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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니엘서 3장 금신상과 풀무불이 주는 영적 교훈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11-21 조회수73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11.21.(공동번역성서)


다니엘서 3장

신상과 풀무불이 주는 영적 교훈

 

하느님 숭배에서 우상 숭배까지

 

니엘서 2장에서 하느님께서는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보신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역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아시는 분이다. 다니엘 2장에서 하느님께서는 인류 역사의 흐름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보여 주셨다. 

금, 은, 동, 철, 그리고 철과 진흙이 섞인 발을 보여주셨고 우리는 현재 발가락 시대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성경 예언에 따라서 지구 역사의 마지막 예언 성취의 시기에 살고 있다. 이러한 다니엘 2장의 배경에서 다니엘 3장이 시작된다.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해가 B.C 605년이다. 그런데 다니엘이 붙잡혀 간 후 바벨론 대학에서 3년 동안 공부했으므로 다니엘이 왕의 꿈을 해석해 준 해는 B.C 602년이다. 

다니엘 2장의 끝부분에서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이 잊어버린 꿈을 해석하는 다니엘의 설명을 듣고서 너무나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능력을 시인했었다. 다니엘 2장 47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자.

 

(다니 2:47) 그리고 그는 다니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의 신이야말로 정말 비밀을 밝히시는 분이요 신들 가운데서 으뜸가는 신이며, 만왕을 거느리시는 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네가 어찌 이 비밀을 밝힐 수 있었겠느냐?' .” 

 

느부갓네살 왕은 이렇게 하느님을 믿는 믿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고고학에 의하면 다니엘 3장 사건이 일어난 해는 다니엘이 왕의 꿈을 해석 한 해로부터 약 10년 후이다. 그런데 다니엘 3장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이 자기가 시인했던 다니엘의 하느님이 주셨던 그 꿈의 해석을 거절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는 의심하게 되고 하느님의 능력보다 자기를 더 높이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다니 3:1-3)  1 느부갓네살왕은 금으로 신상 하나를 만들어 바빌론 지방 두라 벌에 세웠다. 그 높이는 육십 척이요, 나비는 육 척이나 되었다.  2 느부갓네살왕은 지방장관들과 대신들, 총독들, 고문관들, 재무관들, 판사들, 법률가들, 지방 모든 관리들을 자기가 세운 신상의 제막식에 참석하도록 불러 들였다.  3 그래서 지방장관들과 대신들, 총독들, 고문관들, 재무관들, 판사들, 법률가들, 지방 모든 관리들이 느부갓네살왕이 세운 신상 앞에 나와 제막식에 참석하였다. .” 

 

혹시, 하느님께서 크신 일을 이루시거나 은혜를 베푸시거나 생명을 살려 주신 사실을 시간이 지나면서 잊어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잘못 행한 적이 있는가? 느부갓네살 왕은 그런 잘못을 여기서 행하고 있다. 

다니엘 3장에도 2장에서처럼 또 하나의 신상이 세워진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 속에서 보았던 다니엘 2장의 신상은 종류가 각기 다른 금속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금, 은, 동, 철 그리고 철과 진흙이 섞여 있는 모습이었는데 느부갓네살 왕이 직접 세우는 3장의 신상은 한 종류의 금속 즉 금으로만 만들어졌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역사가 하나의 제국에 의하여 영원토록 계속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새로운 제국이 세워지고 그 대를 이어가며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하여 느부갓네살 왕에게 네 종류의 금속으로 된 신상에 관한 꿈을 허락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왕국인 바벨론 제국이 멸망하고 장차 다른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부인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나라가 영원히 유지될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금으로 만든 신상을 세웠던 것이다.

