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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 목요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독서,복음서 역주,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11-03 조회수877 추천수2 반대(0) 신고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성 가를로 보로메오 주교는 1538년 이탈리아 북부 지방 아로나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비오4세 교황이 그의 외삼촌이다. 신심 깊은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일찍부터 학문 연마에 힘썼으며, 사제가 되어 훗날 밀라노의 대주교로 임명된 뒤에는 교회 개혁에 크게 아바지하였다. 또한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제도적인 지원책을 마련하여 널리 보급시켰다. 1584년에 선종한 그를 1610년 바오로 5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로마서 역주(14,7-12)

14

7 사실 우리중에 아무도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우리 중에 아무도 자신을 위해서 죽지 않습니다.

8 우리가 살면 주님의 위해서 살고, 우리가 죽으면 주님을 위해서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거나 죽거나 주님께 속합니다.

9 이러한 이유로도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는데, 그것은 그분이 죽은 자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10 그러나 당신의 경우 당신은 왜 당신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혹은 당신 자신은 왜 당신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사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11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주께서 말씀하신다---내 앞에 모든 무릎이 꿇을 것이며, 모든 혀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리라.

12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자신에 관해 (하느님께) 셈을 하게 될 것입니다.

 

 

 

주해

8

죄와 죽음과 율법의 지배에서 자유롭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하느님을 위해 사는 이들이다. 채소나 고기를 먹거나 먹지 않는 것이 그들의 생명에 중요하지 않다. 삶과 죽음의 목적은 주님을 위한 것이다.

 

9

그리스도가 죽고 부활하심으로써 온 우주의 주님으로서 다스리신다는 것은 약한 이들이나 강한 이들이나 모두 주님께 속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들이 음식 문제나 축일 규정으로 서로 심판하는 것은 주님의 보편적 주권을 승복하는 것이 아니다.

 

10

2고린 5.10 참조.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되기 때문에 자기는 심판받지 않을 자인 것처럼 남을 심판할 수 없다.

 

11

이사(LXX) 49.1845.23을 혼합해서 인용했다.

 

 

 

 

 

 

루카복음 역주(15,1-10)

 

잃은 양을 되찾고 기뻐하는 목자 비유(마태 18,12-14)

15

1 세관원들과 죄인들이 모두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분에게 다가왔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이 터덜거리며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식사하는구나했다.

3 그러자 그들을 향해 이야기하시어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가 양 백 마리를 갖고 있다가 그 가운데 하나를 잃는다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것을 되찾을 때까지 (찾아) 나서지 않겠습니까?

5 그러다가 되찾으면 기뻐서 자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되찾았습니다하고 그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7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이와같이 회개가 필요없는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늘에서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잃은 은전을 되찾고 기뻐하는 부인 비유

8 “혹은 어느 여자가, 드락메 열 닢을 갖고 있다가 드락메 한 닢을 잃게 되면, 등잔불을 켜고 집안을 쓸며 되찾을 때까지 샅샅이 찾아 보지 않겠습니까?

9 그러다가 되찾게 되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드락메 한 닢을 되찾았습니다하고 말할 것입니다.

10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이와같이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기쁨이 있습니다.”

 

 

 

주해

잃은 양을 되찾고 기뻐하는 목자 비유

비유의 상황묘사는 루카의 가필. 사실 1-2절은 5,29-30을 옮기다시피 한 것이다. 또한 3절의 그러자 ... 향해 이야기하시다”. “이 비유를 말씀하시다역시 루카의 전형적인 문체다. 이처럼 루카가 1-3절 전부를 형성. 첨가했지만, 그는 본디 예수께서 세 가지 비유를 발설하신 상황을 정확히 도로 밝혀 내었다!

 

4-7절과 마태 18.12-24를 비교하여 각각 편집요소를 제거하고 나면, 비유의 어록 원형을 복구시킬 수 있는데, 대충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를 잃는다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버려둔 채 잃은 것을 찾아 나서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그것을 되찾게 되면(거의 마태 18.12-13) 자기 어깨에 멥니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그는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것을 두고 더 기뻐할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늘에서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잃었다가 되찾은 이를 두고 기쁨이 있습니다(루카 15.7.10).”

 

예수께서는 왜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까? 그분은 세관원들과 죄인들과 어울려 식사하곤 하셨다. 그 때마다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은 그분의 처신을 비난했다. 이에 예수께서는 위의 비유로 답변하셨다. 그러니 일종의 자기변호인 셈이다. 아울러 예수님의 처신은 하느님의 처신을 반영한다는 사실에 유의할 것이다.

 

6

6절은 루카의 가필이리라. 그 까닭인즉 병행문 마태 18,12-14에는 6절이 없을뿐더러 루카의 애용어로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친구는 공관복음 가운데 마태 11.19를 제외하면 오직 루카복음에만 무려 열다섯 번이나 나온다. “이웃은 신약성서 가운데 요한 9.8을 제외하면 루카 14.12; 15.6.9에만 나온다. “불러모으고는 신약성서 가운데 마르 15.16을 제외하면 루카 9.1; 15.6.9; 21.13; 사도 5.21: 10.24; 28.17에만 나온다. “함께 기뻐하다는 네 복음서 가운데 루카 1.58; 15.6.9에만 나온다.

 

7

7절은 대체로 루카가 어록에 수록된 마태 18.13을 옮겨쓰면서 명사 회개”. 동사 회개하다를 덧붙인 것이다. 명사 회개는 네 복음서 가운데 마르 1.4: 마태3.8.11을 제외하면 오직 루카 3.3.3: 5.32; 15.7;24.47에만 나온다. 특히 회개가 필요없는 의인들이란 문구의 낱말 하나하나는 루카 5.31-32에 다 나온다는 점에 유의할 것이다. 동사 회개하다는 마르코에 두 번, 마태오에 네 번 나오는 데 비하여 루카복음에 아홉 번, 사도행전에 다섯 번 나온다.

 

잃은 은전을 되찾고 기뻐하는 부인 비유는 이 비유도 앞의 비유처럼 본디부터 잃음과 찾음-되찾음과 기쁨- 하느님의 기쁨 순으로 엮여 있었을 것이다.

 

9

9절 전반부는 루카의 가필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오늘은 독서(로마14,7-12), 복음(루카 15.1-10)인데 또는 기념일 독서(로마 12,3-13)와 복음(요한 10,11-16)을 봉독할 수 있다.

 

밀라노 대주교는 다른 여러나라 교구중에서도 달리 매우 힘이 있는 자리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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