, 3:7,9,11, 8:11,12)에도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명확하게 나옵니다. 이 아가서의 저작 연대는 그 솔로몬의 통치 시기인 BC970-931년 사이로 봅니다.

아가서에 나오는 지명들 예루살렘, 갈멜, 샤론, 엔게디, 헤르몬, 디르사같은 지명들은 모두 통일왕국 시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리기 전의 도시 이름들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솔로몬이며 그 저작 시기도 그의 재위 기간 중이라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아가서를 해석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먼저 풍유적 해석 방법(allegorical)이 있습니다. 이 해석방법은 대체로 역사나 실제 세계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작자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를 들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해석할 때에 강도 만난 자는 하느님의 백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고, 강도는 사탄이고, 예리고는 세상이며, 예루살렘은 하느님 나라인데, 그가 그 가는 길에서 환난을 당하게 되지만 예수님(선한 사마리아 인)이 오셔서 그를 포도주와 기름을 발라(예수님의 보혈과 성령) 구해 주시고 여관(교회)에 데리고 가셔서 다시 오실 때까지(재림) 여관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고 (구약과 신약)그를 맡기셨다는 것으로 해석을 하는 것을 풍유적 해석 방법이라고 합니다. 지나친 비약이지요?

아가서는 풍유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이 거기에 나오는 지명이나 인물 사건들이 문학적 고안물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들입니다. 그래서 풍유적으로만 풀 수는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극적 해석방법입니다.(dramatic) 이 해석 방법은 아가서를 한편의 희곡(戱曲)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희곡이 가져야 할 여러 가지 요소를 많이 빠뜨리고 있기 때문에 이 견해도 오늘날에는 그렇게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세번 째가 제의적 해석방법입니다.(cultic-mythological) 이 해석 방법은 고대 근동의 신화를 바탕으로 아가서가 기록이 되었다는 해석방법입니다. 이 아가서는 여 사제로 변신한 어떤 여신과 왕과의 혼인 이야기인데, 그 혼인을 축하하는 노래라는 것입니다.

네번 째가 예표론적 해석방법입니다. (typological) 이 해석 방법은 풍유적 해석방법과 비슷한 해석방법이지만 완전히 다른 해석 방법입니다. 풍유적 해석 방법은 역사성이나 사실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감추어진 영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예표론적 해석방법은 구약 성경의 본문 설명 자체를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본문 속에서 신약 성경의 어떤 사건이나 가르침에 대한 예표론 적(모형 적)연관성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예표론적 해석방법에 따르면 솔로몬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이고 술람미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예표 한다고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해석 방법이 이 아가서를 푸는데 가장 적합한 방법입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이야기를 원어 적으로 해석을 해 보면 그 해석을 지지할 수 있는 근거가 나옵니다.

술람미 여인에서 술람미솔로몬이라는 단어의 여성명사입니다. 술람미는 솔로몬의 이름을 가진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이야기라는 것은 왕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소유한 교회와의 사랑이야기를 노래하는 것 입니다. 그 신랑과 신부와의 깊고 깊은 사랑의 이야기를 촉각, 후각, 청각, 미각 모든 오감을 다 동원해서 표현을 해 놓은 것이 바로 아가서입니다.

아가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사랑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신부, 그리고 혼인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들입니다. 아가서는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의 혼인 언약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이 아가서를 읽다보면 하느님께서 우리 교회를 어떻게나 살갑게 사랑하시는지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입니다.

이스라엘의 절기마다 낭독을 하는 책들이 있습니다. 오순절에는 룻기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초막절에는 전도서를 읽었습니다. 허무한 이 세상의 장막을 의지하지 말고 참 장막이 되신 하느님을 기념하는 것이지요. 부림절에는 에스델서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이 멸망당한 날에는 예레미야애가를 읽었습니다. 이 아가서는 유월절(踰越節)에 읽혀졌던 책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아가(雅歌)서를 이해하기를 출애굽을 한 이후에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언약(言約)을 맺으시는 그 언약의 관점에서 이 아가서를 해석한 것입니다. 그저 죄()만 짓고 있던 이스라엘을 하느님께서 찾아가셔서 그들과 혼인(婚姻)을 맺으시는 구속사(救贖史)의 이야기가 아가서에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찾아가서 혼인을 맺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아가서의 구조를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전체적인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아가서의 구조는 대칭 구조입니다. 카이즘 구조는 가운데의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앞에서부터 한번 설명하고 그 핵 심을 지나 다시 뒤로 가면서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아가서는 총 7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네 번째 부분이 핵심부분이고 그 네 번째 부분을 향해 전체의 내용이 모아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가1:1-2:7 까지는 서문입니다. 왕의 사랑에 대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왕이 그 여인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왕의 고백이 적혀 있습니다. 2:8-17 까지 에서는 사랑하는 신부를 찾아서 왕이 방문을 합니다.

