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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루카16,9ㄴ-15)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11-06 조회수68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1월 6일 토요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루카16,9-15)

   

 

1독서<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로마16,3-9.16.22-27)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의 협력자들인 프리스카와 아퀼라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 목숨을 구하여 주었습니다나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모든 교회가 그들에게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도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내가 사랑하는 에패네토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를 믿은 첫 번째 사람입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애를 많이 쓴 마리아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나의 동포이며 나와 함께 감옥에 갇혔던 안드로니코스와 유니아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그들은 뛰어난 사도로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암플리아투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협력자인 우르바노와 내가 사랑하는 스타키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16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22 이 편지를 받아쓴 저 테르티우스도 주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23 나와 온 교회의 집주인인 가이오스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이 도시의 재정관 에라스토스그리고 콰르투스 형제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24)·25 하느님은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또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26 이제는 모습을 드러낸 이 신비가 모든 민족들을 믿음의 순종으로 이끌도록영원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예언자들의 글을 통하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7 홀로 지혜로우신 하느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아멘.

 

화답송 시편 145(144),2-3.4-5.10-11(◎ 참조)

◎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 나날이 당신을 찬미하고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양하나이다주님은 위대하시고 드높이 찬양받으실 분그분의 위대하심 헤아릴 길 없어라

○ 세대가 세대를 이어 당신 업적을 기리고당신 위업을 널리 전하리이다당신의 위엄 그 찬란한 영광을 이야기하고당신의 기적을 노래하리이다

○ 주님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복음<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루카16,9-15)

9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0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11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14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제1독서 (로마16,3-9.16.22-27) 

 

구원에 대한 놀라운 복음을 선포한 바오로는, 지금까지의 분위기와 다른 모습을 16장에서 보여 준다.

사도 바오로의 인간적, 개인적이면서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이 감옥에 갔을 때 같이 가주었고,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 주고, 자신을 격려해 주었던 사람들에게 문안하고, 개인적으로 교제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그동안 자신을 헌신적으로 도운 37명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개인적인 문안 인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단순히 인사만 하는 것 같으나, 교회가 무엇이며,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높은 차원의 내용들을 말하고 있다.

 

1) 프리스카와 아퀼라(3-4): 한 부부가 헌신했다.

사도18,1-2를 보면, 원래 로마에 있던 사람들인데,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핍박 때문에, 로마를 떠나 바오로와 합류해던 사람들이다. 이 부부는 바오로가 양육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때문에 사도행전이 가능했고,사도 바오로의 1,2,3차 선교 여행이 가능했다.

4절을 보면,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내 목숨을 구하여 주었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목숨을 내놓고 예수님을 믿는가?  대부분,내가 잘되고 건강하기 위해, 마음의 평화를 찾아서,

고통을 피하거나 문제 해결을 위해서 예수를 믿으려 한다.

목숨을 바쳐서 예수님을 믿으려는 사람들은 얼마되지 않는다.

이들은 사도 바오로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이방인)들의 모든 교회를 위해서도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4절에서 그들은 이 부부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영성적으로 잘 되는 본당을 보면, 누군가 희생을 하고 있다.

새벽 일찍 나오고, 밤늦게 들어가고, 자존심 상하고, 손해보고, 눈물 흘려 기도하고 애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몇몇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예수님과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희생하고 헌신한다.

그 결과 조직이 살아나는 것이다.


1코린16장 19절, 2티모4장19절, 사도18장 26절을 보면, 프리스카와 아퀼라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 부부는 사도 바오로가 쫓겨나면 함께 따라가고, 사도 바오로가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면, 먼저 가서 정리하고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이 부부는 성령 충만하고, 굉장히 지혜로웠다는 사실이 사도 18장 26절에 나타난다.

그 당시 아폴로라는 달변가, 성경에 정통한 자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이 부부가 다 듣고 난 뒤, 아폴로를 따로 불러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예수님을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깊은 성령님에 관한 것이다.


아폴로는 성령에 관한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서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단순히 돈이나 시간, 노력으로 봉사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영적 체험도 풍부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폴로를 가르칠 때에도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조용히 따로 불러 가르쳐 주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인격자였다.

 

2) 에페네토스(5ㄴ): 사도 바오로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를 믿은 첫 번째 사람을 기억학며 안부를 전한다.

자신의 복음 선포의 첫 열매를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 많은 일을 하고도 실망하는 이유는,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에 오면 하느님이 계시는 것 같이 느껴져야 하는데, 일은 있지만 진정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는 바쁜 중에도 자신의 첫 열매를 기억하면서, 기도하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3) 마리아(6): "여러분을 위해 애를 많이 쓴 마리아"라고 되어 있는데,어떤 여성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초대교회의 공동체가 모두 이 여자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본당에도 그런 분이 있다. 누가 봐도 아는 사람이다.

시도 때도 없이 와서 봉사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4) 안드로니쿠스와 유니아(7): 이 두사람은 남자들로 추측한다.

바오로의 동포(친척)라고 소개하나, 그들이 위대한 것은, 바오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함께 갇혔고, 바오로가 매맞을 때 함께 맞았고, 바오로가 수모를 당할 때 함께 수모를 당했으며, 항상 뒤에서 기도해 주고 수고해 준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다.

오늘날 교회가 많아도, 이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없는 것은 집단에 불과하고, 서로 남남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활을 침범 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그들은 뛰어난 사도라고 되어 있고, 바오로보다 믿음의 선배라고 되어 있다.

 

5) 암플리아투스: 이 사람의 이름은 노예에게 쓰던 라틴식 이름이다.

