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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 10. 28. 도란도란글방 / 욥기에 나타난 그리스도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10-28 조회수842 추천수0 반대(0) 신고

 

 

(공동번역성서) 2021. 10. 28. 도란도란글방

 

욥기에 나타난 그리스도

 

오늘은 시가(詩歌)서 마지막으로 욥기를 공부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욥기를 이해하기를 고난을 잘 참으면 믿음이 자라게 되며 복()도 두 배로 받게 된다고 이해들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욥기를 잘 공부해 보면 욥기는 결코 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욥기는 복음(福音)입니다. 아마 욥기만큼 복음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는 책도 드물 것입니다.

욥기라는 이름은 이 책의 등장인물인 욥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욥기가 된 것이지요. 욥은 실제 존재했던 인물입니다.

 

(예제14:14) 14 그리고 거기에 노아나 다니엘이나 욥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세 사람도 옳게 산 덕분에 자기들의 목숨이나 겨우 건질 수 있으리라. 주 야훼가 하는 말이다.

 

하느님이 그의 이름을 거명하시는 것을 보면 그가 실제 존재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언제적 사람인지는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적 증거로 볼 때 욥은 아브라함과 동시대, 족장시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욥기42:16) 16 그 후 욥은 백 사십 년을 살면서 사대손을 보았다. 욥은 이렇게 수를 다 누리고 늙어서 세상을 떠났다.

 

욥의 고난이 끝난 후에도 욥은 140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LXX 70인역 성경을 보면 그 구절이 그의 시련(試鍊)이 있은 후에 170년을 살았다. 따라서 그는 모두 240년을 향유(享有)하였다라고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욥에게 고난이 닥친 것이 욥의 나이 70이었을 때라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사실이든 간에 욥이 200년을 넘게 장수(長壽)를 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수명(壽命)은 족장시대의 일반적 평균 수명이었습니다.

 

(창세25:7) 7 아브라함은 백 칠십 오 년을 살았다.

 

그리고 욥기 13절에 보면 욥의 부귀의 정도를 가축의 수효로 제시를 합니다.

(욥기1:3) 3 그에게는 양이 칠천 마리, 낙타가 삼천 마리, 겨릿소가 오백 쌍, 암나귀가 오백 마리나 있었고 종들도 매우 많았다. 그는 동방에서 으뜸가는 사람이었다.

 

이것도 역시 족장시대의 관례였습니다.

(창세12:16) 16 아브람은 그 덕분에 대접을 받고 남종들과 여종들, 양떼와 소떼, 암나귀와 수나귀, 그리고 낙타를 여러 마리 받았다.

 

이렇게 족장시대에는 부()의 정도를 가축의 수요로 헤아려 표현을 했습니다. 그리고 욥은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같은 족장들처럼 자기 가문의 제사장 적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욥기1:5) 5 이런 잔치가 한 차례 돌아가고 나면 욥은 그들을 불러다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게 하고 아침 일찍이 그들 하나하나의 몫으로 번제를 드렸다. 아들들이 속으로 죄를 짓고 하느님께 욕을 돌렸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므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욥이 하는 일은 언제나 이러하였다.

 

모세 이후에는 레위지파 사람들이 제사를 드렸지요. 그 전에는 집안의 가장들이 제사장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면 욥은 모세 시대 이전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모세 시대 이전을 우리가 족장시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족장 시대에는 하느님께 대한 대표적인 호칭이 솨다이였습니다. 욥기에도 그솨다이라는 단어가 31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욥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2,000년경 서부 셈족 사람들이 많이 가졌던 이름이었습니다. BC1,000년경만 해도 그런 이름을 쓰진 않았답니다. 그래서 욥은 족장시대의 사람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욥기의 저자는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욥기의 저자는 욥이다, 엘리후다, 모세다, 솔로몬이다, 이사야, 히즈키야, 예레미야, 바룩, 에즈라 중 한 사람으로 거론이 되지만 욥기의 저자를 증명할 만한 분명한 자료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나중에 천국에 가서 물어보지요 뭐.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욥기의 저자는 뛰어난 문학적 재능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입니다. 현대의 문학자들도 이 욥기의 문학적 기교와 수려함에 혀를 내 두를 정도입니다. 유수한 문학가들이 이 욥기를 세계 문학의 걸작 중의 걸작으로 손을 꼽습니다. 그래서 문학도들은 이 욥기를 깊이 연구를 합니다.

이 욥기의 기록 연대도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알 필요가 없으니까 안 알려 주시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생각하자고요. 그럼 이 욥기의 내용을 한번 분석해 보겠습니다. 욥기는 총42장의 긴 책입니다.

 

1:1-5 까지는 욥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그리고 1:6-12에서 첫 번째 천상의 장면이 나옵니다.

하늘나라에서 하느님과 사탄이 대화를 나누십니다. 어떻게 사탄이 하늘나라에서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지 않으니까 궁금해 하지 말자고요.

