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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란도란글방 / 세월을 아껴서 해야 할 일 2 (에페5,15-1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11-06 조회수998 추천수0 반대(0) 신고

 

 

(공동번역성서) 2021. 11. 6.

 

세월을 아껴서 해야 할 일

 

(에페5,15-18)

15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서 미련한 자처럼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사십시오. 16 이 시대는 악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 17 여러분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18 술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거기에서 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가짜 구원 확신에 관한 것들을 공부했습니다. 어떤 것이 가짜 확신이었지요? 자신의 체험과 경험을 가지고 구원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공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반응을 한 것을 근거로 구원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 자기의 선행을 근거로 구원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 자신의 종교 행위를 가지고 구원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자기 삶의 변화를 가지고 구원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 이렇게 가짜 확신 속에서 정작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많은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가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부터 공부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가짜 구원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그들은 당신들 혹시 가짜 확신을 갖고 있는 걸지도 몰라라고 가짜 확신에 대해 경고를 들을 때, 화를 내던지 아주 무관심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은 가짜 확신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 같은 것을 들으면 겸손한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진짜 확신과 가짜 확신 사이의 분명한 차이들 가운데 첫째는 진짜 확신에는 겸손이 수반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깨어있는 사람들은 늘 스스로 속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기 때문에,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경고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근신하고 깨어있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후13:5) 5 여러분은 자기의 믿음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스스로 살피고 따져 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계십니까? 만일 깨닫지 못하신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낙제한 것입니다.

 

여기서 너희는 너희의 구원을 시험하고 확증하라도키마조”“페이라조자세히 조사해서 확실하게 확인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늘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것입니다.

머레이진정한 확신을 얻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태도는 바로 구원을 너무나 쉽고, 값싸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자세히 조사하고 심사숙고해서 정말 나의 구원 확신이 바른 것인가를 항상 확인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구원의 확신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요. 진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구원이 너무나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 내 구원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하고 항상 시험하고 확증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가짜들은 자기의 구원을 시험해 보고, 조사해 보라고 권고를 하면 화를 냅니다.

그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집을 짓고 있는 사람에게 건축 감리사가 다시 한 번 그 집이 안전하게 지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라고 권고를 하면 화를 벌컥 내서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고 하는 악덕 부실 시공업자의 심리와 같은 심리인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 모래 위에 지어졌을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가능성에 직면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더욱 거센 저항을 하는 것입니다.

 

존 맥아더는 거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현대 그리스도교에서 확신은 너무도 자주 무시되거나 혹은 주장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 마음대로 자신들의 구원의 확신을 엉터리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당신은 구원 받았어라고 말해 주었다고 해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시험해 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자기들의 확신을 확증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구원에 대하여 의심하는 것은 영적인 건강과 성장에 해가 된다는 가르침만을 받고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건강하거나 혹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가짜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때로 그들은 지나치게 율법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 출석, 선행, 혹은 성경 공부, 기도, 단식 같은 종교 행위를 율법적으로 잘 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가짜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것을 안 하고 있을 때는 불안해서 못 견디게 됩니다. 따라서 지나친 열심을 부리기도 하고 그렇게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분노(憤怒)하며 정죄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구원의 확신은 그들이 읽은 성경 장수로 계산이 되지 그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얼마나 일어 났는 지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도의 횟수도 셉니다.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교회 예배를 성실하게 빼 먹지 않고 참석했는지도 꼬박꼬박 셉니다. 내가 얼마나 단식을 많이 했는지도 꼭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가짜 확신을 가진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불순종을 합리화하며 교회 생활에 전혀 무관심합니다.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만 빼면 불신자들하고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히브12:14) 14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며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힘쓰시오. 거룩해지지 않으면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냥 교회에 나와 주기는 하는데 전혀 삶에 변화가 없습니다. 여전히 술집 출입을 하고 여전히 불법을 행하고 교회에 와서는 교회 멤버들과 사귀거나 교제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이 바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서 이룩해야 할 거룩이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이라는 걸 그들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가짜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 사람들입니다.

