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11-12 조회수1,553 추천수8 반대(0)

장례미사를 준비하면서 고인의 관을 닫으려 했습니다. 고인을 위한 미사에 집중하기기 위해서 그렇게 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족 중에 한명이 반대했습니다. 마지막 미사이고, 곧 땅에 묻히니 관을 닫지 말아달라고 하였습니다. 가족들의 바람을 듣고, 관을 열고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고인이 되신 분도 미사에 참례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미사에 집중하려는 원칙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유족이 원하면 미사에 집중이 되지 않더라도 그 뜻을 존중해 주는 것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미사를 마치면서 다른 종교의 장례 예절을 잠시 해도 좋은지 물었습니다.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 또한 유족이 원한다면 반대할 것도 없다 싶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고인과 유족들의 청을 무시하시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 세상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모두 털어버리고, 천상에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순교자들의 영성을 강의하는 김길수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글의 제목은 성삼문의 죽음과 김대건의 죽음입니다. 성삼문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 중에 한 명입니다. 성삼문이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형장에서 그가 지었다는 절명시를 통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절명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 回首日欲斜(회수일욕사) 黃天無一店(황천무일점)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 둥둥둥 북소리 울려 내 목숨을 재촉한다. 머리 돌려 바라보니 해가 지려 하누나. 저승길에는 주막집 하나 없다는데 오늘밤은 내 어느 집에서 묵어갈까.”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성삼문에게 인생의 끝은 허무였습니다. 그의 죽음이 충절을 드러내는 죽음이었지만,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죽음에 앞서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대들은 들으라. 이 환란과 고난도 주의 허락 없이는 있지 않으니 환란의 의미를 생각해서라도 삼가는 마음으로 주의 계명을 지켜라.” 주교님께는 이렇게 부탁합니다. “주교님, 우리 어머니를 부탁드립니다. 일찍이 어린 자식을 이국만리에 보내고, 믿음 때문에 지아비를 잃고, 의지할 곳 없어 거리를 헤매는 거지가 되었다고 하나이다. 어머니를 주교님께 부탁드리고 저는 편안히 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우들에게 나는 간다. 이제 환란도 고통도 박해도 없는 하느님의 기쁜 나라에서 다시 만나자.” 성삼문과 김대건은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허무고 하나는 새 출발입니다. 하나는 자기 소신을 위해서 죽지만 그 소신이 준 것은 결국 인간의 한계인 허무입니다. 김대건의 죽음은 인간의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 새 생명 속으로 들어가는 출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이 세상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하는 것입니다. 내 남편, 내 자녀, 내 집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그것들을 상실하면 화가 나고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는 잠시 소유한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잠시 나에게 맡겨 주신 것들에 대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나와 함께 하는 가족, 이웃, 물건들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가 함께 나눈다면, 우리가 말씀을 가슴 속에 담고 산다면 세상의 마지막 날 이 온다고 해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