(아가2:10-13) 10 나의 임이 속삭이는 소리. '나의 귀여운 이여, 어서 일어나오. 나의 어여쁜 이여, 이리 나와요. 11 , 겨울은 지나가고 장마는 활짝 걷혔소. 12 산과 들엔 꽃이 피고 나무는 접붙이는 때 비둘기 꾸르륵 우는 우리 세상이 되었소. 13 파란 무화과 열리고 포도 꽃 향기가 풍기는 철이오. 나의 귀여운 이여, 어서 나와요. 나의 어여쁜 이여, 이리 나와요.

 

3:1-5 까지에서는 그 가운데 밤이 찾아옵니다. 그 여인이 꿈을 꿉니다. 하나 됨에서 분리되는 악몽입니다. 꿈에 솔로몬이 떠납니다.

(아가3:1-2) 1 밤마다 잠자리에 들면, 사랑하는 임 그리워 애가 탔건만, 찾는 임은 간 데 없어 2 일어나 온 성을 돌아 다니며 이 거리 저 장터에서 사랑하는 임 찾으리라 마음먹고 찾아 헤맸으나 찾지 못하였네.

3:6에서 5:1까지는 아가서의 클라이맥스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사랑 안에서 완전히 하나가 되는 혼인을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 됨 에 대한 갈망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6-11에서 솔로몬 왕의 혼인 준비 모습이 나오고, 41-15 에서 혼인을 준비하고 있는 술람미 여인의 단장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416절에서 51절 까지에는 혼인을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아가5:1) 1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내 동산으로 찾아 왔소. 몰약 같은 향기로운 나뭇가지도 꺾고 꿀도 송이째 따 먹으려오. 포도주만 마시랴, 젖도 마시리라. 친구들아, 먹고 마시어라. 흠뻑 사랑에 취하여라.

 

그런데 신부가 또 악몽을 꿉니다. 혼인한 이후인데 또 신랑이 떠납니다. 그게 다섯 번째 부분입니다. 그게 5:2에서7:10 까지 입니다. 이 부분은 세 번째 부분과 연결이 되는 내용입니다. 혼인을 했는데 또 남편이 떠나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7:11-8:4 까지가 여섯 번째 부분입니다. 거기서는 다시 왕이 찾아옵니다. 이제 그 후로는 여자가 신랑을 잃는 꿈을 꾸지 않습니다. 이제 영원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아가7:11-13) 11 이 몸은 임의 것, 임께서 나를 그토록 그리시니, 12 임이여, 어서 들로 나갑시다. 이 밤을 시골에서 보냅시다. 13 이른 아침 포도원에 나가 포도나무 꽃이 피었는지 석류나무 꽃이 망울졌는지 보고, 거기에서 나의 사랑을 임에게 바치리다.

사랑이 회복된 에덴동산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8:5-14까지는 첫 번째와 연결되어져서 왕이 그 아내를 사랑하는 사랑이 더 커지게 됨을 보여 줍니다. 아주 진한 사랑의 모습이 오감을 동원하여 묘사가 됩니다.

이렇게 아가서의 구조를 잘 보면 전체 구속사(救贖史)가 보여 집니다. 두 번째 부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네 번째 부분에서 혼인을 하게 되고 다섯 번째 부분에서 다시 신랑을 떠나보내는 경험을 하며 여섯 번째 부분에서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래서 완전한 하나가 되어 영원히 변치 않은 하나 됨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복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혼인 이후에는 왜 신랑이 떠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까?