 

가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의 네 번째 특징은 성경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거나 혹은 매우 잘 안다고 자랑을 합니다. 양극으로 갈라집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체험이나 선행 등을 구원 확신의 근거로 삼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더 이상 성경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눈만 뜨면 예수님이 나타나고 눈만 뜨면 십자가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눈만 뜨면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데 왜 그들에게 성경이 필요합니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병 고치는 기적이나 귀신을 쫓아내는 기적은 단순히 기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병자들의 병을 고치신 것은 그 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입증하는 행위였습니다.

 

(이사35:1-6) 1 메마른 땅과 사막아, 기뻐하여라. 황무지야, 내 기쁨을 꽃피워라. 2 아네모네처럼 활짝 피워라. 기뻐 뛰며 환성을 올려라. 황무지도 레바논의 영광으로 빛나고 가르멜과 사론처럼 아름다와져 사람들이 야훼의 영광을 보리라. 우리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 3 늘어진 두 팔에 힘을 주어라. 휘청거리는 두 무릎을 꼿꼿이 세워라. 4 겁에 질린 자들을 격려하여라. '용기를 내어라. 무서워하지 말아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원수 갚으러 오신다. 하느님께서 오시어 보복하시고 너희를 구원하신다.' 5 그 때에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리라. 6 그 때에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기뻐 뛰며 벙어리도 혀가 풀려 노래하리라. 사막에 샘이 터지고 황무지에 냇물이 흐르리라.

 

구약 이사야서에 이렇게 메시아가 오시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預言)이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수천 년 동안 메시아를 오매불망 기다려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부터 가짜 메시아들이 들끓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사야서에 예언 된 그 메시아의 일을 행하심으로 구약에 능통했던 유대인들에게 그 분이 진짜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 예수님의 기적(奇蹟)입니다.

 

(루가4:40-41) 40 해질 무렵에 이집 저집에서 온갖 병자들을 다 예수께 데려 왔다. 예수께서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어 모두 고쳐 주셨다. 41 악마들도 여러 사람에게서 떠나 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외쳤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시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하셨다. 악마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가6:17-19)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 와 평지에 이르러 보니 거기에 많은 제자들과 함께 유다 각 지방과 예루살렘과 해안 지방인 띠로와 시돈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는 더러운 악령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그들도 고쳐 주셨다. 19 이렇게 예수에게서 기적의 힘이 나와 누구든지 다 낫는 것을 보고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예수를 만지려고 하였다.

 

보세요, 왜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시는데 그들의 병이 나았다는 표현과 함께 귀신이 나갔다는 표현을 쓰는지 아세요? 예수님께서 오셔서 병든 자를 고치시는 것은 사탄의 세력에게 잡혀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을 자유롭게 풀어 주기 위한 구원의 예표라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분명 전능하신 하느님은 우리의 병을 고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제 성경(聖經)이 완성되었고 그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우리는 확실(確實)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여러분이 그러한 기적들만을 바라보고 말씀에 불성실한 신앙생활을 하신다면 우리는 기적을 쫓는 분들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쫓는 하느님의 백성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사도행19:13) 13 그런데 마귀를 쫓아 낸다고 떠돌아 다니는 몇몇 유다인들까지도 마귀들린 사람들을 향해서 '바울로가 전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고 하면서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마귀를 쫓아 내려고 해 보았다.

 

(마태12:7) 7 '내가 바라는 것은 나에게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는 무죄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세요. 가짜들도 귀신을 쫓아냅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중들도 암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기적을 행한다고요. 그런데 말씀을 등한시하고 그 기적만을 의지해서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다면 그건 너무 위험한 일 아니겠습니까?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많이 공부해서 모든 삶의 모양들을 성경으로 풀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성경 지식이 그들의 삶의 방식까지 바꾸지는 못한 상태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삶을 감추기 위해서 자신의 성경 지식을 자꾸 자랑하고 싶어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4:19-20) 19 나는 주님의 뜻이라면 속히 여러분에게로 가서 교만해진 그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을 직접 알아 보려고 합니다. 20 하느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으니 말입니다.

