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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 화요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기념일,,,독서,복음(역주,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11-08 조회수894 추천수1 반대(0) 신고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라테나노 대성전은 로마에 있는 최초의 바실리카 양식의 대성당이다. 오늘 축일은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라테나노 대성전을 지어 봉한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대성전은 모든 성당의 어머니요 으뜸.으로 불리면서 현재의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거의 천 년 동안 역대 교황이 거주하던, 교회의 행정 중심지였다. 각 지역 교회가 로마의 모교회와 일치되어 있음을 드러내고자 라테나로 대성전의 봉헌 축일을 지낸다.

 

 

1독서<성전 오늘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네, 그 물이 닿은 곳마다 모두 구원을 받았네(따름 노래 성전 오른쪽에서.”)>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47,1-2,8-9.12

그 무렵 천사가

1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을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0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에제키엘 예언자는,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고,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는 천사의 말을 듣는다.

 

 

 

 

복음<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요한복음 역주(2,13-22)

성전정화

13 유다인들의 해방절이 다가왔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그분은 성전 (마당)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는

15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모두 양과 소와 함께 성전(마당)에서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버리며 그 상들을 둘러엎으셨다.

16 그리고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여기서 이것들을 치워 버리시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시오하고 말씀하셨다.

17 그분의 제자들은 (성경에)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하고 기록된 것을 상기했다.

18 그런데 유다인들은 그분께 말을 걸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주겠소

19 예수께서는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무시오.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소.”

20 그러자 유다인들은 이 성전은 사십육 년이나 걸려서 지었는데, 당신이 그것을 사흘 안에 세우겠다는 말이오?”하고 말했다.

21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 몸이 곧 성전임을 가리켜 말씀하셨던 것이다.

22 예수께서는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야 제자들은 당신이 이렇게 말씀하시던 것을 상기하고 성경과,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

 

 

주해

성전정화: 이 이야기는 공관복음에도 보도된다. 그러나 공관복음은 예수의 공생활 말기에 요한복음은 초기에 성전 정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도된다,, 연대기적으로 어느 보도가 역사적 신빙성이 더 있는가에 대한 해답은 쉽지가 않다. 사실상 네 복음 모두 저마다 고유한 노선이 쉽지가 않다. 사실상 네 보음 모두 저마다 고유한 노선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전 정화가 역사적 사실인 것만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저자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로 보도하고자 하는가에 주안점을 두고 텍스트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 저자는 성전 정화를 가나 기적처럼(11) 예수의 자기계시로(21) 설명하면서 예수를 믿는 제자들과 믿지 않는 유다인들을 대조한다. 특히 유다인들이 예수께 표징을 요구함으로써 예수에 대한 그들의 몰이해와 불신이 폭로된다(6,30.36 참조) 이렇게 예수의 공생활 초기부터 적수들이 등장함으로써 예수의 운명을 예감케 한다.

 

13

요한복음은 예수가 공생활 동안 세 번 해방절을 보낸 것으로 보도한다. 이에 따르면 예수는 3년 가까이 공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유다인들의 해방절이란 표현은 유다인들의 율법처럼 유다인들과의 거리감을 시사한다. 여기서 유다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적수로 등장한다.

 

예수살렘 도시가 해발 760미터쯤이고 갈릴래아 호후가 해저 200미터쯤이므로, 예루살렘으로 향해 갈 때는 으레 이런 표현이 쓰인다,  예수는 해방절을 맞아하여 순례차 예루살렘으로 간 듯하다.

 

14

성전 마당 가운데도 외부에 속한 구역인 이른바 이방인 마당에서는 여러 장사꾼과 환전상이 특히 축제 일을 앞두고 대성황을 이루었다. 순례자들이 성전에 바칠제물과 성전세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특히 성전에는 고대 시리아 화례로만 지불해야 했는데, 시중에서는 로마제국 화폐만 사용했음로 성전에서는 환전상이 필요했다. 원문에는 성전”(마당)으로만 언급되어 있다, , 성전 마당과 주랑을 포함한 전구역을 뜻한다. 따라서 성전 어느 구역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15

예수는 장사꾼과 환전상들만을 상대로 성전 정화를 펼친 것으로 보도된다.

 

16

성전 정화를 하고자 한 예수의 의도가 표현된 말이다. 특히 내 아버지의 집이라는 표현이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성전 정화를 함을 시사한다, 다라서 성전 정화를 예수의 메시아적 행위로도 이해할 수 있다(루카 14,21 참조).

 

17

제자들은 예수의 성전정화사건을 시편 69.10의 내용에 비추어서 이해했다는 저자의 설명이다. , 제자들은 하느님의 집에 대한 예수의 열정이 위험한 결과, 곧 죽음을 초래할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18

유다인들은 제자들과 달리 예수가 성전에서 행한 일에 대해 일종의 심문 형식으로 말을 걸어온다, , 자기네들이 인정할 만한 표징을 요구한다. 표징은 예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종의 신적 증거를 뜻한다. 한마디로 믿지 않는 자들이 요구하는 표징이다. 또한 이들의 표징 요구는 유다 지도자들이 제기한 예수의 권위에 대한 물음과도 흡사하다. 따라서 여기서 유다인들이란 믿지 않는 자들을 특징적으로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19

옛는 유다인들이 요구한 표징과는 전혀 다른 표징을 제시한다. 그러나 예수의 이 대답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한 계시 말씀이다.(3.3;4.10.32 등 참조). 20절에서 유다인들의 오해가 언급되고 21절에서 저자의 설명이 따른다. 여기서 성전은 지성소가 딸린 성전 건물을 가리킨다. 14절에서 언급된 성전과는 다르다.

 

20

유다인들은 예수의 계시 말씀 가운데 언급된 이 성전을 당시 세워져 있던 성전 건물로 이해하고서 예수에게 이의를 제시한다. 헤로데 대왕이 기원전 20/19녕경부터 성전 신축공사를 시작했으니, “46뒤라면 27/28년경, 곧 예수의 공생활 초기에 성전정화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2

예수는 자기 몸이 곧 성전임을 가리켜 말했다고 저자는 설명함으로써 유다인들의 오해도 지적한다. 저자의 이 설명으로 인해 특히 예수의 계시 말씀(19)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키는 것으로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 예수는 자신의 몸을 허물도록”(죽음으로) 자유롭게 내주지만, “사흘 안에 다시 세운다”(부활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 자신에게 부여된 죽고 부활할 자유나 권능도 아울러 시사된다.

 

예수의 성전”, 곧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이므로 영과 진리 안에서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이 예수와 함께 예수 안에서 시작된다. 부활한 그리스도의 영과 진리 안에서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중심이이요, 하느님 현존의 장소이며, 생명수가 넘쳐흐르는 영적 성전이다(7,37-39;19.34)

 

22

제자들은 예수 부활 후 성령을 받고서야 비로서 예수의 계시 말씀(19)을 상기하고 성경과 예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는 저자의 설명이다. 여기서 성경은 예수가 죽고 부활한다는 말슴이나 17절에 인용된 구절을 구체적으로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 성전 정화와 성전에 관한 말씀이 예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계시로 설명한다. 예수에 대한 제자들의 믿음을 강조한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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