여러분 예수를 만나고 나면 매일 매일 매 순간 마다 늘 기쁘고 행복하고 평안하고 하십니까? 때로는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아무 상관이 없는 분처럼 느껴지실 때가 있지요? 왜 그런 일이 있게 되는 겁니까? 여러분, 정말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예수님께 버려진다는 사실이 어떤 것인지 잘 압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가 게으르고 무관심하고 나태해져서 부패한 정욕과 합당치 못한 정서에 빠져들어 악한 정욕들을 부단히 제어하지 못할 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물리십니다. 그 것은 하느님께서 잠깐 당신의 얼굴을 가리심으로 우리를 자극하셔서 당신을 부지런히 찾고 탐사하도록 하시기 위한 배려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은 그렇게 우리 하느님께서 자신을 감추실 때 아가서의 신부처럼 혼비백산해서 찾게 되어 있습니다.

(호세5:15-6:1) 5,15 그리고는 내가 하늘로 돌아 가 이 백성이 죄를 고백하며 나를 찾기까지 기다리리라. 이 백성은 괴로움을 참다못해 마침내 나를 애타게 찾으리라. 6.1 '어서 야훼께로 돌아가자! 그분은 우리를 잡아 찢으시지만 아물게 해 주시고, 우리를 치시지만 싸매 주신다.

 

(아가5:6-8) 6 임에게 문을 열어 드렸으나 임은 몸을 돌려 가 버리더이다. 나는 그만 넋을 잃고 가는 임을 뒤쫓다가 놓쳤다네. 임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네. 7 그러다가 성 안을 순찰하는 야경꾼들에게 얻어맞고 성루를 지키던 파수병에게 겉옷을 빼앗겼네. 8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나의 임을 만나거든 제발 내가 사랑으로 병들었다고 전해 다오.

우리는 모두 그런 경험들을 합니다. 그게 혼인을 한 후에도 신부가 신랑이 떠나는 경험을 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조금 더 자세히 이 아가서를 어떻게 구속사적인 면에서 해석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아가서를 읽어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아가서 전체에 흔하지 않은 식물들의 이름과 동물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스물 한 종류의 식물의 이름과 열다섯 종류의 동물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게 뭐 그렇게 특별한 의미가 있겠는가? 하시겠지만 그러한 동식물들과 이 사랑이야기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동산은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누군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열왕상5:13-14) 13 그는 레바논에 있는 삼나무(백향목)로부터 성벽에 자라는 우슬초에 이르기까지 모든 초목을 논할 수 있었으며 야수나 날짐승이나 기는 짐승이나 물고기를 모두 논하였다. 14 그리하여 모든 민족으로부터 사람들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고 그의 지혜의 소식을 들은 세상의 모든 왕들이 또한 그리하였다.

이 구절은 솔로몬이 백향목(삼나무)으로부터 벽에 붙어 나는 우슬초까지, 그리고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해서 자유자재로 설명하고 이야기해 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동식물의 이름을 지어 준 아담과 흡사한 모습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 상대방의 기원과 내용을 자세하고 완전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동식물에 대해서 그의 지혜로 논할 수 있었다는 것은 바로 아담의 이름을 짓는 모습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이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동산에서의 사랑은 마치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사랑을 재연해 놓은 것 같이 보여 집니다.

그 창세기(創世記)로부터 시작되는 하느님 백성들의 구속사의 이야기가 어떻게 아가(雅歌)서에 배어있는지 한번 보지요.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진실한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그 때는 서로 부끄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창세2:20-24) 20 이렇게 아담은 집짐승과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이름을 붙여 주었지만, 그 가운데는 그의 일을 거들 짝이 보이지 않았다. 21 그래서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시고는 22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다음, 아담에게 데려 오시자 23 아담은 이렇게 외쳤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지아비에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고 부르리라!' 이리하여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어울려 한 몸이 되게 되었다. 24 아담 내외는 알몸이면서도 서로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여기에 보면 아담의 결혼 장면이 나옵니다. 인류 최초의 결혼 장면입니다. 그 아담은 하느님의 아들이며 동시에 왕으로 세상을 다스리도록 분부를 받은 자였습니다.