 ‘내가 세운 이 나라는 영원히 간다. 다른 나라는 우리 나라를 칠 수가 없다!’라고 말하는 과시로서 금신상을 만들어서 두라 평지에 세워 놓은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이 세운 신상에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경배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모습이 다니엘 3장의 내용이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처음에는 한동안 주님께서 자신들을 인도하고 회개시킨 능력을 기억하는 삶을 살다가 나중에는 그것을 잊어버리고 자기를 위해 사는 생활을 살아가고 있는가

 

교와 정치의 연합과 예언 연구의 중요성

 

(다니 3:1) 1 느부갓네살왕은 금으로 신상 하나를 만들어 바빌론 지방 두라 벌에 세웠다. 그 높이는 육십 척(규빗)이요, 나비는 육 척이나 되었다.”  

 

신상의 높이는 60척이고 넓이가 6척인데 그 당시 규빗(cubic feet .척)은 보좌에 앉아있는 왕의 팔꿈치부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었다. 그래서 왕의 팔 길이에 따라 각 시대마다 사이즈가 달랐다. 그러므로 약 18~24인치 정도 된다고 보면 되겠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피트에 의하면 옛날의 1규빗은 약 1.5피트이다. 그러므로 60규빗은 현재 약 90피트의 높이가 된다. 약 8층 건물의 높이가 된다. 얼마나 큰 신상인가? 넓이는 약 9피트이므로 90x9의 신상이 된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몸의 세로와 가로의 비율은 2.5:1 내지는 3:1쯤 되는 반면에 여기서의 금 신상의 높이와 넓이의 비율은 약 10:1이다. 그러므로 이 신상의 높이는 아마도 신상 밑받침대의 높이까지 포함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의 높이가 305피트라고 하나 신상 자체의 높이는 130피트에 불과하고 그 밑받침대의 높이가 약 170피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높이를 말할 때에는 여신상과 밑받침대 둘 모두의 높이를 합쳐서 305피트라고 부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두라 평지에 세운 이 90피트의 금신상은 받침대의 높이까지 포함해서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 지금의 이라크인 그 당시 바벨론은 주로 평지의 나라로서 산이 없었다. 

특히 두라 평지가 그러했는데, 느부갓네살 왕이 그곳에 세운 90피트의 금 신상은 멀리 수마일 밖에서도 볼 수 있는 웅장한 건축물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느부갓네살 왕은 큰 신상을 높이 세우고 자기의 능력과 영광을 과시하기 위하여 바벨론 제국의 모든 지도자들과 장관들, 그리고 각 나라의 왕과 왕족들 모두 모아 놓고 신상에 절을 하도록 명을 내리는데 이것이 다니엘 3장 이야기이다. 다니엘 2장과 3장의 신상은 얼마나 다른가!

 

 (다니3:4-7)  4 그 때 전령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들은 들으시오.  5 나팔, 피리, 거문고, 사현금, 칠현금, 퉁수 등 갖가지 악기 소리가 나거든 곧 엎드려 느부갓네살왕께서 세우신 금신상 앞에 절을 하시오.  6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않으면 당장 활활 타는 화덕에 집어 넣을 것이오.'  7 그리하여 나팔, 피리, 거문고, 사현금, 칠현금, 퉁수 등 갖가지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자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들은 엎드리어, 느부갓네살왕이 세운 금신상 앞에 절을 했다 .”

 

참 놀라운 이야기이다. 바벨론 왕인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정복한 모든 나라의 만조백관들을 향하여 자신의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금 신상 앞에 절하라고 명하는 것이다. 바벨론의 영광스런 권위 앞에 모두 와서 전부 굴복하고 경배하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당시의 왕은 신적 존재였다. 고대 국가에 있어서 왕은 국가의 최고 권력자인 동시에 종교를 다스리는 최고 존재였기 때문에 자신을 상징하는 금신상에게 경배하는 명령이 가능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국가와 종교의 세력이 합쳐져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다니엘 3장에 나타나 있는 핍박의 특징 5가지는 다음과 같다.

1. 힘 있는 세계적인 지도자가 경배할 것을 명령함

2. 그 명령의 내용은 순종임

3. 하느님의 계명을 범하게 만들기 위하여 인간의 법령으로써 신상에 절하도록 강요함

4. 전세계적인 강제 명령임

5. 교회와 국가가 이 명령을 시행하는 일에 연합함

이러한 일이 말세 곧 우리 시대에 곧 임할 것이다. 그래서 다니엘서를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바벨론 당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일 뿐 아니라 말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영적인 교훈을 위하여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다니엘 12장 4절과 9절을 보자.