 

조직 신학을 줄줄이 꿰고 있고 성경을 달달 외우고 있음에도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나오지 않는 그런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그리스도인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진짜 그 사람이 성경을 제대로 많이 아는 사람인지 아니면 가짜 확신을 가진 엉터리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그 사람 주변에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모이고, 아프고 상처받고 외로운 영혼들이 격려를 받고 위로를 받고 일어서게 되면 그 사람은 진짜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줄줄 외우고 있는데 정작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떠나고 오히려 그 앞에서 주눅이 들고 하면 그 사람은 100% 가짜입니다. 왜요? 하느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바른 성경 지식은 능력이 있어서 반드시 그 능력의 산물인 삶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매가 나타나지 않으면 가짜지요.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Master and Commander: The far side of the world라는 소설을 보면 나폴레옹과의 전쟁 당시에 무적의 함대라 불렸던 영국 함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함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함장이었던 잭 오브리 장군의 배 서프라이즈 호가 신출귀몰하는 프랑스 전함 아케론 호를 쫓는 이야기입니다. 그 영국 전함인 서프라이즈 호에 탄 선원들은 모두 그리스도교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항해를 하는데 자꾸 불운이 겹치자 선원들이 성경 요나서를 펴 들고 그 배 안에 있는 요나를 찾습니다.

그 요나 때문에 하느님께서 자기들의 배를 저주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 한 사람을 지목하고 그를 왕따 시켜서 자살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게 영국 함대의 관례였습니다. 그리고 그 죽은 사람의 장례식에 모두 모여 요나서를 읽고 주기도문을 암송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죽일 때 성경의 가나안 정복 전쟁을 근거로 죽인 것을 아십니까? 이렇게 가짜들은 성경의 지식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여 버립니다.

 

우리의 성경지식으로 다른 이들을 오히려 절망하게 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똑똑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무식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을 똑똑하다고 그러지 않습니다. 정말 똑똑함과 지혜로움은 그가 가진 지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유익을 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서 그 성경 지식이 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화평을 나누어주는 능력으로 발휘되도록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가 베드로의 사랑을 입고 그 베드로를 뒤에 가서 꼭 안아준 것처럼 그렇게 다른 이들에게 감사하고 따뜻한 존재가 되셔야 합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들이 그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 예수님처럼 바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가짜들의 특징은 그들이 진리에 지속적으로 저항한다는 것입니다.

진리(眞理)에 저항한다는 말은 그들이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진리인 성경(聖經)을 전혀 읽지 않고 성경 말씀에 대한 가르침이나 설교 듣는 것을 지겨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은 절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합니다.

 

(데살후2:9-10) 9 그 악한 자는 나타나서 사탄의 힘을 빌어 온갖 종류의 거짓된 기적과 표징과 놀라운 일들을 행할 것입니다. 10 그리고 온갖 악랄한 속임수를 다 써서 사람들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진리를 받아 들이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기 때문에 구원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진리(眞理)“히브리어로는 아만헬라어로는 알레떼이아 대해 공부를 했지요? 그 진리를 보는 세 가지 관점 중에서 윤리적 참의 개념을 갖고 그 진리가 참 하느님 자신이며 그 참 하느님을 가시적인 육신으로 설명해 주시러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며 그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 성경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도 부르고 진리라고도 부르는 것이라 설명해 드렸습니다.

지금 데살로니카 후서 2장의 말씀은 그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배우고 읽는 것을 사랑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 자들을 가리켜 구원을 얻지 못한 자들이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십니까? 지금까지 제가 열거해 드린 가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가짜 확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가짜 확신은 아예 확신이 없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존 번연의 천로 역정에 보면 주인공 크리스천이라는 사람이 멸망의 도시를 떠나서 순례를 떠납니다. 그는 갈 곳을 몰라 이리 저리 헤매다가 전도자라는 사람을 만나서 드디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크리스천은 그 전도자가 가리키는 작은 문을 통과하여 좁은 길로 순례를 합니다.

그는 그의 동료인 소망이라는 사람과 함께 강 하나를 건너게 됩니다. 그 강은 죽음이라는 강입니다. 크리스천은 갑자기 자기가 과거에 저지른 죄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는 큰 혼돈과 공포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의 평안을 찾고 그의 동료인 소망과 함께 그 강을 건넙니다.