(창세5:1-3) 1 아담의 계보는 이러하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지어 내시던 날, 하느님께서는 당신 모습대로 사람을 만드시되 2 남자와 여자로 지어 내셨다. 그 날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 이름을 아담이라 지어 주셨다. 3 아담은 백 삼십 세에 자기 모습을 닮은 아들을 낳고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

 

자기의 형상을 따라 낳은 자를 아들이라 하지요? 아담은 하느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창조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담은 이 땅을 다스리도록 분부를 받은 왕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왕의 아들이며 그 자신도 왕인 솔로몬과 아담을 연결시켜 드리려고 이렇게 설명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천지의 주재 만왕의 왕이신 하느님의 아들로 태어난 아담에게 신부인 이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셨습니다. 무죄한 상태에서 순결하고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을 하고 그 사랑에 금이 갔습니다. 서로 부끄러워하게 되었고 자기의 잘못을 서로에게 미루는 그런 타락한 사랑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창세3:6-13) 6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 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 주었다. 남편도 받아 먹었다. 7 그러자 두 사람은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리웠다. 8 날이 저물어 선들바람이 불 때 야훼 하느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는 야훼 하느님 눈에 뜨이지 않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9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셨다. '너 어디 있느냐?' 10 아담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따 먹지 말라고 일러 둔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구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12 아담은 핑계를 대었다. '당신께서 저에게 짝지어 주신 여자가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 주기에 먹었을 따름입니다.' 13 야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물으셨다. '어쩌다가 이런 일을 했느냐?' 여자도 핑계를 대었다. '뱀에게 속아서 따 먹었습니다.'

이제 타락한 인간은 하느님과도 멀어지게 되었고 하나의 관계로 묶여졌던 부부관계에서도 실패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죄를 지은 인간은 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들을 그냥 내 쫓으시는 것이 아니라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시고 쫓아내십니다. 그들의 수치를 가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 부끄러움을 가려 그 타락한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언약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신랑이신 하느님과 신부인 하느님의 백성들 사이의 깨어진 혼인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시겠다는 것을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는 것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하느님의 그 하느님의 고집스러운 열심이 계속해서 성경 전체에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 가죽옷이 어떻게 구속사와 연결이 되는지 보세요. 그 가죽옷이 아가서의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결혼으로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이스라엘에서 결혼이 어떻게 이루어 지느냐하면 신랑이 자신의 옷자락으로 신부를 덮는 것으로 결혼식이 완성됩니다.

(룻기3:9) 9 '너는 웬 여자냐?' 하고 물었다. '비녀(婢女)는 룻입니다' 하고 룻이 대답했다. '어르신네께서는 이 몸을 맡아 주실 분이십니다. 그 옷자락으로 저의 몸을 덮어 주십시오.'

룻이 보아즈에게 당신의 옷자락으로 저를 덮으소서.“라고 말한 것은 나를 당신의 신부로 맞아 달라는 부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 깊게 성경을 살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하느님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쫓아다니시며 광야에서 그들을 구름으로 덮으셨습니다.

(시편105:39-40) 39 하느님께서는 구름을 펼쳐 덮어 주시고 밤에는 불로 비추어 주셨다. 40 먹을 것을 구하면 메추라기를 몰아다 주시고 하늘에는 양식을 내리시어 배불리셨다.

마치 첫날밤에 신랑이 신부를 자신의 옷자락으로 덮는 것 같은 묘사를 합니다. 하느님께서 광야에서 구름으로 이스라엘을 덮으신 것은 바로 그 결혼언약의 예표를 계속해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너희는 내 신부다. 그러므로 나는 반드시 너희들을 구원해 내고 말 것이 다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레2:1-2) 1 야훼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내리셨다. 2 '예루살렘에 가서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똑똑히 일러 주어라. '나 야훼가 하는 말이다. 씨 뿌리지 못하는 땅 사막에서 나를 따르던 시절, 젊은 날의 네 순정, 약혼시절의 네 사랑을 잊을 수 없구나.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을 예언하시는데 이스라엘이 과거 결혼 때에, 신부 시절에 그 사랑을 잊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게 언제를 결혼의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광야를 지 날 때 시내 산에서 시내 산 언약을 맺으시지요? 그 때를 결혼의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 언약을 반드시 지켜내시겠다는 것을 구름으로 그 신부를 덮음으로 예표 하시는 것입니다.

그 신부를 덮는 신랑의 옷자락카나프라는 단어인데 그 단어는 옷의 끝 부분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원래 단어의 뜻은 날개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건져내셔서 광야를 통과하여 그들을 이끌어 내실 때 그들을 날개로 업어서 인도해 내셨다는 표현을 하지요?

(출애19:4) 4 '너희는 내가 에집트인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너희를 어떻게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로 데려 왔는지 보지 않았느냐?