 

 “4 너 다니엘아, 이 말씀을 비밀에 붙여 마지막 그 때가 오기까지 이 책을 봉해 두어라. 많은 사람들이 읽고 깨쳐 잘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갈팡질팡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9 그가 대답했다. '다니엘아, 물러가라. 이 말씀은 마지막 때가 오기까지 봉한 채 비밀에 붙여질 것이다..” (다니 12:4,9)

 

이 말씀은, 다니엘서에 기록된 말씀들이 특히 말세에 적용되는 말씀이라는 뜻이다. 봉하고 닫아두고서 마지막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 이유가, 이 예언은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적용되는 교훈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서 3장 이야기는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말씀인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께서 오셔서 세상 역사를 마치실 그 날짜를 모른다. 그러나 예언의 성취를 보면서 그날이 매우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는 다니엘서의 예언을 이해하는 지식이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이 예언을 이해하면 우리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게 되며 비록 그 날과 시는 알 수 없을지라도 예수께서 어느 때쯤 오실 것인지 그 시기를 짐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느부갓네살 왕이 한 일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지막 시대에 다시 반복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서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또한 현시대에 그런 일이 다시 반복할 것인지의 여부를 요한묵시록 13장 15~17절을 읽으면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15 그리고 둘째 짐승이 권한을 받아서 첫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그 우상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도 하고 또 그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죽이게도 하였습니다. 16 또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오른손이나 이마에 낙인을 받게 하였습니다.  17 그리고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표시하는 숫자의 낙인이 찍힌 사람 외에는 아무도 물건을 사거나 팔거나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묵시13:15~17)

 

요한묵시록 13장에는 마지막 시대에도 짐승의 우상을 세운 다음에 그 우상에게 경배하도록 강요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니엘서 3장에 나오는 장면이 정확하게 마지막 시대에 영적으로 다시 재현되는 것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것이 바로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는 짐승의 표의 강제 명령인데, 이 명령에 의하여 하느님의 참 백성들을 향한 환난의 때가 시작된다.

 

하느님의 계명을 범하게 하는 인간적 권위의 명령이 다시 한 번 말세에 있을 것이다. 잘못된 경배를 강요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종교적인 명령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두라 평지에 선 금 신상에 절하지 않고 우뚝 선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이 세상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하느님의 계명에 순종하기 위해서 우뚝 설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자(교회)의 남은 무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묵시 12:17, 14:12).

 

구약의 예언서인 다니엘서와 신약의 예언서인 요한묵시록은 서로 짝을 지어서 연구하고 이해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구약의 다니엘서를 이해해야 신약의 요한묵시록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계명과 사람의 계명

 

런데 왜 3절에 다니엘이 등장하지 않고 세 친구만이 있었을까? 그 이유가 성경에는 없지만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금 신상에 경배하라는 명령을 내리기 전에 어쩌면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 때문에 깊이 고민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자기의 믿음과 신앙 때문에 절대로 금신상에 절하지 않을 것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의 생명을 보호해 주고자 일부러 다니엘을 먼 곳에 출장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다니엘 3장의 장면에서 다니엘의 모습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니3:8-12)  8 이 때 어떤 바빌론 사람들이 나서서 유다인들을 고발하였다.  9 그들은 느부갓네살왕에게 이렇게 일러 바쳤다. '임금님! 만수무강을 빕니다.  10 임금님께서 영을 내리시어 나팔, 피리, 거문고, 사현금, 칠현금, 퉁수 등 갖가지 악기 소리가 나면 누구나 엎드리어 금신상 앞에 절을 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11 엎드리어 절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활활 타는 화덕에 집어 넣는다고 칙령을 내리시지 않으셨습니까?  12 그런데 임금님의 칙령을 무시하고 임금님께서 위하시는 신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임금님께서 바빌론 지방 관리로 임명하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는 유다인들입니다. 그들은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큰 투쟁이 시작된다. 왜 히브리 세 청년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금신상에 절하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로마서 13장에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도 이 세상의 정부의 법을 존중하라고 했는데 왜 그들은 세상 법을 존중하지 않았을까요?