하느님께서 욥을 칭찬하십니다. “네가 내 종 욥을 보았느냐?”하시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사탄이 대답 합니다 그가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敬畏)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그에게 많은 것을 주셨으니까 하느님을 경외하지요그랬더니 하느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칠 것을 허락합니다. 그게 두 번째 부분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이 욥이 재난을 당하는 장면입니다. 그게 1:13-22까지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부분에서 다시 천상의 장면이 나옵니다. 그게 2:1-6까지고요. 욥이 그의 모든 소유가 다 날아가 버렸는데도 여전히 순전(純全)함을 지켰다고 하느님께서 칭찬하시니까 사탄이 그럼 이제 그의 살과 뼈를 한번 쳐 보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또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부분인 2:7-10에서 욥의 신체적 재난의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는 2:11-13에서 욥의 세 친구가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3장 전체에서 욥이 자신의 삶을 저주합니다.

그리고 4장부터 26장까지에서 욥의 세 친구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 그리고 욥의 변론들이 이어집니다. 총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각기 자기들의 경험과 지식을 다 동원해서 욥이 뭔가 잘 못을 했기 때문에 그러한 고난을 받는 것이라고 주장을 하고 욥은 나는 정말 아무 잘못 없다라고 반박을 합니다.

그리고 27, 28장에서 욥이 첫 번째 독백을 합니다. “난 잘못 없다

 

(욥기27:1-6) 1 욥이 계속해서 탄식하며 읊조렸다. 2 나의 옳음을 마다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나에게 고통을 주시는 전능하신 분의 이름으로 말한다. 3 나의 입김이 끊기지 않고 하느님의 숨결이 나의 코에 붙어 있는 한, 4 나의 입술은 맹세코 거짓말을 않으리라. 나의 혀는 허풍을 떨지 않으리라. 5 내가 머리를 숙이고, 자네들이 옳다고 할 줄 아는가? 어림도 없는 일, 나 숨지기까지 결코 굽히지 않겠네. 나에게는 잘못이 하나도 없네. 6 내가 죄없다는 주장을 굽힐 성싶은가? 이 날 이 때까지 마음에 꺼림칙한 날은 하루도 없었네.

 

그리고 29장과 3031장에서 두 번째 독백을 합니다. 29장에서는 과거에 좋았던 시절을 회상합니다. 그리고 30장에서는 애가를 부릅니다. “나는 너무 너무 슬프고 괴롭다그리고 31장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이렇게 욥이 끝까지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자 이제 그 세 친구와 욥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엘리후라는 사람이 등장해서 욥과 그의 세 친구들에게 일장 연설을 합니다. 그것이 32장에서 37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욥기32:1-5) 1 이렇듯이 욥이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자 세 친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2 그런데 람족 출신인 부스 사람 바라켈의 아들 엘리후가 욥을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하느님보다도 옳은 체하는 것이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3 그는 욥의 세 친구에게도 솟아오르는 의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에게 답변다운 답변을 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잘못이 하느님에게 있는 것이 되어 버렸으므로 못마땅하였던 것이다. 4 그러나 그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그들이 욥과 말을 주고 받는 동안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5 엘리후는 세 친구가 답변다운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의분을 느꼈다.

 

엘리후라는 청년이 욥과 세 친구를 묵사발을 만듭니다. 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욥기33:8-30) 8 내 귀가 당신의 말을 어찌 한 마디인들 놓쳤겠소. 당신이 하는 말을 나는 다 들었소. 9 '나는 순결하여 죄가 없다. 깨끗하여 거리낄 것이 없다. 10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나를 몰아 세울 구실이나 찾으시고 나를 원수로 여기신다. 11 나의 발에 차꼬를 채우시고 나의 걸음을 낱낱이 감시하신다.' 12 이런 당신의 말을 나는 도저히 옳게 받아 들일 수 없소. 똑똑히 일러 드리리다. 하느님은 사람과 비길 수 없는 분이오. 13 그런데, 당신의 말에 한 마디 답변도 않으신다고 해서 어떻게 하느님을 비난할 수 있겠소? 14 사람이 모를 뿐,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길은 이런 길도 저런 길도 있다오.

15 깊은 잠이 덮어 씌워 모두들 자리에 쓰러져 곯아 떨어지는 밤에 하느님께서는 꿈에 말씀하시고 나타나 말씀하시지 않소? 16 사람들의 귀를 열어 주시고 깜짝 놀라게도 하시어 17 악한 일에서 손을 떼고 건방진 생각을 버리게도 하신다오. 18 그리하여 목숨을 무덤 어귀에서 건져 내시고 생명을 저승길에서 돌려 세우시지요. 19 병상에서 신음하는 괴로움, 뼈 마디마디 쑤셔 대는 아픔이 그의 징계가 되는 수도 있다오.