 

(신명32:11) 11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흔들어 놓고 파닥거리며 떨어지는 새끼를 향해 날아 내려 와 날개를 펼쳐 받아 올리고 그 죽지로 업어 나르듯

 

(루가13:34)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너는 예언자들을 죽이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으려 했던가!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성경은 신랑이신 하느님께서 그의 신부와 이제 다시는 깨어지지 않는, 영원히 깨어지지 않는 혼인 언약을 하시겠다는 고집스러운 집념과 계획과 그 실행이 성경 전편에 설명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복음입니다. 아가서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가2:16) 16 임은 나의 것, 나는 임의 것, 임은 나리꽃밭에서 양을 치시네.

 

(아가6:3) 3 임은 나의 것, 나는 임의 것, 임은 나리꽃밭에서 양을 치시네.

 

(아가7:11) 11 이 몸은 임의 것, 임께서 나를 그토록 그리시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지요? 너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라는 하느님의 언약의 내용이 아가서 전체에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11:4) 4 이 계약은 쇠를 녹이는 가마 같은 에집트에서 너희 조상을 건져 내 올 때 지키라고 명한 것이다. 나의 말을 들어 시키는 대로 다 하면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리라고 했던 그 계약이다.

 

(예제11:20) 20 그래서 나의 규정을 따르고 나의 법을 지켜 그대로 실행하도록 만들겠다. 그제야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즈가8:7-8) 7 나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이제 나는 나의 백성을 해뜨는 곳과 해지는 곳에서 건져 내어 8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살게 하리라. 그들은 다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신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느님이 되리라.

 

(히브8:10) 10 '그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을 계약은 이것이다.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생각에 심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새겨 주리라.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언약이 어떻게 성취가 됩니까?

(요한17:20-26) 20 '나는 이 사람들만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21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 22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나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내가 이 사람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이 사람들을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며 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 사람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4 아버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내가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아버지께서 천지 창조 이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주신 그 영광을 그들도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25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모르지만 나는 아버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6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신랑이 신부에게 속하고 신부가 신랑에게 속하게 하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 혼인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우리는 확신 속에서 기다리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게 아가서입니다. 그 복음을 깨닫고 확신 속에 함께하는 자들은 절대 이 세상의 상황 때문에 기죽지 않습니다.

(아가1:4-6) 4 아무렴, 사랑하고 말고요. 임을 따라 달음질치고 싶어라. 나의 임금님, 어서 임의 방으로 데려 가 주셔요. (합창단) 그대 있기에 우리는 기쁘고 즐거워 포도주보다 달콤한 그대 사랑 기리며 노래하려네. 5 (신부)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나 비록 가뭇하지만 케달의 천막처럼, 실마에 두른 휘장처럼 귀엽다는구나. 6 가뭇하다고 깔보지 말아라. 오빠들 성화에 못 이겨 내 포도원은 버려 둔 채, 오빠들의 포도원을 돌보느라고 햇볕에 그을은 탓이란다.

술람미 여인이 자기가 거무스름하다고 흘겨보지 말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내가 조금 못생기고 못났다고 나를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왕이 나를 침 궁으로 이끌어 주셨기 때문에내 처지가, 나의 상황이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왕이 나를 사랑하시고 왕이 나를 신부로 맞아 주셨기 때문에 나는 당당한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교입니다. 내가 훌륭한 위인이 되어 하느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약함이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아름답게 승화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입니다.

하느님이 우리 신랑이 되어 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신랑이 먼저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리시는 것입니다.

(아가2:8-9) 8 (신부) 사랑하는 이의 소리, 산 너머 언덕 너머 노루같이, 날랜 사슴같이 껑충 껑충 뛰어 오는 소리. 9 담 밖에 서서 창틈으로 기웃거리며 살창 틈으로 훔쳐 보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찾아오셔서 그 사랑하는 여인과 혼인 예식을 거행하십니다. 그리고는 나는 이렇게 못나고 부족한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찬사를 다 동원해서 너는 아름답다, 난 널 사랑한다.”하고 프러포즈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 이 구원입니다. 그게 아가서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과거나 현재의 모습으로 인해 열등감이나 우울증 같은 것에 빠져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왜 열등감에 빠집니까? 세상적인 가치 기준에 내가 미달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울해 지지요? 세상 사람들에게 나를 자랑하고 싶은데 내 인생은 전혀 자랑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짜 신분을 아세요. 그리고 외치십시오. “감히 누가 나를 업신여겨? 누가 나를 향해 눈을 흘겨?” “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데, 우리 신랑이신 주님이 날 이렇게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이 얼마나 큰사랑인지 보시겠어요?

