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11-14 조회수1,684 추천수10 반대(0)

원숭이들에게 한 가지 실험을 하였습니다. 5마리의 원숭이가 우리에 있습니다. 가운데에 사다리가 있고, 그 위에는 원숭이가 좋아하는 바나나가 있었습니다. 한 마리의 원숭이가 사다리를 올라가서 바나나를 먹으려 했는데 위에서 물이 쏟아졌습니다. 다섯 마리의 원숭이는 모두 시도했지만 물만 뒤집어썼습니다. 그래서 이제 원숭이들은 사다리에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원숭이 한 마리가 빠지고 다른 원숭이가 들어왔습니다. 원숭이가 사다리를 오르려 하자 4마리의 원숭이가 말렸습니다. 사다리를 오르려는 원숭이는 4마리의 완력에 밀려서 사다리를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 마리씩 빠져서 사다리를 올라가면 물을 맞는다는 경험을 한 원숭이는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 원숭이가 들어오면 모두들 새로 들어온 원숭이를 때렸습니다. 그것이 원숭이들의 규칙이 되어버렸습니다. 왜 원숭이를 때리는지 이유도 몰랐습니다. 사다리 끝에 맛있는 바나나가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사다리를 올라가면 물을 맞는지도 몰랐습니다. 다만 원숭이들은 새로 들어온 원숭이를 때리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원숭이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모습에서도 가끔 그런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존심 때문에, 편견 때문에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합니다. 운전하면 가벼운 접촉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험이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미안하다고 하고, 피해자도 받아들이면 각자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별일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면, 피해를 입은 사람은 태도를 문제 삼습니다. 그러면서 나이를 이야기하고, 젊은 사람이 왜 그러냐고 합니다. 나이를 먹는 것이 벼슬이냐고 합니다. 그러다가 원인은 생각하지 않고, 서로의 태도와 나이를 들먹이며 다투게 됩니다. 부부 사이에도 서로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해하고, 양보하면 쉽게 해결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부부의 다툼이 커지는 경우는 예전의 일들을 꺼내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약속 시간에 일이 생겨서 늦은 것입니다. 예전에도 늦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시댁에 갈 때는 안 늦더니, 친정에 가려니 늦는다고 합니다. 사과하고, 이해하면 기분 좋게 갈 수 있는 여행이 감정이 상해서 가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견지망월(見指忘月)’이란 말이 있습니다. 손가락은 달을 향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달을 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것은 원숭이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집트에서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오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주신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오늘 독서를 보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이방인의 풍습을 따르게 됩니다. 자신들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니,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려고 했을 때, 달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 갔다.”

 

예전에 승강기의 게시판에서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눈이 오는 추운 겨울에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더욱 푸르다.’ 모든 것이 푸르른 여름에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시련의 때, 고난의 때에는 유독 그 푸름이 돋보이는 나무가 있는 것처럼 주변을 보면 그렇게 자신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서 흘러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줄 아는 용기와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흘러가는 삶은 살아지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소경은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자비를 청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살아도 결국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소경은 주님께 간절하게 외칩니다. ‘주님 보게 해 주십시오.’ 주님은 소경의 간절함을 보시고, 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보아야 하는 것들은 빠르고 편하고, 쉬운 길만은 아닐 것입니다.’ 비록 느리고,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굳이 당신의 힘과 능력을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당신께서 세우신 질서와 법에 따라야 한다고 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선택과 결정을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유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나라의 질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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