그런데 그 크리스천이 강을 건너기 전에 무지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무지라는 사람도 천성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지라는 사람은 너무 게을렀습니다. 천성을 향해 가기는 가는데 누구보다 천천히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지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 순례 여행을 하기보다는 자기 혼자 하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가면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고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지도 자기 동료인 헛된 소망이라는 사람과 함께 역시 그 죽음의 강을 건넜습니다. 무지헛된 소망은 그 강 앞에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그 죽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크리스천과 소망이 강을 건너서 그 죽음의 강물에서 나올 때는 천성 문이 활짝 열리고 빛나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말로만 들었던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 모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지와 헛된 소망이 죽음의 강에서 나올 때 그들을 맞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무지와 헛된 소망은 그 강 너머에 있는 문이 자신을 향해 활짝 열릴 것이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그 천성의 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문은 크리스찬과 소망에게 열렸던 것처럼 열리지 않았습니다. 무지와 헛된 소망은 그 천성 문을 힘껏 두드렸습니다. 누군가 그 성 위에서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무지가 외칩니다. “이 문을 좀 열어주세요, 저는 이곳에 들어가야 할 사람입니다그 때 그들을 내려다보던 분이 무지와 헛된 소망에게 두 천사를 내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무지와 헛된 소망을 꽁꽁 묶어서 그 영광의 문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언덕 곁의 한쪽 문으로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그 검은 문을 열고 그 무지와 헛된 소망을 힘껏 그 아래로 던져 버렸습니다. 그 때 크리스천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심지어 하늘 문에서도 지옥으로 통하는 길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늘의 영광의 문으로 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순례자라고도 하고 소망과 확신도 있다고 자신하는데 하늘나라 입구에서 붙들려 영원한 지옥으로 던져질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그 헛된 확신에 거()하지 않고 진짜 확실한 소망과 함께 천성의 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까? 아니 우리가 이 땅에서 온전한 확신을 할 수 있긴 있는 것입니까?

 

(요일5:13) 13 나는 하느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리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헬라어 원어에 맞게 좀 더 충실하게 번역을 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고 너희가 하느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고 확신하게 하기 위해서 이것을 썼다

그러니까 요한일서만 잘 공부해도 우리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요한 일서의 기록 목적이 바로 확신이니까요.

 

(요한20:31) 31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은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도 너희가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어차피 성경은 하느님의 백성들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하느님의 백성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불신자가 성경을 읽고 그 내용을 터득하고 이해해서 구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구원받은 자들이 그 구원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늘나라의 비밀이 기록 된 것이 요한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분명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후1:10) 10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시고 뽑아 주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더욱 확실히 깨닫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절대로 빗나가는 일이 없을 것이고

 

베드로는 성도(聖徒)들에게 말합니다. 부르심과 택하심, 즉 구원을 더욱 굳게 확신하도록 노력하라그러니 분명 우리는 천로역정에 나오는 무지나 헛된 소망같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가짜 확신과 구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진짜 확신에 거할 수 있으며, 진짜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바른 기초가 무엇이겠습니까?

 

조금 더 질문을 쉽게 바꿔 드리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죽음의 강을 건너서 하느님 앞에 섰을 때 하느님께서 천성 문 앞에서 내가 왜 너를 여기에 들여보내야 하지?”라고 물으셨을 때 우리는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그 때 만일 우리 대답이 내가로 시작이 되면 우리는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할 때, 그 근거가 단 0.1%로 라도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모두 가짜 확신입니다.

우리의 구원(救援)하느님의 성품에 대한 바른 인식(認識)과 하느님의 하신 일에 대한 올바른 통찰(洞察)과 하느님의 약속은 진리(眞理)라는 깨달음 속에서 확신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디모후1:12) 12 그래서 지금 나는 이런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으며 또 그분이 내가 맡은 것을 그 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신 합니다.