(아가8:7) 7 바닷물로도 끌 수 없고 굽이치는 물살도 쓸어 갈 수 없는 것, 있는 재산 다 준다고 사랑을 바치리오? 그러다간 비웃음만 사고 말겠지.

 

이 사랑으로 우리에게 쏟아 부어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안에서 우리를 품어 안으시며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가1:15-16) 15 그대, 내 사랑, 아름다와라. 아름다와라, 비둘기 같은 눈동자. 16 그대 내 사랑, 멋진 모습 얼굴만 보아도 가슴 울렁이네. 우리의 보금자리는 온통 녹음에 묻혔구나.

우리 신랑은 이 독사 같은 눈을 비둘기 같다고 여겨주십니다. 그런데 그 분은 천지 만물의 주인이세요. 그 신랑이 나만 예뻐하십니다. 그런데 누가 감히 우리를 업신여깁니까? 그러니까 당당하세요. 담대하십시오.

(아가4:1-5) 1 (신랑) 아름다와라, 그대, 나의 고운 짝이여. 너울 뒤의 그대 눈동자 비둘기같이 아른거리고 머리채는 길르앗 비탈을 내리닫는 염소떼, 2 이는 털을 깎으려고 목욕시킨 양떼 같아라. 새끼 없는 놈 하나 없이 모두 쌍동이를 거느렸구나. 3 입술은 새빨간 실오리, 입은 예쁘기만 하고 너울 뒤에 비치는 볼은 쪼개 놓은 석류 같으며, 4 목은, 높고 둥근 다윗의 망대 같아, 용사들의 방패 천 개나 걸어 놓은 듯싶구나. 5 그대의 젖가슴은 새끼 사슴 한 쌍, 나리꽃밭에서 풀을 뜯는 쌍동이 노루 같아라.

7 나의 귀여운 짝이여, 흠잡을 데 하나 없이 아름답기만 하여라. 8 나의 신부여, 레바논에서 이리로 오너라. 레바논에서 이리로 오너라, 어서 오너라. 아마나산 꼭대기에서, 스닐산 꼭대기, 헤르몬산 꼭대기에서 내려 오너라. 사자굴에서, 표범 우글거리는 산에서 내려 오너라. 9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나는 넋을 잃었다. 그대 눈짓 한번에 그대 목걸이 하나에,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10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그대 사랑 아름다와라. 그대 사랑 포도주보다 달아라. 그대가 풍기는 향내보다 더 향기로운 향수가 어디 있으랴! 11 나의 신부여! 그대 입술에선 꿀이 흐르고 혓바닥 밑에는 꿀과 젖이 괴었구나. 옷에서 풍기는 향내는 정녕 레바논의 향기로다.

 

썩어서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것같이 추하고 더러운 우리를 이렇게 예쁘게 보아주시는 신랑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 분이 이렇게 거듭거듭 언약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이사54:4-8) 4 두려워 말라. 네가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수줍어 말라. 다시는 창피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너는 처녀 때의 수치를 잊을 것이요 과부 때의 창피를 결코 되씹지 아니하리라. 5 너의 창조주께서 너의 남편이 아니시냐? 그 이름 만군의 야훼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의 구세주 아니시냐? 그분은 전세계의 하느님이라 불리신다. 6 그렇다, 버림받은 여자, 가슴에 상처를 입은 너를 야훼께서 부르신다. '조강지처는 버림받지 않는다.' 너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7 '내가 잠깐 너를 내버려 두었었지만, 큰 자비를 기울여 너를 다시 거두어 들이리라. 8 내가 분이 복받쳐 내 얼굴을 잠깐 너에게서 숨겼었지만, 이제 영원한 사랑으로 너에게 자비를 베풀리라.' 너를 건지시는 야훼의 말씀이시다.

 

(호세2:19-20) 19 바알이란 말을 그의 입에서 씻어 버려 다시는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리라. 20 그날 나는 이스라엘을 해치지 못하도록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밭의 해충에게 다짐을 받고 활이나 칼 같은 무기를 이 땅에서 부수어, 이스라엘이 다리 뻗고 자게 하리라.

