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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11-03 조회수1,687 추천수10 반대(0)

지금은 음원(音源)’으로 음악을 듣지만 예전에는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표지에는 가수들의 얼굴이 있고, 판에 수록된 노래가 차례대로 적혀있었습니다. 가수들은 수록된 모든 노래를 애착을 가지고 부르지만 팬으로부터 사랑받는 노래는 그 중에 일부입니다. 많은 노래가 사랑받지는 못하지만 가수들은 자신이 불렀던 노래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도공은 열과 성을 다해서 도자기를 만들지만 손님들이 사가는 것은 그 중에 일부입니다. 팔린 도자기도 사랑하지만, 팔리지 않고 가게에 남아 있는 도자기도 마찬가지로 사랑할 것입니다. 도자기에 도공의 땀과 노력이 스며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강론을 쓰면서 생각합니다. 어떤 것은 아주 쉽게 쓰지만, 어떤 것은 무척 힘들게 쓰게 됩니다. 강론을 듣는 분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강론도 의미 있지만, 그렇게 울림이 없었던 강론도 제 삶의 한 부분이기에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가수가 자신이 부른 노래를 사랑하듯이, 도공이 자신이 만든 도자기를 아끼듯이, 제가 강론을 소중하게 생각하듯이 부모님은 자식들을 모두 사랑합니다.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서 자기의 앞가림을 잘 하는 자식은 자랑스러워서 사랑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고, 감수성이 뛰어난 자식은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그 마음을 사랑합니다. 마음이 여려서 늘 상처를 받는 자식은 안쓰러워서 사랑합니다. 열심히 하지만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자식은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가려는 용기를 사랑합니다. 잘못된 선택으로 방황하는 자식은 예전에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사랑합니다. 어머니도 그러셨습니다. 수도자와 성직자가 된 자식은 주어진 소임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결혼한 자식은 화목한 가정을 이루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았다.’라고 하신 하느님께서는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차별과 편견이 없으셨습니다. 도공이 도자기를 만들 듯이, 하느님 사랑의 숨결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차별과 편견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농사를 지으면서 도시를 만들면서 생겨났습니다. 사회를 조직하면서 계급이 생기면서 생겼습니다. 노예, 천민, 양민, 귀족, 왕이라는 신분이 생기면서 차별과 편견이 들어왔습니다. 자본주의가 우리 삶에 깊이 들어오면서 능력과 재산에 따른 차별과 편견이 생겼습니다. 피부, 성별, 민족, 국가를 기준으로 우리는 차별과 편견을 키워왔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절대적인 빈곤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가난과 굶주림, 전쟁과 폭력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난민으로 떠돌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꿈 꾸셨던 세상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밤을 새워 찾는 목자처럼 차별과 편견이 없는 세상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회당에서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렸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집니다. 묶인 이를 풀어주고, 갇힌 이에게 자유를 주고, 아픈 이는 치유해 줄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이들은 모두 나에게 오십시오. 나의 멍에는 가볍고, 나의 짐은 가볍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십시오. 들에 핀 꽃을 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새와 꽃을 사랑하셔서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하느님을 닮은 여러분을 먹이시고 입히실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먼저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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