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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루카19,1-1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11-16 조회수1,09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1월 16일 화요일

 

[연중 제33주간 화요일자캐오야얼른 내려오너라 (루카19,1-10)

 

2015년 11월17일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 블로그

 

1독서<거룩한 법을 위하여 모범을 남기려고 합니다.>(2마카베6,18-31)

18 매우 뛰어난 율법 학자들 가운데 엘아자르라는 사람이 있었다그는 이미 나이도 많고 풍채도 훌륭하였다그러한 그에게 사람들이 강제로 입을 벌리고 돼지고기를 먹이려 하였다.

19 그러나 그는 더럽혀진 삶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자진해서 형틀로 나아가며

20 돼지고기를 뱉어 버렸다이것이 바로 목숨이 아까워도 법에 어긋나는 음식은 맛보는 일조차 거부하는 용기를 지닌 모든 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21 법에 어긋나는 이교 제사의 책임자들이 전부터 엘아자르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따로 데리고 가그가 먹어도 괜찮은 고기를 직접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임금의 명령대로 이교 제사 음식을 먹는 체하라고 권하였다.

22 그렇게 하여 엘아자르가 죽음을 면하고그들과 맺어 온 오랜 우정을 생각하여 관대한 처분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23 그러나 그는 자기의 생애많은 나이에서 오는 위엄영예롭게 얻은 백발어릴 때부터 보여 온 훌륭한 처신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법에 합당하게 고결한 결정을 내린 다음자기를 바로 저승으로 보내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24 “우리 나이에는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많은 젊은이가 아흔 살이나 된 엘아자르가 이민족들의 종교로 넘어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25 또한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려고 내가 취한 가장된 행동을 보고 그들은 나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지고이 늙은이에게는 오욕과 치욕만 남을 것입니다.

26 그리고 내가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27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여 늙은 나이에 맞갖은 내 자신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28 또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바로 형틀로 갔다.

29 조금 전까지도 그에게 호의를 베풀던 자들은 그가 한 말을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마음을 바꾸고 악의를 품었다.

30 그는 매를 맞아 죽어 가면서도 신음 중에 큰 소리로 말하였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31 이렇게 그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

 

화답송 시편 3,2-3.4-5.6-8ㄱㄴ(◎ 6)

◎ 주님이 나를 지켜 주셨네.

○ 주님저를 괴롭히는 자들 어찌 이리 많사옵니까저를 거슬러 일어나는 자들 많기도 하옵니다. “하느님이 저런 자를 구원하실까 보냐?” 저를 빈정대는 자들 많기도 하옵니다

○ 주님당신은 저의 방패저의 영광제 머리를 들어 높이는 분이시옵니다제가 큰 소리로 주님께 부르짖으면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응답하시나이다

○ 주님이 나를 지켜 주시기에누워 잠들어도 나는 깨어나니나를 둘러싼 수많은 무리도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일어나소서주님저를 구하소서저의 하느님

 

복음<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19,1-10)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얼른 내려오너라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주님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제1독서 (2마카6,18-31)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여 늙은 나이에 맞갖은 내 자신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또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 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27-28)

~그는 매를 맞아 죽어 가면서도 신음 중에 큰 소리로 말하였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며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이렇게 그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30-31)

 

마카베오 하권 6장 1절 -7장 42절 이교 예식을 강요하는 이야기와 순교자들의 이야기로서 마카베오 하권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이다.

마카베오 하권 6장 1-6절에 나오는 자료는 다니엘서에서 "지극히 혐오스러운 일" 이라고 하는 것을 묘사한다.

 

마카베오 하권 6장 2절에 따르면, 그처럼 혐오스러운 일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부정하게 만들고  그것을 올림포스의 제우스 신전이라 부르게 하였으며,  그리짐에 있는 성전은 그곳에 사는 이들이 하는 대로  나그네의 수호신 제우스의 신전이라고 부르게" 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

 

성전에서 창녀들과 놀아났다(2마카6,4)고 하는데, 이와 같은 이교 예식은 유다인들에게 토라를 버리고 유다인들이 종교 축일들을 준수하지 못하게 하며 유다인이라고 말하지도 못하게 하려는 더 큰 계획의 일부였다.

 

게다가 마카베오 하권 6장 7-9절에 따르면, 유다인들은 달마다 임금의 생일을 경축하고 포도주와 포도 수확의 수호신인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을 찬양하는 행렬을 하도록 강요받았다.

그 모든 계획은 유다인들의 "관습을 그리스식으로 바꾸기위한 것으로 묘사된다.

 

마카베오 하권 6장 10-11절에는 유다 백성에게 있었던 두 가지 비참한 예가 소개되어 있다.

곧 어떤 여자 둘이 아들에게 할례를 베풀었다고 해서 고문을 받고 살해되었으며, 다른 유다인들은 근처 동굴에서 모여서 몰래 안식일을 지내다가 고발되어 한꺼번에 화형을 당하였다.

 

유다 백성에게 그와 같은 사건들이 일어나게 한 하느님의 목적을 지적하는 저자의 성찰(2마카6,12-17)로 인해 무시무시한 공포에 관한 묘사가 중단된다.