 

" 1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권위는 하나도 없고 세상의 모든 권위는 다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권위를 거역하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것을 거스르는 자가 되고 거스르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 (로마13:1,2)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도 국가의 법을 존중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의 법을 잘 준수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에는 제한 속도가 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 법규를 잘 지켜야 한다. 그러나 국가의 법과 하느님의 법이 서로 상충할 때에는 하느님의 법을 더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오히려 하느님께 복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사도5:29)

 

그 당시의 유대 교회와 국가의 법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금지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법을 지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로마제국이 그 당시에 복음 전하는 일을 반대할 때에 교회는 복음을 전했고 많은 사람이 순교 당했다. 

그러한 선택의 문제가 핍박의 시대에 있는 것이고 그러한 핍박이 우리에게도 곧 오게 될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 앞에 충성하는 일을 지금 배우지 못하면 앞으로 핍박이 올 때에 타협하고 말 것이다.

 두라 평지에 신상을 세우고 거기에 절하라고 명한 바벨론 왕의 명령은, 출애굽기 20장에 있는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게 하는 법이다. 십계명 가운데서 어느 계명을 범하는 것인가? 첫째와 둘째 계명이다.

 

"3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4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5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 대에까지 갚는다.  6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 (출애 20:3~6)

 

이것은 우상 숭배에 관한 주님의 계명이다. 그때에 바벨론 국가의 법을 순종하는 것은 분명히 명시된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었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 명령을 거절한 것이다. 

그때에 하느님께 충성하는 것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불충성하는 것을 뜻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충성하기 위해서 인간의 명령을 어겨야 할 때가 종종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께 충성하였기 때문에 반역자가 되었다. 그들이 주님의 계명에 충성하였기 때문에 역적이 되었다. 

그럴 때가 앞으로 곧 올 것이라고 성경 예언은 말하고 있다. 왕은 그들이 절하지 않은 사실을 몰랐다. 다른 자들이 고발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우리를 고발하고 고소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이웃들과 심지어는 가족들과 우리를 아는 사람들이 우리를 고발할 때가 곧 올 것이다. 

이것이 요한묵시록 13장 예언이다. 여러분의 믿음은 준비되어 있는가? 환난이 어떻게 오는가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르고 살고 있다. 조심하라! 깜짝 놀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협하고 말 것이다.

 

광로의 시련 속에서 단련되는 믿음

 

(다니 3:13,14)  “13 느부갓네살은 몹시 화가 나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잡아 들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들이 왕 앞에 끌려 오자,  14 느부갓네살이 물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너희는 내가 세운 금신상 앞에 절을 하지 않고 내가 위하는 신을 섬기지 않았다니, 그게 사실이냐? .” 

 

느부갓네살 왕은, 일부러 절하지 않았느냐고 다시 회유하며 묻고 있다. 이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충실한 답변을 들을 수 있다.

 

(다니 3:15,16 ) 15 이제라도 나팔, 피리, 거문고, 사현금, 칠현금, 퉁수 등 갖가지 악기 소리가 나는 대로 곧 엎드리어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절할 마음이 없느냐? 절하지 않으면 활활 타는 화덕 속에 던질 터인데, 그래도 좋으냐? 내 손에서 너희를 구해 줄 신이 과연 있겠느냐?'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왕에게 대답했다. '저희는 임금님께서 물으시는 말씀에 대답할 마음이 없습니다. ” 

 

다시 음악을 연주해도 절할 수 없다고 세 친구들은 말했다. 잠시 생각해 보겠다고 시간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기 전부터 이미 하느님의 명령에 충성할 것을 결심한 생애를 그들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난이 오기 전에 이미 마음을 결정한 자들이었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 모두가 그들 옆에서 무릎 꿇고 경배할 때 그들은 홀로 서 있을 수 있었다. 어떤 때는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풀무불이 불 타고 있었다. 