노예 출신의 크리스챤으로, 그가 교회의 식구가 되고, 하느님의 일을 함께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도 바오로는 내가 주님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6) 우르바노와 스타키스(9): 우르바노도 노예 이름이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협력자(동력자)로서 그를 소개한다.

스타키스도 사도 바오로가 내가 사랑하는 자로 소개한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하느님께도 인정을 받지만, 공동체 안에서도 그 인격과 믿음과 겸손함과 능력을 인정받는 영적 봉사자(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7) 테르티우스, 가이오스, 에라스토스, 콰르투스형제: 편지를 대필해 주었던 테르티우스,

교회의 집주인(주방장)을 맡았던 가이오스, 도시의 재정관(재무) 에라스토스에게 안부를 전한다.

  

그리고 우리가 묵상 할 것은 진정한 교회의 모습에 관한 16절의 소중한 말씀이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라는 말씀이다.

교회란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입맞춤이란 진정으로 사랑하고 거리낌없는 사람과 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엄마가 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입맞춤을 한다.

 

믿음이란 하느님과 영적으로 입맞춤하는 것이다.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내안에, 내가 그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교회란 가슴을 터놓고, 친하게 지낼 사람들과 위로와 용서, 이해와 사랑이 오고 가는 곳이어야 한다.

마음을 주고 같이 기도할 수 있는 곳, 같이 격려할 수 있는 곳에서 하느님과 영적으로 입맞춤하는 곳이 교회이다.

말씀과 성체와 입맞추고, 성령님과 입맞추는 곳,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까지도 안식 할 수 있는 곳이 교회여야 한다.

 

로마서의 마지막 부분인 사도 바오로가 전하는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에 관한 말씀(25-26)은 로마서의 제일 첫 부분으로 돌아가 묵상하면, 이 편지를 쓰게 된 목적이 잘 드러나고 달성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로마1,1-4)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1,15)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로마1,16)

 

로마서를 마무리하면서, 복음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나에게 도대체 누구인지, 복음의 사역자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협력하고, 기도하고, 헌신하는지를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16,9ㄴ-15)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9)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자구대로 들으면 당황된다.

선하시고 공의로우신 주님께서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만들어라고  하시니 말이다.

윤리 신학의 기초와 원칙은 목적이 선하면 수단 방법도 선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절은 성경과 양심에 근거한 이런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이 구절의 앞에 나오는 약은 집사(청지기)의 비유 말씀을 잘 알아 들어야 한다.   

 

주인의 재산을 충성과 성실, 책임감과 주인의식으로 관리해야 하는 집사가 주인 모르게 재산을 불의하게 탕진한 것이 드러나 해고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을 때, 그는 또 한번 주인의 채무자의 빚을 자기 마음대로 탕감해 주면서 해고당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자신의 앞날을 준비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불의한 약은 집사를 칭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세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재를 가끔 이용해서 당신의 메세지를 전하신다.

 

그가 저지른 불의와 불의한 방법에 촛점이 있는 게 아니고, 해고 이후의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를 제빠르게 준비하는 그의 민첩성을 본받으라는 데에 비유의 촛점과 핵심이 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느님 나라는 영원한 생명(복락)과 영원한 멸망이 달려 있는 그야말로 정말로 심각한 구원의 문제인데, 이스라엘은 너무나 이 문제를 우습게 취급하고 무시하면서 자기 식의 율법적 종교 생활을 하면서 오신 메시아를 몰라 뵙고, 이 세상과 돈과 육의 문제에 매몰되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무관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식으로 살아간다면, 불보듯 뻔한 그때 그 시간이 반드시 올 때 주님 대전에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때 그 시간은 개인적 죽음으로도 언제 올 지 모르는 것이고,  또한 시체가 있는 곳에 솔개가 달라들듯 필연적으로 오는 종말의 심판으로도 점점 임박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관이신 주님 대전에 회개하지 않고 애써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주님께서 안 계신 것처럼 살면서 무사 안일과 불신앙적 완고함과 무딘 태도를 끝내 고수해서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손해인가?하는 것이다.

 

'불의한 재물로'에서 '불의한'으로 번역된 원어는 '아디키아스' (adikias)인데, '불의한 재물'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을 하고 있다.

 

하나는 의롭지 못하고 올바르지 못한 재물을 의미하고, 두번째는 꿈란 전통에서  '천국의 보화'(마태6,20)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알아 듣는다. 

말하자면, 가치 중립적인 '세속적 재물'이라는 뜻이다.

 

이 세상 속에서만 활용 가능한, 효용 가치의 한계적 속성 (1티모6,17)을 나타내는 재물이란 의미이다.

우리는 바로 이 두번째의 의미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일 때 말씀을 해석하는 데 의문이 없어진다.

 

세속의 사람들이 자신의 출세와 명성과 지위와 안정을 위해 재물을 가지고 인맥을 넓혀가듯이, 그런 열정과 그런 민첩성과 그런 지혜로움으로 하느님 나라와 영생과 영원한 복락을 추구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한17,3)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여기서 '안다' 단어인 '기노스코"(ginosko; I know)는 단순한 지성적 인식이 아니라 안 만큼 자유 의지로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도 사도 바오로처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는(필리3,8ㄱ) 태도를 지닐 때, 예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주님의 일이 나의 일이 되어 주님께서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통해 일하시고, 나도 주님의 일에 충성을 다해 협력하는 친교와 일치를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하여 내가 숨쉬는 이 공기처럼 살아계시는 주님을 이 땅에서부터  성령 안에서 인격적으로 체험하며, 내세의 천국을 보장받고 구원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11월 위령성월, 남은 달력 한 장 앞에서 자신의 죽음과 회개의 의미를 담아보는 시간을 갖으면 좋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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