20 음식이 전혀 입에 당기지 않아 진수성찬도 입에 쓰시만 하고 21 뼈들은 앙상하게 가죽으로 덮여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몰골, 22 그 인간의 넋은 무덤의 문턱에 다다랐고 그의 생명은 죽음의 문턱을 막 넘어서려는데, 23 수많은 하늘의 천사 중 하나가 나타나 일깨워 준다면, 마음을 바로잡으라고 일러 준다면 다 되는 일, 24 이렇듯이 자비를 베푸시어, '살려 주어라. 무덤으로 들어 가지 않게 하여라. 나 이미 속전을 받았다' 하고 말씀해 주신다면 25 그의 근육은 젊은이처럼 팽팽해지고 혈기왕성하던 한창 때로 돌아 갈 것이오. 26 하느님께 빌기만 하면 은총을 받아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의 얼굴을 뵙게 되지 않겠소? 하느님께서 그의 무죄를 선포해 주시지 않겠소?

27 이렇게 되면 그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할 것이오. '나는 죄를 지었다. 나는 부정을 저질렀다. 그런데, 그는 나의 죄를 벌하시지 않았다. 28 무덤 어귀에서 나의 목숨을 살려 내시어 나의 생명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29 ,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이런 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사람을 이렇게 돌보아 주신다오. 30 사람의 목숨을 무덤에서 살려 내시고 빛을 받아 생기를 되찾게 하여 주신다오.

 

이렇게 엘리후는 하느님의 주권에 대하여 욥과 세 친구들에게 강하게 피력합니다. 그 엘리후의 연설이 끝나자 이제 바로 하느님께서 등장하십니다. 그 부분이 38:1-40:2까지입니다. 하느님은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욥기38:1-6) 1 야훼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대답하셨다. 2 부질없는 말로 나의 뜻을 가리는 자가 누구냐? 3 대장부답게 허리를 묶고 나서라. 나 이제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해 보아라.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그렇게 세상물정을 잘 알거든 말해 보아라. 5누가 이 땅을 설계했느냐? 그 누가 줄을 치고 금을 그었느냐? 6 어디에 땅을 받치는 기둥이 박혀 있느냐? 그 누가 세상의 주춧돌을 놓았느냐?

 

그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나자 그 때까지 자기는 결백하다고 악악거리던 욥의 답변이 이렇게 나옵니다.

(욥기40:3-5) 3 욥이 야훼께 대답하였다. 4 , 제 입이 너무 가벼웠습니다. 무슨 할 말이 있겠사옵니까? 손으로 입을 막을 도리밖에 없사옵니다. 5 한번 말씀드린 것도 무엄한 일이었는데 또 무슨 대답을 하겠습니까? 두번 다시 말씀드리지 않겠사옵니다.

 

그리고는 다시 하느님께서 두 번째 말씀하십니다. 그 부분이 40:6-41:34입니다. 그 말씀을 다 듣고 욥이 최후의 고백을 이렇게 합니다. 그 부분이 42:1-6까지입니다.

(욥기42:1-6) 1 욥이 야훼께 대답하였다. 2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이루십니다. 3 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리운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 4 당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5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6 그리하여 제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엘리바즈를 비롯한 욥의 세 친구들에게 이러한 판결을 내립니다.

(욥기42:7-9) 7 야훼께서 욥과 말씀을 마치신 다음에 데만 사람 엘리바즈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너의 두 친구를 생각하면 터지는 분노를 참을 길 없구나. 너희는 내 이야기를 할 때 욥처럼 솔직하지 못하였다 8 이제 너희는 수소 일곱 마리와 수양 일곱 마리를 가지고 나의 종 욥에게로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려라. 나의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를 드려 주리라. 그러면 그의 기도를 듣고 나는 너희를 크게 벌하지 않으리라. 너희는 내 이야기를 할 때 나의 종 욥처럼 솔직하지 못하였다.' 9 데만 사람 엘리바즈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바르는 곧 야훼의 분부대로 하였다. 야훼께서는 욥의 기도를 기꺼이 들어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2:10-17까지에서 욥의 모든 사정이 두 배()로 회복이 되는 장면이 나오고 욥기는 끝이 납니다. 우리가 이 욥기가 가진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욥기를 읽게 되면 하느님의 공의(公義)”에 회의(懷疑)를 갖게 되는 엉뚱한 신정론에 빠지게 됩니다.

이 신정론(theodicy)은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하느님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과의 조화를 학문적으로 모색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존재하시는데 왜 세상이 이렇게 모순투성이인지, 아니면 악인이 의인을 압제하는 것을 볼 때 혹시 하느님은 공의의 하느님이 아니신 것은 아닌가?’하는 회의(懷疑)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것이 신정론(神正論)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이 욥기를 읽으시면서 그런 회의가 들지 않으셨습니까?

왜 착한 사람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예수 잘 믿으면 복 받고 잘 산다고 해서 믿었는데 예수 믿고 났더니 오히려 일이 더 잘 안 풀리고 행복 끝 고생 시작이 되었다이런 경험들 없으세요? 욥기에 그러한 하느님의 불공평함과 불합리함이 보이지 않으세요?

욥기를 단순히 욥이 당하는 고난의 관점에서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욥기는 인간의 고통(苦痛)과 고난(苦難)의 문제에 대한 해답(解答)을 제시하는 책이 아닙니다.