그곳은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데 석유의 원유가 많이 있던 곳으로서 얼마나 뜨거웠겠는가! 게다가 보통 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가열한 용광로가 불 타고 있는 것이다. 그 뜨거운 불을 보면서도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다니 3:17,18) “17 저희가 섬기는 하느님께서 저희를 구해 주실 힘이 있으시면 임금님께서 소신들을 활활 타는 화덕에 집어 넣으셔도 저희를 거기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18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저희는 임금님의 신을 섬기거나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신상 앞에 절할 수 없습니다.' .”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생애를 편안한 복을 많이 받는 아름다운 꽃밭이나 잔잔한 바다 위의 돛단배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대하고 있던 풀무불은 따뜻하고 안락한 찜질방과 같은 곳이 아니었다. 그들의 살을 다 태울 뜨거운 불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결심한 생애를 살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볼 여지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스도인 생애는 고난이 있는 생애이다. 진리를 믿고 하느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생애는 고난이 있다

누가 그리스도인의 생애가 아름답다고만 했는가? 이 세상은 마귀가 주관하는 세상이다. 하느님을 따라가는 생애는 많은 경우에 풍랑이 이는 바다와 같다.

 

믿지 않는 자들은 병이 나도 하느님 믿는 자들은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혹시 병이 들지라도 곧 낫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믿지 않는 자들은 경제적인 문제가 있지만 믿는 자들은 하느님께서 축복을 해주시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믿지 않는 자들은 가정에 문제가 있지만 믿는 자들은 그러한 문제가 없을 줄로 생각을 한다. 

그러나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이나 같은 시련과 문제들에 봉착하고 산다. 차이는 하느님을 믿는 자들은 그러한 시련들을 이길 힘을 얻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시련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것이 아니라, 시련 속에서 이길 힘을 주시고 함께 동행하시는 것이다. 시련 속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한 믿음 속에서 세 친구는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은, 결과가 어떠하든지를 불문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삶이다. 믿음은 신뢰의 관계이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당신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줄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다.

 믿음은 욥의 생애와 같은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 받고 완전히 저주 받은 것 같은 상황에 처하여서도 욥기 13장 15절과 같이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말씀이 영어 성경에는 보다 더 확실하게 표현되어 있다. “Though he slay me, yet I will trust Him”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내가 여전히 그를 신뢰하겠나이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또한 다니엘의 생애 속에 나타난 신앙과 같은 것이다. 사자굴 속에 던져짐을 당하였어도 하느님을 신뢰하는 다니엘,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믿음은 바오로의 생애 속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매를 맞고 돌로 침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옥에 여러 번 갇히었어도 디모데후서 4장 7,8절과 같은 신앙 고백을 하는 것이 믿음이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 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2디모4,7-8) 

바울과 같은 믿음을 가질 때 우리도 바울이 받았던 것과 같은 결과와 보상을 받게 된다.

믿음은 사도 요한의 생애 속에서도 분명히 나타나 있다. 핍박을 많이 당하고 파트모스섬에 유배되어 가서도 요한묵시록 22장 20절 말씀처럼“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간증하는 것이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를 채우고 있다. 예수님은 가시관 쓰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시면서도“아버지,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의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이것이 성경에서 가르치고 말하는 믿음이다. 

하느님을 향한 흔들림 없는 신뢰가 믿음이다. 이런 믿음이 있는 자만이 앞으로 다가올 환난과 핍박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잘못 오해하고 사는지 모른다.

 

 (다니 3:19,20) 19 느부갓네살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말을 듣고는 금방 안색이 달라지며 노기에 차서 화덕의 불을 여느 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지피도록 하고,  20 군인들 가운데서도 힘센 장정들을 뽑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 활활 타는 화덕에 집어 넣으라고 명하였다. .”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가장 뜨거운 풀무불이 타고 있고 그 속에 세 사람을 던져 넣었다. 앞으로 우리에게도 이러한 경험이 곧 오게 될 것을 기억하라(묵시 13:15~17). 다니엘 시대에 세워졌던 우상이 마지막 시대에 다시 세워진다. 