 

사도 바울의 확신의 근거가 뭐였습니까? 그가 하느님은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바로 그 분이 끝까지 자신을 지켜줄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확신(確信)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이 얼마나 자비(慈悲)가 많으신 분이시며 그 분이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며 얼마나 용서(容恕)가 풍성한 분이신 지를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聖經)을 진지(眞知)하게 연구(硏究)하지 않고 자신의 구원(救援)을 확신한다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성품을 알 수 없고 그 하느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우리의 구원 확신의 기초를 자꾸 나와 나의 체험 속에서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17:3)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러한 성품을 지니고 계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역사적인 사건에 우리 구원 확신의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인간으로 보내셨습니다.

 

(디모전1:15) 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은 틀림없는 것이고 누구나 받아 들일 만한 사실입니다. 나는 죄인들 중에서 가장 큰 죄인입니다.

 

그분은 구약에 예언된 대로 실제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마태2:1-2) 1 예수께서 헤로데왕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나셨는데 그 때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나자렛에서 자라셨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마태27:26-50) 26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빠를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게 한 다음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내어 주었다. 27 총독의 병사들이 예수를 총독 관저로 끌고 들어 가서 전 부대원을 불러 모아 예수를 에워쌌다. 28 그리고 예수의 옷을 벗기고 대신 주홍색 옷을 입힌 뒤 29 가시로 왕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린 다음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의 왕 만세!' 하고 떠들며 조롱하였다. 30 그리고 그에게 침을 뱉으며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때렸다.

31 이렇게 희롱하고 나서 그 겉옷을 벗기고 예수의 옷을 도로 입혀 십자가에 못박으러 끌고 나갔다. 32 그들이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을 만나자 그를 붙들어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33 그리고 골고타 곧 해골산이라는 데에 이르렀을 때에 34 그들은 예수께 쓸개를 탄 포도주를 마시라고 주었으나 예수께서는 맛만 보시고 마시려 하지 않으셨다. 35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나서 주사위를 던져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갖고 36 거기 앉아 예수를 지키고 있었다. 37 그리고 예수의 머리 위에 죄목을 적어 붙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의 왕 예수' 라고 적혀 있었다.

38 그 때에 강도 두 사람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형을 받았는데 그 하나는 예수의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왼편에 달렸다. 39 지나가던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40 '성전을 헐고 사흘이면 다시 짓는다던 자야, 네 목숨이나 건져라. 네가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어서 십자가에서 내려 와 보아라' 하며 모욕하였다. 41 같은 모양으로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도 42 '남은 살리면서 자기는 못 살리는구나. 저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래. 십자가에서 한번 내려 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고 말고. 43 저 사람이 하느님을 믿고 또 제가 하느님의 아들입네 했으니 하느님이 원하시면 어디 살려 보시라지' 하며 조롱하였다. 44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도 예수를 모욕하였다.

45 낮 열 두 시부터 온 땅이 어둠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46 세 시쯤 되어 예수께서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뜻이다. 47 거기에 서 있던 몇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저 사람이 엘리야를 부르고 있다' 고 말하였다.

48 그리고 그 중의 한 사람은 곧 달려 가 해면을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 끝에 꽂아 예수께 목을 축이라고 주었다. 49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만두시오.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해 주나 봅시다' 하고 말하였다. 50 예수께서 다시 한번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마태28:1-6) 1 안식일이 지나고 그 이튿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2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하늘에서 주의 천사가 내려와 그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다. 3 그 천사의 모습은 번개처럼 빛났고 옷은 눈같이 희었다. 4 이 광경을 본 경비병들은 겁에 질려 떨다가 까무러쳤다. 5 그 때 천사가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무서워하지 말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를 찾고 있으나 6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다. 전에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이 누우셨던 곳을 와서 보아라.

 