 

그의 기본 관점은 이와 같은 순교와 다른 고통은 하느님께서 짧은 기간 동안 당신 백성을 교육하시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그들의 죄가 가득찰 때까지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기다리시기 때문에, 그들의 최종 징벌은 이스라엘이 받는 징벌보다 훨씬 더 나쁠 것이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충실하신 분이라는 저자의 믿음은 완벽하다.

"하느님은 고난으로 당신의 백성을 교육하시는 것이지  저버리시는 것이 아니다" (2마카6,16).

 

순교를 현재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교육하시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는 저자의 신학은 저자에게 고통과 죽음의 실재를 알게 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보존하게 해준다.


오늘 독서의 나이가 많은 율법학자 엘르아잘(2마카6,18-31)은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거부한다(레위11,7-8참조).

 

사실 그는 돼지고기를 먹는 체하는 것조차 거부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엘르아잘을 지적하며 "이민족들의 종교로 넘어갔다."(2마카6,24) 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엘르아잘은 담론(2마카6,24-28)에서 하느님 앞에서 받을 심판을 생각하며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엘르아잘이 "젊은이들 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고 설명한다(2마카6,31).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복음(루카19,1~10)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2~4)

 

'자캐오'에 해당하는 희랍어 '작카이오스'(Zakcaaios; Zacchaeus)는 '순결한'(pure),'무죄한'(innocent)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작카이'(zakai)에서 유래되어 '깨끗한 자', '의로운 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자캐오는 그의 직업이 당시 사람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허가받은 도둑'인 세관장이었기에 자신의 이름의 뜻에 걸맞게 살지 못하는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세관장'에 해당하는 '아르키텔로네스'(architelones; a chief tax collector)는 '우두머리'라는 뜻의 '아르코'(archo)와 '세금 징수원'이라는 뜻의 명사 '텔로네스'(telones)가 결합된 합성어이다.

 

당시 예리코는 세금을 거두는 관리들이 로마로부터 파견되어 늘 머물러 있었고, 세관원들은 요르단 강 동편 지역에서 유다 땅으로 들어오는 물품에 대한 통관세를 받는 일을 했다.

 

그러나 로마 사람들이 일일이 세금을 징수한 게 아니라, 그곳 유대인들과의 임대차계약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권한을 유대인들에게 주었고, 그들 세리(세관원)중에 우두머리가 바로 세관장이었던 것이다.

 

또한 루카 복음 19장 2절에는 세관장 자캐오가 '부자'였다고 말한다.

'부자'에 해당하는 '플루시오스'(plusios; was rich, wealthy)라는 표현은 그가 단지 잘먹고 잘사는 정도가 아니고, 당시 유대인 대부분이 식민지 생활로 인해 가난한 생활을 하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의 재산이 아주 많았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이것은 부정직한 방법으로 그가 부를 축적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루카 복음 19장 3절에 '그가 ~ 애썼지만'에 해당하는 '에제테이'(ezetei; he sought)는 '집요하게 찾아'라는 뜻이 있는 '제테오'(zeteo)의 미완료 능동태이다.

희랍에서 미완료는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므로, 이것은 자캐오가 능동적으로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단어 뒤에 '보려고'로 번역된 부정사 '이데인'(idein; to see)이 따르고 있는데, 이것은 '보기 위해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자캐오는 키가 작은 신체적 장애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라는 환경적 장애로 말미암아 난관에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자 계속적으로 노력했음을 말해준다.

 

자캐오는 자신들을 경멸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친구가 되어 주시며, 병을 고쳐주실 뿐만 아니라 죄도 용서해주시는 권세도 갖고 계시다는 소문도 들었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이러한 외롭고 수치스런 상황에서 구원받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고 본다.

 

자캐오는 가까이에서 지나가고 있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두 가지 장애 요인, 즉 수많은 군중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 접근하기 어려운 것과, 자신의 키가 작음에서 오는 난관을 극복하고자 두 가지 행동을 한다.

 

첫째로 군중들에 의해 둘러싸인 예수님 보다 '앞질러 달려가는 것'이다.

여기서 '달려가'로 번역된 '프로드라몬'(prodramon; he ran)은 능동태 분사인데, 이것은 예수님을 간절히 보기를 원하는 자신의 열망과 더불어, 결단을 내린 후 즉시 행동에 옮기는 강한 의지를 잘 보여준다.

 

둘째로 그는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돌무화나무 위로 올라간다.'

'올라갔다'에 해당하는 '아네베'(anebe; and climbed up)는 자캐오의 적극적인 행동을 강조할 뿐 아니라 믿는 이들이 본받아야 할 믿음의 모델이 된다.

 

한편, 자캐오가 올라간 '돌무화과나무'에 해당하는 '쉬코모레안'(sykomorean; a sycamore-fig tree)는 루카 복음 17장 6절에 나오는 '돌무화과나무'('뽕나무'; '모폰'; mopon)와는 다른 나무이다.

 

이 나무는 일명 '이집트 무화과 나무', '시카모어 무화과나무', '백뽕나무'로 불리는데, 잎사귀는 뽕나무와 비슷하고 열매는 무화과와 비슷하며, 가지가 사람이 올라가기 쉬운 형태로 뻗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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