이 우상은 마지막 시대의 초강대국인 둘째 짐승 미국(묵시13:11~14)을 중심으로 온 세상이 볼 수 있도록 세워진다. 이 신상은 눈에 보이는 그러한 우상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타협을 의미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과 관계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때 그 우상에 경배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다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질 것이다. 바벨론 시대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시대에도 교회(교권)와 국가(국권)가 연합하여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계명을 범하게 하는 가짜 계명 즉 인간이 세운 계명을 지키도록 강요할 것이다. 짐승의 표가 무엇인가? 666이 무엇인가?  성경은 마귀의 작전을 예언을 통하여 폭로하고 있다. 다니엘 3장은 마지막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 하느님의 명령을 지키되 죽기까지 지키는 믿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하느님을 신뢰한 결과와 순종의 열매

 

 (다니 3:21,22) 21 사람들은 그들을 도포와 속옷 등 옷을 입고 관을 쓴채로 묶어서 활활 타는 화덕 속에 집어 넣었다.  22 왕명이 그만큼 급했던 것이다. 화덕이 너무나 달아 있었으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넣던 사람들이 불길에 타 죽고 말았다. .”

 

 의 엄한 명령에 겁이 난 군사들이 세 친구들을 붙잡고 풀무불로 갔다가 그 불이 너무 뜨거워서 군사들이 뜨거운 불 때문에 풀무불 밖에서 타 죽어 버렸다. 그 정도로 뜨거운 불이었다.

 

(다니 3:23-25) 23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세 사람은 꽁꽁 묶인 채 불타는 화덕 속에 던져졌다.  24 그런데 느부갓네살왕이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그는 벌떡 일어나 측근자에게 물었다. '꽁꽁 묶어서 화덕에 집어 넣은 것이 세 명 아니었더냐?' 그들이 대답했다. '임금님, 그렇습니다.' 그들은 불길 가운데를 걸으면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찬미를 드렸다.  25 '그런데 네 사람이 아무 탈 없이 화덕 속에서 거닐고 있으니, 어찌된 일이냐? 저 네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모습을 닮았구나' 하면서 아자리야는 불 속에 우뚝 서서 입을 열어 이렇게 노래하였다. .”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불 속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 불이 그들을 태우지 못했다. 불은 그들을 묶고 있던 밧줄만 태웠다. 그래서 그들은 그 불 속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며 모든 것을 희생하고 주님께 내어 맡기면 오히려 우리 생애가 더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나를 보호하고 더 많은 재물을 얻고 세상과 타협하기 위해서 애쓰면 애쓸수록 이기심과 욕심과 정욕이 나를 더 세게 묶어서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고 주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차라리 불 속에 떨어지면 우리를 묶고 있던 밧줄이 다 타버리고 마음 가운데에 자유와 평안이 있게 된다.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부를 누리는 것보다 하느님을 순종하며 고난 가운데 있는 것이 더 낫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다. 풀무불 속에서 예수께서는 충성스러운 다니엘의 세 친구와 함께 거니셨다.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희망과 힘을 주는가! 얼마나 큰 격려인가! 우리가 진리를 위해서 그리고 주님 뜻대로 살기 위해서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주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우리 곁에 와 계신다는 사실을 이 장면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느부갓네살 왕은 풀무불 속에 있는 네 번째 존재를 하느님의 아들과 같다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니엘의 세 친구들과 그곳에 함께 계시는 것을 보고 “하느님의 아들”인 것을 그는 인식하였던 것이다.

 

(다니 3:26) 느부갓네살은 활활 타는 화덕 어귀에 가서 이렇게 외쳤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아 어서 나오너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화덕에서 나온 다음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이시며 공경하올 주님, 찬미받으소서. 당신의 이름이 영원히 찬미를 받으소서. ” 

 

우리는 평안할 때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 하느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 고난 가운데서 하느님을 굳게 신뢰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견디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히브리 세 청년이 고난 속에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 결과를 살펴보도록 하자.