(사도행1:6-11) 6 사도들은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예수께 이렇게 물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워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7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결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9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는데 마침내 구름에 싸여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셨다. 10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 가시는 동안 그들은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흰 옷을 입은 사람 둘이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나서 11 이렇게 말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 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모든 기술(記述)들이 역사 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믿으세요? 이 모든 것들이 신화나 설화가 아닌 역사적인 사실이기에 우리의 구원은 흔들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골고다 언덕 위에 실제로 십자가가 섰습니다. 지금 그 십자가를 다시 뽑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왜요? 이미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의 사건이 불변의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십자가를 근거로 구원을 확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이나 체험은 언제나 변합니다. 체험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습니다. 그런 신비적인 체험을 한 것을 가지고 난 구원받은 게 확실해이렇게 구원 확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체험이 없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붙잡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감정이나 기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기분이 holy 할 때는 구원받은 것 같다가 남편이나 아내와 다투었다거나 중독 된 죄를 끊지 못하고 또 저질러 버렸다거나 할 때는 내가 진짜 구원받은 것이 맞나?” 이렇게 우리의 기분은 조변석개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하느님께서 이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과 사건을 구원 확신의 근거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거짓 증언으로 닉슨 대통령이 물러나는 사건이 있었지요? 그 때 그 닉슨의 증언을 사실로 조작하는데 미국 최고의 천재 변호사들이 붙어서 그 사건을 조작했습니다. 그 때 그 보좌관들의 리더가 챨스 콜슨이었습니다. 하지만 단 18일 만에 그 사건은 거짓으로 들통이 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감옥에 가게 되었지요. 챨스 콜슨은 그 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챨스 콜슨이 그의 책 Loving God라는 책에서 왜 자기가 그렇게 그 사건을 진실로 조작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을 합니다.

그는 닉슨의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미국 내 어떤 공무원의 임명권과 해임 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전용 여객기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어느 곳에 가서도 자기 전용 전화를 즉시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은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니 대단한 것이죠. 그리고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국가 예산이 수억 불에 달했습니다. 웬만한 나라의 대통령보다 훨씬 큰 권력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찰스 콜슨과 그 천재 변호사들은 목숨 걸고 닉슨을 보호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거짓은 18일을 넘기기가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이야기하기를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복음이 거짓이라면 2,000년 전에 유대 땅에 있는 보잘것없는 어부들이 그 사건을 조작해 낸 것이라면 그 사건들이 2,000년 동안 이렇게 사람들을 변화시켜가며 진리로 내려올 수 있었겠는가?”

만일 그 사건들이 모두 거짓이었다면 지금의 나처럼 엄청난 이권이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 사건을 들먹이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시대에 그들이 그 거짓된 사실들을 진리로 우겨 댈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사실들은 어떻게 이렇게 2,000년 동안 진리가 되어 내려올 수 있었겠는가?” “부활은 사실이다

 

맞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들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몇 명의 어부들이 그 진리를 오늘 날까지 이렇게 지켜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이 모든 것들을 지식적으로 이미 다 알고 계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그렇지만 제가 하느님께서 이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을 구원 확신의 근거로 삼으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그런 지적 동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까지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귀신들도 압니다.

 

(루가4:41) 41 악마들도 여러 사람에게서 떠나 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외쳤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시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하셨다. 악마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고2:19) 19 당신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요한2:23-25) 23 예수께서는 과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머무르시는 동안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24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셨다. 그것은 사람들을 너무나 잘 아실뿐만 아니라 25 누구에 대해서도 사람의 말은 들어 보실 필요가 없으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마음 속까지 꿰뚫어 보시는 분이었다.

 

우리가 어떤 역사적 사실을 인지했다고 해서 그 것이 곧 구원으로 연결이 되지는 않습니다.

제가 조지 워싱턴의 전기를 읽고 조지 워싱턴의 생애와 업적과 죽음에 대해 많이 알지만 그 조지 워싱턴이 저에게 해 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는 그를 의지하지 않고 그 또한 저에게 무엇을 해 줄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 나의 전 존재를 의탁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이 역사 속에서 행하신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 그 사실에 나를 의탁하고 있다면 우리는 바른 확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약속들을 우리 구원 확신의 근거로 삼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성경을 통해 아주 많은 약속들을 하셨습니다.

 

(요한3:16-17) 16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17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요한5:24) 24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 섰다.

 

(사도2:21) 21 그 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16:31) 31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네 집안이 다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요한11:25-26) 25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26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성경에는 이렇게 수많은 하느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 약속을 믿으십니까?