이 열심입니다. 성경은 이 하느님의 열심(熱心)을 우리에게 친절하게 반복적이며 점층적으로 설명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가서도 바로 그 어린양의 혼인잔치로 결론지어지는 구속사, 복음의 내용을 극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내용을 예제키엘서에서 이렇게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예제16:6-13) 6 내가 지나가다가 피투성이로 발버둥이치는 너를 보고, 핏덩어리야 살아라. 7 들풀처럼 자라나거라 하였더니, 너는 자라고 커서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 너는 젖가슴이 부풀고 거웃도 자랐는데 알몸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8 나는 지나가다가 네가 꽃다운 한창나이가 된 것을 보고 내 겉옷 자락을 펴서 너의 맨몸을 감싸 주었다. 나는 맹세하고 너와 약혼한 사이가 되었다. 주 야훼가 하는 말이다. 너는 내 사람이 되었다. 9 나는 너를 목욕시키고 너에게 묻은 피를 닦아 주고 기름을 발라 주었다. 10 수놓은 옷을 입혀 주고 고래가죽으로 만든 신을 신겨 주고 아마포띠를 띠어 주었으며 비단 겉옷을 입혀 주었다. 11 너를 보석으로 단장하고 팔에는 팔찌를, 목에는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12 코에는 코고리를, 두 귀에는 귀고리를 달아 주었고 머리에는 아름다운 족두리를 씌워 주었다. 13 이렇게 너는 금은패물로 단장하고 모시옷에, 비단옷에, 수놓은 옷을 입고 고운 밀가루 음식과 꿀과 기름을 먹게 되었다. 너는 점점 아름다와져 마침내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죄인이었던 하느님의 신부들은 바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핏덩어리요, 피투성이였습니다. 그러한 자들을 신랑의 영광의 옷자락으로 덮으시고 그 부끄러움을 가리시고 그들을 단장하시고 영원한 왕후의 지위에 올려놓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3장의 그 벌거벗은 부끄러운 아담과 하와를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시는 것을 시작으로 신랑이신 하느님께서 어떻게 그 신부인 교회의 부끄러움을 덮고 아름답게 단장시켜 영원한 혼인잔치에 서게 하는가가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의 내용인 것입니다.

이렇게 신부를 단장하는 모습을 보면 구약의 어떤 대목이 생각나시지 않으십니까? 머리에 관을 씌우고 기름을 바르 고 베실로 짠 옷을 입고 금, 은으로 장식을 해야 하는 사람이 제사장이지요? 출애굽기 28장에 제사장의 의복에 관해 서 자세하게 나오고 29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출애29:4-9) 4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만남의 장막 문간으로 나오게 하여 목욕을 시켜라. 5 그리고 속옷과 에봇에 딸린 도포와 에봇과 가슴받이 등 의복들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입히고 에봇 관대로 묶어라. 6 그의 머리에는 사모를 씌우고, 사모에는 성직패를 붙이고, 7 성별하는 기름을 가져다가 아론의 머리 위에 부어라. 이렇게 너는 그에게 기름을 발라 일을 맡겨라. 8 또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불러 내어 속옷을 입히고 9 띠를 띠우고, 두건을 씌워 주어라. 법으로 정해 준 그들의 사제직은 영원한 것이다. 너는 이런 절차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을 맡겨라.

이 제사장의 의복을 만드는 순서는 어떤 것을 만드는 순서의 정확하게 역순입니다. 무엇입니까? 성막(聖幕)입니다. 성막은 하느님의 영광을 품어 안고 있는 것의 상징입니다. 하느님의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가 맨 안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성막이라면 그 지성소를 상징하는 대제사장의 흉패가 제일 바깥에 나와 있는 것이 바로 제사장의 옷입니다. 그 제사장의 옷은 하느님의 영광을 입고 있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그 신부의 단장하는 모습이 대 제사장의 입성과 흡사하다는 것은 이제 무죄한 제물이 하느님 앞에 드려짐으로 자신의 모든 죄가 해결이 되고 하느님의 영원한 신부로 회복이 되는 복음의 옷을 대 제사장이 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옷을 신부가 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가리켜 제사장 나라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도 말하고, 신부라고도 말하는 것입니다. 다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존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하느님의 영광의 옷을 입고 계신 분들로서 그 신분에 맞게 그 분의 영광을 나타내야 하는 분들입니다.