욥기는 구원(救援)을 얻은 의인(義人)들은 인생을 통해서, 신앙생활을 통해서, 고난을 통해서 자신들이 받아 가지고 있는 그 선물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언약은 반드시 완성이 되고야 만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반드시 인과율에 의해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진리도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또 아울러서 올바른 신정론에 대해서도 우리에 게 가르쳐 주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참 지혜, 하느님의 지혜 앞에서의 인간의 지혜의 보잘 것 없음이 잘 나타나 있는 책인 것 입니다. 욥기는 이렇게 단순히 고난의 문제에 관해서 기록되어 있는 책이 아니라 복음이 적혀 있는 책입니다. 그것을 지금부터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욥기 1장에 보면 욥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거기서부터 출발해 보지요.

(욥기1:8-12) 8 야훼께서 사탄에게 '그래,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 보았느냐? 그만큼 온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하고 말씀하시자, 9 사탄이 야훼께 아뢰었다.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겠습니까? 10 당신께서 친히 그와 그의 집과 그의 소유를 울타리로 감싸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축복해 주셨고 그의 가축을 땅 위에 번성하게 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11 이제 손을 들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 보십시오. 그는 반드시 당신께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 12 야훼께서 사탄에게 이르셨다. '좋다! 이제 내가 그의 소유를 모두 네 손에 붙인다. 그러나 그의 몸에만은 손을 대지 말아라.' 이에 사탄은 야훼 앞에서 물러나왔다.

 

욥이 왜 고난을 당합니까? 사탄이 참소(讒訴)해서? 사탄이 왜 참소 했습니까? 하느님이 욥의 의로움을 자랑하시니까? 그럼 결론적으로 욥은 왜 고난을 당하게 된 것입니까? 의로워서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하느님 앞에 죄 지은 사람들이 당하는 형벌이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그래서 누가 조금 어려움을 겪으면 은연중에 저 사람이 하느님 앞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벌을 받는 걸 거야라고 생각들 합니다. 그것을 인과율(因果律)이라고 하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다시피 욥은 의인(義人)이라서 고난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우리가 그 일곱 재앙에 함께 노출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왜 우리에게도 환난이 있고 재앙이 있고 궁핍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새 창조에는 역() 창조가 선행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 말 탄 자들이 두 산 사이, 골짜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해 드렸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 욥기를 그 역 창조의 관점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첫 창조 때의 아담과 이 욥을 한번 비교해 볼까요?

(욥기1:1-5) 1 우스라는 곳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욥이었다. 그는 완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2 그의 슬하에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었다. 3 그에게는 양이 칠천 마리, 낙타가 삼천 마리, 겨릿소가 오백 쌍, 암나귀가 오백 마리나 있었고 종들도 매우 많았다. 그는 동방에서 으뜸가는 사람이었다. 4 그의 아들들은 번갈아 가며 자기 집에서 잔치를 차리고 세 누이도 불러다가 함께 먹고 마셨다. 5 이런 잔치가 한 차례 돌아가고 나면 욥은 그들을 불러다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게 하고 아침 일찍이 그들 하나하나의 몫으로 번제를 드렸다. 아들들이 속으로 죄를 짓고 하느님께 욕을 돌렸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므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욥이 하는 일은 언제나 이러하였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이렇게 거두절미하고 처음부터 무죄한 자, 순전한 자로 묘사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브라함? 바울?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던 자였고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 때려죽이러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 누구지요? 아담입니다.

그가 죄를 짓기 전에는 아담은 왕이요, 제사장이요, 예언자로 에덴을 지키도록 명령을 받은 무죄한 자였습니다. 그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다스리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욥은 동방의 가장 큰 자였습니다. 왕입니다. 그는 자식들을 위해 번제를 드렸습니다.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가축과 재산과 자식이 어마어마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요구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어 내고 있는 모습이지요? 창조의 완성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것들이 하나하나 파괴됩니다.

 