 

 (다니 3:27,28) 27 지방장관들과 대신들, 총독들, 왕의 측근들이 모여 와 그들을 살펴 보니, 몸이 불에 데기는커녕 머리카락 하나 그슬리지 않았고 도포도 눋지 않았으며 불길이 닿은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당신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일이 옳았으며, 당신의 모든 약속은 어김없이 이루어졌사오며 당신의 길은 곧바르며 당신의 심판은 언제나 올바르옵니다.  28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섬기는 신이야말로 찬양받으실 분이구나' 하며 느부갓네살은 외쳤다. '저들의 하느님께서, 어명을 어기면서까지 목숨 걸고 당신만을 믿고 저희의 신 아닌 다른 신 앞에서는 절하지도, 섬기지도 않는 이 신하들을 천사를 보내시어 구해 내셨구나. 당신께서 우리들에게 내리신,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내리신, 모든 징벌에 있어서 당신의 판결은 옳았습니다. 당신께서 우리에게 이런 징벌을 내리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고 우리는 당신의 징벌을 받아 마땅하옵니다. .

 

참 하느님을 섬기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죽음에 던지면서까지 왕의 명령을 거역한 세 청년들을 하느님께서 건져주셨다고 느부갓네살 왕이 고백하였다. 다니엘 3장에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놀라운 충성심과 믿음과 희생 때문에 얼마나 크게 전도가 되었는가! 그 결과 그들의 신앙에 감동이 된 왕이 대신해서 하느님의 도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도해 주었다. 

다니엘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들이, 다니엘서에 기록된 예언들 앞에 먼저 기록되어 있는 이유를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가졌던 믿음과 영적인 충성심을 가져야만 마지막 환난을 통과 할 수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해 그들의 믿음과 생애에 관한 이야기들을 먼저 기록해 두셨다.

 

사탄은 하느님의 백성들을 없애려고 두 가지 작전을 세워 두었다. 첫째 전략은 그들을 죽여서 없애는 것이고 둘째 전략은 그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타협하게 만들어서 뒤로 물러가게 하는 것이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데 그러한 자들이 하늘에서 하느님과 영원히 살 자들이다. 

다니엘 2장은 하느님을 미래를 내다 보시는 분으로 소개하고 3장은 우리를 시련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구세주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가? 가정에 문제, 죄의 습관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가 있는가? 하느님을 신뢰하라!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니 그분을 신뢰하라!

 

(다니 3:29,30) 29 이제 나는 영을 내린다. 인종이나 말이 다른 뭇 백성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섬기는 신에게 욕된 말을 하지 못한다. 욕하는 자는 토막내어 죽이고 그의 집은 거름더미로 만들리라. 이처럼 자기를 믿는 자를 구해 줄 수 있는 신은 다시 없으리라.' 우리는 죄를 지었으며 당신을 떠남으로써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과연 우리는 큰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율법이 명하는 것을 귀담아 듣지 않았으며  30 그리고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바빌론 지방에서 더 높은 벼슬을 내렸다. 그것을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잘 되라고 명령하신 것을 우리는 지키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하느님의 능력을 목격한 느부갓네살 왕은 놀라운 명령을 내린다. 그의 명령 자체가 하느님을 온 세계에 선포하는 놀라운 전도가 아닌가! 느부갓네살 왕은 큰 감동을 받아 회개하고 하느님을 받아들인 다음에, 이스라엘의 하느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느님을 경배하고 섬기라고 전도하였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진리를 입으로만 전한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과 하느님의 말씀에 충성하는 그들의 증거에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이 함께 하였다. 

오늘날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이기적인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하느님을 믿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믿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다. 다니엘 3장은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모본을 보여주고 있는가!

다니엘 3장의 하느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구원하신 하느님은 오늘도 같은 하느님이시다. 주님은 구세주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건지시는 분이다. 우리의 문제도 고치실 수 있는 분이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동일하여 변치 않으시는 분이다. 우리의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바쳐 그분께 충성하는 참된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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