(요한17:22) 22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나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영광의 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자들이 자꾸 그 옷을 더럽혀서야 되겠습니까? 인생의 저 밑바닥까지 경험한 창녀를 데려다가 한 나라의 왕이 자기의 신부로 삼아 주셨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그 왕비가 여전히 창녀 짓이나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자기 신랑이 얼마나 존귀하고 크신 분인지 모르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신랑이 얼마나 존귀하고 아름답고 크시고 그럼에도 나만 이렇게 끔찍하게 사랑해 주고 있음을 아는 사람들은 그 신랑에게 너무 감사해서, 그리고 그 분의 영광에 흠이 가지 않도록 삶을 다스리겠지요.

생각해 보세요. 정말 사랑하는 신랑과 영원히 살 혼인잔치를 앞두고 있는 신부가 그 신랑이 전혀 보고 싶지 않다면 그게 정말 사랑하는 사이입니까? “결혼식 끝나면 영원히 볼 텐데 뭐, 지금은 옛날 애인도 좀 만나고, 신랑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먹지 말라는 것도 실컷 먹어두고 그래야겠다.“ 이게 정말 결혼식을 앞둔 행복한 신부의 모습입니까? 아니지요?

봐도, 봐도 또 보고 싶고 돌아서면 또 보고 싶고 한 것이 결혼식을 앞 둔 연인들의 모습 아닙니까? 전화가 조금만 뜸하게 와도 몇 번씩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 하잖아요? 그 신랑을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성경입니다. 유일하게 신랑이신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성경입니다. 그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직 신부로서 프러포즈를 받지 못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고민해 보세요.

결론을 맺지요.

(에페5:22-33) 22 아내된 사람들은 주님께 순종하듯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23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의 구원자로서 그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주인이 됩니다. 24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도 모든 일에 자기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5 남편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몸을 바치신 것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26 그리스도께서는 물로 씻는 예식과 말씀으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당신의 몸을 바치셨습니다. 27 그것은 교회로 하여금 티나 주름이나 그 밖의 어떤 추한 점도 없이 거룩하고 흠없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28 이와 같이 남편된 사람들도 자기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29 도대체 자기 몸을 미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 몸을 기르고 보살펴 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기르시고 보살펴 주십니다. 30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입니다. 31 성서에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룬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32 참으로 심오한 진리가 담겨져 있는 말씀입니다. 나는 이 말씀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말해 준다고 봅니다. 33 그러나 이 말씀은 여러분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서 남편된 사람은 자기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하고 아내된 사람은 자기 남편을 존경(경외)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장시간에 걸쳐 공부한 내용이 여기 다 들어 있지요? 이 혼인잔치를 앞두고 있는 자들로서 아니 영적으로, 신분적으로는 이미 혼인한 자들로서 여러분의 평상의 삶을 잘 다스리십시오. 결혼 생활에서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어떻게 하나가 되는지를 세상에 잘 보아야 합니다.

결혼해서 전도하면 되지요? 잘 되던가요? 경험자들 한번 말씀해 보세요. 얼마나 힘드셨어요? 우리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1차적 사명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는 그 1차 적인 사명이 올바로 수행이 되어질 때에 2차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잡으세요.

그리고 교회의 1차 적인 사명도 올바른 말씀과 성례(聖禮)와 치리(治理)를 엄격히 거행해서 하느님의 백성들을 점도 없고 흠도 없는 하느님의 신부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고린후11:2) 2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염려하시는 것처럼 나도 염려하는 나머지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순결한 처녀인 여러분을 오직 한 남편 그리스도에게 바치려고 정혼을 시켰기(중매) 때문입니다.

 

, 우리는 그거 하는 겁니다. 교회는 무슨 대단한 일 하는 단체 아닙니다. 신부를 신부답게 만드는 훈련소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가 서로에 대해 그리스도에게 신부를 소개하는 중매쟁이가 되셔야 합니다.

(묵시19:7-9) 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 어린 양의 혼인 날이 되었다.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고, 8 하느님의 허락으로 빛나고 깨끗한 모시옷을 입게 되었다. 이 고운 모시옷은 성도들의 올바른 행위이다.' 9 또 그 천사는 나에게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행복하다' 고 기록하여라' 하고 말했습니다. 또 이어서 '이 말씀은 하느님의 참된 말씀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제 곧 우리는 어린양의 피로 희게 씻기어진 아마포를 입은 하느의 백성들로 영원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게 될 것입니다.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시면서 오늘도 그 신분에 걸 맞는 삶을 경주해 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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