(욥기1:13-19) 13 하루는 욥의 아들과 딸들이 맏형의 집에 모여서 잔치를 벌이고 있었는데, 14 한 심부름꾼이 욥에게 뛰어 와서 고하였다.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었는데 15 스바 사람들이 달려들어 모두 약탈해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꾼들을 모조리 칼로 쳐죽였는데 저만 가까스로 살아 남아서 이렇게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16 그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였다.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양떼와 일꾼들을 모두 살라 버렸습니다. 저만 가까스로 살아 남아서 이렇게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17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는 것이었다. '갈대아 사람 세 무리가 달려들어 낙타떼를 모두 약탈해 가고 일꾼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저만 가까스로 살아 남아서 이렇게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18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였다. '주인님의 자녀분들이 맏형님의 집에 모여서 먹고 마시는데 19 광야에서 모진 바람이 불어 와 그 집 네 모퉁이를 쳐서 무너뜨렸습니다. 젊은이들은 모두 깔려 죽었고 저만 가까스로 살아 남아서 이렇게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완성된 창조의 모습이 반대로 다 파괴되어 버리는 모습입니다. 새 창조는 반드시 역 창조를 거쳐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새 언약으로 결론지어지지 않는 옛 언약은 하느님의 약속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고린도 후서 3장을 예로 들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옛 언약인 구약의 직분자인 모세를 죽게 하는 직분, 정죄의 직분이라고 바울이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처럼 첫 창조는 그 자체가 하느님의 목표 지점이 아니었습니다. 그 첫 창조를 거쳐 역 창조를 거쳐 새 창조에 이르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궁극적인 목표 지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면 반드시 역 창조의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을 받고도 여전히 자기 안에 공존하는 하느님 없이 살도록 잘 훈련되어진 성품, 인격, 습관, 버릇이런 어둡고 못 된 것들이 고난과 환난과 궁핍 등을 통해서 무너지고 부서지고 잘려서 자기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조금 씩 조금씩 드러나게 되는 것을 우리가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이고, 구원을 받고 있는 삶이라고 구원의 현재시제로 설명하는 것이고, 이미 이루어 진 역 창조를 몸으로 체험하는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 안에 선물로 넣어 주신 어떤 보물이 있는데 우리의 죄 된 경향, 악한 성품, 습관 같은 것들이 그 보물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역 창조를 통해서 그 썩어 가는 첫 창조의 것들을 부수어 버리시고 새롭게 창조된 그의 실체를 조금 씩 조금씩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욥이 욥기 서두에서 어떤 신앙고백을 하는지 보세요.

(욥기1:20-22) 20 그제야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는 땅에 엎드려 21 입을 열었다. '벌거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 가리라. 야훼께서 주셨던 것, 야훼께서 도로 가져가시니 다만 야훼의 이름을 찬양할지라.' 22 이렇게 욥은 이 모든 일을 당하여 죄를 짓지 않았고 하느님을 비난하지도 않았다.

여러분 이런 신앙 고백 하실 수 있으세요?

 

(욥기2:7-10) 7 사탄은 야훼 앞에서 물러나오는 길로 욥을 쳐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심한 부스럼이 나게 하였다. 8 욥은 잿더미에 앉아서 토기조각으로 몸을 긁었다. 9 그의 아내가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도 요지부동이군요? 하느님을 욕하고 죽으시오.' 10 그러나 욥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조차 미련한 여인처럼 말하다니!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았는데 나쁜 것이라고 하여 어찌 거절할 수 있단 말이오?' 이렇게 욥은 이 모든 일을 당하여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

욥은 이러한 위대한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욥은 그의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한 사람입니다.

 

(욥기7:17-21) 17 사람이 무엇인데, 당신께서는 그를 대단히 여기십니까? 어찌하여 그에게 신경을 쓰십니까? 18 어찌하여 아침마다 그를 찾으시고 잠시도 쉬지 않고 그에게 시련을 주십니까? 19 끝내 나에게서 눈을 떼시지 않으시렵니까? 침 삼킬 동안도 버려 두시지 않으시렵니까? 20 사람을 감시하시는 이여, 내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당신께 무슨 큰 손해라도 된단 말씀입니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십니까? 어찌하여 내가 당신께 짐이 된단 말씀입니까? 21 어찌하여 나의 죄를 용서하시지 않으십니까? 죄악을 벗겨 주시지 않으십니까? 나 이제 티끌 위에 누우면 당신께서 아무리 찾으신다 하여도 이미 없어져 있을 것입니다.

 

욥은 그 모든 고난이 주님의 허락하심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욥기10:7-14) 7 당신께서는 내가 죄인이 아님을 아시고 또 아무도 이 몸을 당신의 손에서 빼낼 수 없음도 아십니다. 8 당신께서는 나를 손수 빚어 만드시고는 이제 마음을 바꾸시어 나를 없애 버리시렵니까? 9 이 몸을 진흙으로 빚으셨음을 잊지 마소서. 어찌 다시 흙으로 돌려 보내시려 하십니까? 10 당신께서는 이 몸을 젖같이 쏟으시어 묵처럼 엉기게 하셨고, 11 가죽과 살을 입히시고 뼈와 힘줄로 얽어 주셨습니다. 12 나에게 목숨을 주시고 숨쉬는 것까지 보살펴 주셨습니다. 13 그러시면서도 속생각은 다른 데 있으셨군요. 그러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14 내가 죄를 짓는가 지켜 보시다가 그 죄에서 풀어 놓아 주시지도 아니하십니다.

 

이렇게 욥은 하느님의 전적인 주권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왜 이러한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한 욥이 3장부터는 그렇게 하느님께 악악거립니까? 그는 의인이었고 위대 신앙 고백을 할 수 있는 자였지만 그는 진정으로 삶 속에서 그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already(이미)... not ye(아직)t”의 교리(敎理)입니다. 이미 우리는 구원을 얻었고 의인이 되었습니다만 우리는 구원을 얻어가야 하고 의인이 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잘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우리 안에 주어진 그 금보다 귀한 은혜의 실체를 하나하나 껍질 벗기듯 벗겨가며 알아 가는 것입니다.