 

(베드후1:4) 4 우리는 그 영광과 능력을 힘입어 귀중하고 가장 훌륭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그 덕분으로 정욕에서 나오는 이 세상의 부패에서 멀리 떠나 하느님의 본성을 나누어 받게 되었습니다

 

(사무하7:28-29) 28 야훼 나의 주님, 주님이야말로 참 하느님이시며, 하시는 말씀에 거짓이 없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이 종에게 이토록 좋은 말씀을 내려 주셨으니, 29 부디 종의 왕실에 복을 내려 주시어 하느님 앞에 영원히 서게 해주십시오. 야훼 나의 주님, 주님의 말씀대로 이 종의 왕실은 복을 길이 받아 누리겠습니다.'

 

하느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첫 번째로 하느님은 사랑과 온유와 오래 참으심과 용서와 자비하심과 공의의 하느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그러한 속성을 지니고 계신 하느님께서 우리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서 인간의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 일에 우리를 의탁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하느님은 어떤 약속들을 하셨으며 그 하느님은 반드시 그 약속들을 지켜내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고 계십니까? 그러면 우리는 구원받은 자가 맞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 안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어떤 성품을 가지고 계신지, 그리고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 분께서 어떻게 인간의 역사를 경륜해 가시는지, 그리고 그 분은 우리에게 어떤 약속을 하셨는지,가 아주 자세하게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확신을 자신 있게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성경을 더욱 궁금해 합니다. 오직 성경 안에만 자신의 구원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성경 앞에 더욱 더 진지해 집니다.

 

(디모후3:15-17) 15 그대도 기억하다시피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익혀왔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16 성경은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 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 대 유익한 책입니다. 17 이 책으로 하느님의 일꾼은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과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오직 성경만이 구원받은 성도들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완전하게 만들 수 있고 심지어 선한 일을 행할 수 있게 하는 힘도 그 성경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말씀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고 말씀에 의해 성화 되어져 가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받은 사람들은 말씀을 사모하며 궁금해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명30:11-14) 11 내가 오늘 너희에게 내리는 이 법은 너희로서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거나 미치지 못할 일은 아니다. 12 그것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하늘에 올라 가서 그 법을 내려다 주지 않으려나? 그러면 우리가 듣고 그대로 할 터인데' 하고 말하지도 말라. 13 바다 건너 저쪽에 있는 것도 아니다. '누가 이 바다를 건너 가서 그 법을 가져다 주지 않으려나? 그러면 우리가 듣고 그대로 할 터인데' 하고 말하지도 말라. 14 그것은 너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너희 입에 있고 너희 마음에 있어서 하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보세요,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미 그 진리이신 하느님께서 그 사람의 안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말씀을 사모(思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우리는 말씀을 통해 그 말씀만이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아는 사람들입니다.

 

(루가1:37) 37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데살전2:13) 13 우리가 늘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에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 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 이 하느님의 말씀은 믿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 속에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이 자신의 구원을 더욱 더 확고하고 확실하게 그리고 견고히 깨닫게 해 준다는 것을 아는데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등한시하겠습니까? 자신의 구원과 성화에 관심이 있고 자신의 불가능함도 아는 사람이 그 능력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오직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해서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다른 체험이나 여러분의 기분이나 감정, 종교 행위- 이런 것으로 확신을 가지면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천사의 음성보다도 훨씬 더 믿을 만하고 더 권위가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게 바로 성경입니다. 이 성경에 이렇게도 명확하게 우리의 구원에 대한 비밀이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 왜 엉뚱한 곳을 찾아다니며 당신의 구원을 확인 받으려 하십니까?

심지어 어떤 분들은 점쟁이한테 점 보러 갔다가 당신이 모시는 분과 내가 모시는 분이 달라서 점괘가 안 나온다는 그 말 한마디 듣고 와 난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 맞아그렇게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제가 아는 어머님께서 점쟁이한테 그런 기쁜 소식을 듣고 자기가 속해 있던 성가대에 가서 그 이야기를 간증했더니 그 다음 날 그 성가대 대원들 전부 그 점쟁이 집에서 친목계 했다는 거 아닙니까? 구원의 확신이 없으니까 점쟁이한테라도 가서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은 거예요.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말씀을 깨닫고 이해시켜 주시는 성령 하느님의 내적인 조명을 통해서만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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