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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5. 예후의 죄와 죽음 / 북 이스라엘의 멸망[1] / 2열왕기[25]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11-04 조회수1,193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5. 예후의 죄와 죽음(2열왕 10,28-36)

 

이처럼 이스라엘에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기회가 아직 있었다. 이제 이스라엘은 예후의 행동에 따라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만을 섬기면서, 바알의 숭배를 벗어난 삶을 누릴 수가 있었을까? 아니면 계속 바알 숭배에 빠져 들어갔을까? 아무튼 하느님 뜻은 이스라엘을 저버리지 않고 남아있었다. 주님을 찾는 예언자들도 여전히 있었다. 하느님은 계속 그들을 보아왔다.

 

이리하여 예후는 이스라엘에서 바알을 없애 버렸다. 그러나 예후는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죄, 곧 베텔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 숭배에서는 여전히 돌아서지를 않았다(1열왕 12,28-29 참조).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예후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내 눈에 드는 옳은 일을 이렇게 참 많이도 하였으니, 그 점은 정말 잘하였다. 내가 마음에 품은 그대로 아합 집안의 일을 잘 처리하였다. 그러므로 너의 사 대 자손까지,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을 것이다.”

 

그러나 예후는 마음을 다하여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율법에 따라 걷는 일에 충실하지 않았다. 그는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예로보암의 죄에서는 돌아서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이는 신명기계 편집자가 끼워 넣은 것으로서, 주님에 대한 예후의 충성이 매우 상대적이었음을 지적한다. 이렇게 열왕기 저자는 예후의 무자비한 학살을 예찬하지만, 호세아는 가혹하게 비난한다(호세 1,4ㄴ 참조). “고메르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즈르엘이라고 하여라. 머지않아 나는 이즈르엘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어 예후 집안을 벌하고, 이스라엘 집안의 왕조를 없애 버리리라.”

 

그때에 주님께서는 이미 방향을 저버린 이스라엘을 조금씩 찢어 내기 시작하셨다. 이는 가드와 르우벤 지파, 그리고 므나쎄 지파의 반쪽이 차지한 요르단 강 동쪽 지역의 경계를 두고서 하는 말이다(신명 3,12-13; 여호 22,9-13). 그 무렵에 하자엘이 이스라엘의 온 영토를 공격하였다. 그는 요르단 강 동쪽, 갓 사람들과 르우벤 사람들과 므나쎄 사람들이 사는 길앗의 모든 땅, 곧 아르논 강 곁에 있는 아로에르에서 길앗과 바산에 이르는 지역들을 공격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하자엘의 공격으로 패배하여 당하게 되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이스라엘 명망의 큰 수치의 전주곡이다. 아무튼 하자엘은 아람에서 살만에세르3세와 벌인 두 번의 전쟁에서 크게 손실을 입었지만(기원전 841년과 838), 그 뒤 다마스쿠스를 재건하고 크게 그 전성기를 맞는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은 길앗을 전부 잃을 뿐만 이처럼 아니라, 가드를 차지하고 예루살렘을 위협하는(12,18 참조) 하자엘에게, 저 요르단 강 서쪽 지역까지 무참히 짓밟힌다. 이처럼 예후의 아들과 그의 후계자의 통치 아래에서, 그리고 그의 손자의 통치 초기에(기원전 9세기 말과 8세기 초) 이스라엘은 타작 때의 먼지처럼 되어 병거 열 대만 남는다(13,7 참조). 하자엘과 그의 아들 벤 하닷 3세의 가혹한 정복 정책은, 이스라엘을 무력화시킨다(13,3 참조).

 

사실 예후는 초기에는 주님의 뜻대로 아합 집안의 일을 그분 의지를 잘 받들어 무난히 처리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사 대 자손까지,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는 약속까지를 주님께서는 친히 내리셨다. 정말 이에 분명한 것은 이 약속이 예후의 공로로 인한 건 아니었다. 그가 아합의 집안을 멸할 때만 해도 실은 그의 마음은 주님 앞에서 그다지 올바르지 않았다. 다만 아합의 혹독한 죄를 처리하는 그 과정에서 주님의 축복을 받을 뿐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많은 우상을 제거했지만, 오히려 여러 지역에서는 우상이 장려되거나 여전히 존재했다. 이렇듯 임금과 그 백성은 완전히 하느님께 되돌아온 것이 아니었으며, 그분과의 계약 의무를 이행하지를 않았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고통 속에 신음하는 동안 예후는 죽었다. 그는 끝내 이스라엘을 구하지를 못했다. 그가 임금이 되었을 때의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의 나머지 마지막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과 그의 모든 무용에 관한 것은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다. 예후는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사마리아에 묻히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즈가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예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은, 스물여덟 해이다(기원전 841-814).

 

 

아하즈야의 어머니 아탈야는 이스라엘 임금 오므리의 손녀이고 아합의 딸이자 유다 임금 여호람의 아내이다(8,18.26 참조).[계속]

 

[참조] : 이어서 ‘26. 여호야다 사제의 개혁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바알 숭배,에로보암,고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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