보세요. 욥이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도 무엇을 근거로 하면서 하느님의 주권을 말합니까?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다 하시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무죄입니다를 근거 로 이야기를 해 나갑니다. 그 말은 욥은 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인의 삶이 인과율에 의해서 결정지어지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저는 죄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하느님께 항의하는 것입니다 왜 원인이 없는 이런 고난이라는 결과가 있는 것입니까?”

욥은 내내 그것으로 고민합니다. 그 것은 절대 복음이 아닙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것은 세상의 논리입니다. 사탄은 늘 그 인과율로 복음을 희석시켜왔습니다.

욥기 1장에서 사탄이 어떻게 참소(讒訴)를 합니까?

(욥기1:8-10) 8 야훼께서 사탄에게 '그래,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 보았느냐? 그만큼 온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하고 말씀하시자, 9 사탄이 야훼께 아뢰었다.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겠습니까? 10 당신께서 친히 그와 그의 집과 그의 소유를 울타리로 감싸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축복해 주셨고 그의 가축을 땅 위에 번성하게 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느님께서 돈도 주고 명예도 주고 자식들도 많이 주었으니까 욥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 아닙니까? 한번 다 빼앗아 보세요. 그래도 그가 의인(義人)이 되는가?” 사탄이 그렇게 참소(讒訴)합니다. 그게 인과율(因果律)입니다. 원인이 있으니까 결과가 있는 것 아닙니까?“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창세기 315절의 하느님의 언약에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인간은 좋은 것으로 채워주지 않으면 절대 하느님을 경외하고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의로운 자를 만들어 내시더라.“ 이것이 욥기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 은혜를 살짝 가리고 인과율에 의한 거짓 복음을 세상에 뿌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인과율에 의한 종교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믿어줬으니 내게 좋은 것으로 주세요.“”내가 착하 게 살 테니, 열심히 단식기도 할 테니, 열심히 봉사 할 테니 좋은 것으로 보상해 주세요.“ 이게 인과율에 의한 종교입니 다. 그리고 그런 것을 보상으로 준다고 가르칩니다.

실제로 인과율에 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내가 믿었고 내가 착하게 살았고 내가 회개해서 구원을 얻었다, 그리고 내가 믿어 주었으니 하느님은 나에게 이러 저러한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삼박자 축복이니 뭐니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지요? 그들이 좋아하는 돈, 건강 다 빼앗아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금방 사탄의 참소(讒訴)대로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 있습니까?”로 갑니다. 그러나 진짜들은 어떻게 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하느님 만으로 만족합니다.”로 갑니다. 하느님은 사탄의 참소를 묵사발로 만들어 버리시고 그 최악(最惡)의 고난 속에 던져진 욥에게서 그 고백을 받아내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느의 열심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는 책()이 욥기입니다.

(하바꾹3:17-18) 17 비록 무화과는 아니 열리고 포도는 달리지 않고 올리브 농사는 망하고 밭곡식은 나지 않아도 비록, 우리에 있던 양떼는 간 데 없고 목장에는 소떼가 보이지 않아도 18 나는 야훼 안에서 환성을 올리렵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렵니다.

욥은 42장에서 바로 이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하느님의 백성들에게서 하느님은 반드시 이 고백을 받아 내시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짜들은 그러한 시험에서 다 떨어져 나갑니다. 인과율은 복음과 완전히 상반되는 것입니다. “인과율은 복음이 아니다욥기는 전부 그 이야기의 반복입니다. 욥의 친구 빌닷의 논리를 한번 보세요.

 

(욥기8:1-7) 1 수아 사람 빌닷이 말을 받았다. 2 언제까지 그런 투로 말하려는가? 자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치 바람 같네 그려. 3 하느님께서 바른 것을 틀렸다고 하시겠는가? 전능하신 분께서 옳은 것을 글렀다고 하시겠는가? 4 자네 아들들이 그에게 죄를 지었으므로 그가 그 죄값을 물으신 것이 분명하네. 5 그러니 이제라도 자네는 하느님을 찾고 전능하신 분께 은총을 빌게나. 6 자네만 흠이 없고 진실하다면 이제라도 하느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자네가 떳떳하게 살 곳을 돌려 주실 것일세. 7 처음에는 보잘 것 없겠지만 나중에는 훌륭하게 될 것일세.

 

어떠세요? 욥의 친구 빌닷이 욥을 책망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느님을 부지런히 구하고 청결하고 정직하면, 네가 형통(亨通)하고 시작은 미약(微弱)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훌륭하리라하고 멋있게 충고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이렇게 살 수 있으세요?

이런 삶이되던가요? 안 되지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네 시작은 미약(微弱)하였으나 네 나중은 멸망(滅亡)이리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가 아니면 죽음으로밖에 갈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그렇게 은혜로 받고 자기 삶 속에서는 인과율에 의해서 복을 받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어찌 삼박자 축복이라는 것이 나올 수가 있습니까? 그건 성도들을 속이는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엘리바스의 논리도 역시 인과율에 의한 논리입니다.

(욥기4:1-8) 1 데만 사람 엘리바즈가 말을 받았다. 2 누가 자네에게 말을 건네려 한다면, 자네는 귀찮게 여기겠지.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일세. 3 여보게, 자네는 많은 사람을 지도하였고 손에 맥이 풀린 사람에게 용기를 주었었네. 4 자네의 말은 쓰러지는 사람을 일으켰고 흔들리는 무릎에 힘을 주었었지. 5 그런데 자네가 이 지경을 당하자 기가 꺾이고 매를 좀 맞았다고 이렇듯 허둥대다니, 될 말인가? 6 자신만만하던 자네의 경건은 어찌 되었고 자네의 희망이던 그 흠없는 생활은 어찌 되었는가?7 곰곰이 생각해 보게. 죄없이 망한 이가 어디 있으며 마음을 바로 쓰고 비명에 죽은 이가 어디 있는가? 8 내가 보니, 땅을 갈아 악을 심고 불행의 씨를 뿌리는 자는 모두 그 심은 대로 거두더군.

 

보세요. 죄 없는 사람은 절대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인과율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면 내가 본 바로는, ‘악을 갈아 재난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더라.’ 라고 하지요? 그의 논리의 근거가 뭡니까? 내가 본 바로는 자기의 이 땅에서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렇게 이 땅의 경험이나 체험으로 추측하고, 미루어 짐작하고, 정의 내리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상식으로 하느님의 지혜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이런 체험 도 합니다. 이른바 직통 계시, 성령 체험 같은 것을 경험합니다.

 

(욥기4:12-21) 12 그런데, 은은히 들려 오는 한 소리 있어 가늘게 나의 귓전을 울렸네. 13 사람들은 깊은 잠에 빠져 밤의 환상으로 가슴을 설렐 때, 14 몸서리치는 두려움이 나를 덮쳐 뼈마디가 온통 떨리고 있는데 15 그의 입김이 나의 얼굴을 스치자 온 몸에 소름이 끼쳤네. 16 나의 눈앞에 누가 우뚝 서는데 그의 모습은 알아 볼 수 없고 만물이 죽은 듯이 고요한 가운데 나, 한 소리를 들었다네. 17 ' 죽을 인생이 어떻게 하느님 앞에서 올바를 수 있으랴? 그 누가 자기를 지으신 이 앞에서 깨끗할 수 있으랴? 18 그의 종들 가운데도 믿을 만한 자 없고 그의 심복들 가운데도 허물없는 자 없는데 19 하물며 땅 위에 터를 잡은 토담에 사는 사람들이랴! 하루살이처럼 쉽게 사라지니 20 하루도 넘기지 못하고 티끌이 되어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지리라. 21 그 천막들의 줄을 거두면 모두들 하릴없이 죽어 가리라.'

 

굉장히 옳은 말 같고 엄청난 체험을 한 것 같지요?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의 이러한 논리나 체험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욥기42:7-8) 7 야훼께서 욥과 말씀을 마치신 다음에 데만 사람 엘리바즈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너의 두 친구를 생각하면 터지는 분노를 참을 길 없구나. 너희는 내 이야기를 할 때 욥처럼 솔직하지 못하였다 8 이제 너희는 수소 일곱 마리와 수양 일곱 마리를 가지고 나의 종 욥에게로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려라. 나의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를 드려 주리라. 그러면 그의 기도를 듣고 나는 너희를 크게 벌하지 않으리라. 너희는 내 이야기를 할 때 나의 종 욥처럼 솔직하지 못하였다.'

 

너희들 말은 틀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信仰)은 그렇게 이 땅의 것으로 보여 지고 이 땅의 것으로 상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욥기5:23-27) 23 자네는 들귀신들과 휴전하고 야수들과 평화를 누리겠지. 24 자네의 장막에는 다시 평화가 깃들이고 목장을 찾을 때 아무 것도 잘못되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일세. 25 자녀들이 마구 불어나 후손들이 푸성귀처럼 번지는 것을 보게 되겠고 26 자네는 무덤에 이르도록 건장하리니 곡식이 영글어 타작마당에 이름과 같을 것일세. 27 여보게, 바로 이것이 우리가 찾아낸 것 아닌가! 아무렴, 그러니 자네도 이 말을 귀담아 들어 두고 아무쪼록 마음에 새겨 두게나.

 

엘리바스가 욥에게 뭐라고 충고합니까? “너 하느님 말씀대로 죄 안 짓고 잘 살면 하느님께서 이 땅의 것들로 보상해 주신다.” 그럽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교를 사람을 중심에 놓고 이 땅의 것으로 보상을 약속하는 사람들은 전부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이 중심에 계시고 하늘의 것으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그리스도교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의 법칙이요 원리인 인과율에 의해서가 아닌 원인이 없는 곳에서 결과를 만들어 내시는 하느님의 지혜로 구원을 완성해 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생활도 바로 그 은혜의 원리에 의해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묵시12:10) 10 그 때 나는 하늘에서 큰 음성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 형제들을 무고하던 자들은 쫓겨났다. 밤낮으로 우리 하느님 앞에서 우리 형제들을 무고하던 자들이 쫓겨났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가 나타났고 하느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보세요. 인과율로 우리를 속이고 인간을 참소 하던 그는 이제 쫓겨났습니다. 구약은 이제 끝난 것입니다. 법을 지켜야 복을 받는 율법 아래에서 우리는 해방이 된 것입니다. 사탄은 이제 절대 우리를 참소할 수 없습니다. 인과율에 의한 상벌의 시대는 끝난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속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인과율에 얼마나 젖어 있는지 몰라요. 그래서 자기 일이 조금만 안 되면 지난주일 날 예배를 빼먹어서 그런가?“ 이런 생각들을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인과율에 지배를 받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는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여전히 인과율에 젖어 있는지, 은혜를 정말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보시려면 한 세 달 동안 교회를 나오지 말아보세요. 그리고 성경도 읽지 마시고 기도도 하지 말아보세요. “그래도 난 그리스도인이 틀림없어하시는 분이 진짜예요.

교회 한 주 만 빼 먹어도 불안하고 초조하고 혹시 이 일로 내게 어떤 벌이 내려지지 않을까?“ 이렇게 노심초사하는 분은 아직 은혜가 뭔지 잘 모르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또 진짜 시험해 보지는 마세요.

하느님은 인과율에 근거하지 않은 원인 없는 결과 십자가(十字架)”로 그렇게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켜 내심으로 원인과 결과 의 법칙으로 참소하던 자들을 쫓아내시고 그 완성시켜 놓으신 구원을 우리 인생을 통해서 이해시키고 설득시켜 내시는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교는 평생 동안 하느님의 은혜를 깨닫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가능케 하신 하느님의 능력 앞에 겸손히 항복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순종(順從)이요, 거룩인 것입니다.

창세기에서의 아담은 자신을 원인으로 해서 실패를 했지만 욥기에서의 욥은 원인이 없이 성공을 거두는 자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게 신약과 구약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욥이 이유 없이, 까닭 없이, 자기 자신에게서는 요만큼의 근거도 없이 의인으로, 복을 받은 자로 처음부터 등장을 하는 것이고 또 고난을 받을 때도, 세상적인 시각(視覺)으로 볼 때는 까닭 없이, 이유 없이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다 하느님의 지혜에서 나온 하느님의 섭리(燮理)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인 것입니다. 보세요, 그러한 고난의 끝에 하느님께서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내십니까?

 

(욥기38:1-3) 1 야훼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대답하셨다. 2 부질없는 말로 나의 뜻을 가리는 자가 누구냐? 3 대장부답게 허리를 묶고 나서라. 나 이제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해 보아라.

 

욥이 계속해서 자신이 옳고 하느님이 실수하시는 것이라고 자기의 지혜를 여전히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욥에게서 항복을 받아내십니다.

 

(욥기40:4-6) 4 , 제 입이 너무 가벼웠습니다. 무슨 할 말이 있겠사옵니까? 손으로 입을 막을 도리밖에 없사옵니다. 5 한번 말씀드린 것도 무엄한 일이었는데 또 무슨 대답을 하겠습니까? 두번 다시 말씀드리지 않겠사옵니다. 6 야훼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대답하셨다.

 

그리고 능력 면에서도 욥의 항복을 받아내십니다.

(욥기40:6-9) 6 야훼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대답하셨다. 7 대장부답게 허리를 묶고 나서라. 나 이제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8 네가 나의 판결을 뒤엎을 셈이냐? 너의 무죄함을 내세워 나를 죄인으로 몰 작정이냐? 9 네 팔이 하느님의 팔만큼 힘이 있단 말이냐? 너의 목소리가 천둥소리와 같단 말이냐?

 

(욥기42:2-6) 2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이루십니다. 3 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리운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 4 당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5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6 그리하여 제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칩니다.

 

욥은 지혜(知慧)의 면에서나 능력(能力)의 면에서 모두 하느님 앞에 완전한 항복(降伏)을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 바로 이 항복을 받아 내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하느님께 항복 할 때 진정한 승리(勝利)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욥의 고백 후에 욥이 풍성한 하늘의 풍요를 획득해서 구원이 완성되는 모습으로 욥기가 끝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교는 이 땅의 것을 열심히 구하다가 이 땅의 것으로 풍성하게 보상받고 이 땅에서 장수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나는 천국보다 여기가 훨씬 좋아요하고 이마빡에 써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과 조금 도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느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배우며 하느님의 지혜에 순종하고 비록 인과율(因果律)에 의해 나에게 이 땅에서 주어지는 보상이 없다 할지라도 하느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자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방해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 하느님은 반드시 우리에게서 하느님만 옳습니다.”라는 고백을 받아내시고야 말, 분이시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말고 다른 곳에 눈 두지 마시고 오로지 우리의 소망(所望), 천국을 향하여 올곧게 가십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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