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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가난한 과부의 헌금(獻金) (루카21,1-4)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11-22 조회수59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1월 22일 월요일

 

[연중 제34주간 월요일가난한 과부의 헌금(獻金) (루카21,1-4)


   

 

1독서<다니엘하난야미사엘아자르야만 한 사람이 없었다.>(다니엘 1,1-6.8-20)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통치 제삼년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주님께서는 유다 임금 여호야킴과 하느님의 집 기물 가운데 일부를 그의 손에 넘기셨다네부카드네자르는 그들을 신아르 땅자기 신의 집으로 끌고 갔다그리고 기물들은 자기 신의 보물 창고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임금은 내시장 아스프나즈에게 분부하여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을 데려오게 하였다.

그들은 아무런 흠도 없이 잘생기고온갖 지혜를 갖추고 지식을 쌓아 이해력을 지녔을 뿐더러 왕궁에서 임금을 모실 능력이 있으며칼데아 문학과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임금은 그들이 날마다 먹을 궁중 음식과 술을 정해 주었다그렇게 세 해 동안 교육을 받은 뒤에 임금을 섬기게 하였다.

그들 가운데 유다의 자손으로는 다니엘하난야미사엘아자르야가 있었다.

다니엘은 궁중 음식과 술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자기가 더럽혀지지 않게 해 달라고 내시장에게 간청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 내시장에게 호의와 동정을 받도록 해 주셨다.

10 내시장이 다니엘에게 말하였다. “나는 내 주군이신 임금님이 두렵다그분께서 너희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정하셨는데너희 얼굴이 너희 또래의 젊은이들보다 못한 것을 보시게 되면너희 때문에 임금님 앞에서 내 머리가 위태로워진다.”

11 그래서 다니엘이 감독관에게 청하였다그는 내시장이 다니엘과 하난야와 미사엘과 아자르야를 맡긴 사람이었다.

12 “부디 이 종들을 열흘 동안만 시험해 보십시오저희에게 채소를 주어 먹게 하시고 또 물만 마시게 해 주십시오.

13 그런 뒤에 궁중 음식을 먹는 젊은이들과 저희의 용모를 비교해 보시고이 종들을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14 감독관은 그 말대로 열흘 동안 그들을 시험해 보았다.

15 열흘이 지나고 나서 보니그들이 궁중 음식을 먹는 어느 젊은이보다 용모가 더 좋고 살도 더 올라 있었다.

16 그래서 감독관은 그들이 먹어야 하는 음식과 술을 치우고 줄곧 채소만 주었다.

17 이 네 젊은이에게 하느님께서는 이해력을 주시고 모든 문학과 지혜에 능통하게 해 주셨다.

다니엘은 모든 환시와 꿈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18 젊은이들을 데려오도록 임금이 정한 때가 되자내시장은 그들을 네부카드네자르 앞으로 데려갔다.

19 임금이 그들과 이야기를 하여 보니그 모든 젊은이 가운데에서 다니엘하난야미사엘아자르야만 한 사람이 없었다그리하여 그들이 임금을 모시게 되었다.

20 그들에게 지혜나 예지에 관하여 어떠한 것을 물어보아도그들이 온 나라의 어느 요술사나 주술사보다 열 배나 더 낫다는 것을 임금은 알게 되었다.

 

화답송 다니 3,52.52.53.54.55.56(◎ 52)

◎ 세세 대대에 찬송과 영광을 받으소서.

○ 주님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찬미받으소서

○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당신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 거룩한 영광의 성전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거룩한 어좌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커룹 위에 앉으시어 깊은 곳을 살피시는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하늘의 궁창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복음<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루카21,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3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또는체칠리아 기념일 독서(호세 2,16.17ㄷㄹ.21-22)와 복음(마태 25,1-13)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제1독서 (다니1,1-6.8-20)

 

"부디 이 종들을 열흘 동안만 시험해 보십시오. 저희에게 채소를 주어 먹게 하시고 또 물만 마시게 해 주십시오. 그런 뒤에 궁중 음식을 먹는 젊은이들과 저희의 용모를 비교해 보시고, 이 종들을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12-13)

 

다니엘은 자신을 감독하는 자에게 진지하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그것은 특정한 기간을 정해서 임금의 진수성찬을 먹지 않는 자신과 이를 먹는 다른 친구들을 비교해 보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열흘 동안'에 해당하는 '야밈 아사라'(yamim asarah)는 문자 그대로 10일을 의미한다.

다니엘서 1장 14절과 15절에 열흘 동안 시험했다는 사실이 부가적으로 진술되고 있다.

열흘은 동료들과 다른 음식을 먹고 얼굴빛을 통해 그 결과를 드러내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그러나 고기와 기름진 음식을 먹는 자들보다 채소와 물만을 먹으면서 얼굴빛이 더 좋아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주권자이신 주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고 그런 제안을 했을 것이다. 여기서 다니엘의 신앙이 얼마나 확고했는지가 드러난다.


'시험해'에 해당하는 '나쓰'(nas)는 '시험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나싸'(nasa ;test,prove)의 강조 능동 명령형이다.

여기서는 윗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명령하는 뉘앙스가 아니라 뒤에 이어지는 불변사 '나'(na; please)와 더불어 문장을 구성하여 '시험해 보십시오', '시험하실 것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정중한 청원의 의미가 된다.

말하자면, 특정 기간동안 특정한 대상에게만 시범적으로 어떤 특별한 조치를 취하여 그 조치에 따른 결과를 조사해 본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채식을 주어 먹게 하시오'


'채식'에 해당하는 '핫제로임'(hazeroim)의 원형 '제로아으'(zeroah)는 씨를 뿌리는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 '자라으'(zarah)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씨를 뿌려 싹을 내는 것, 또한 씨를 맺는 곡물 종류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것은 야채(vegetable)만을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육식과 생선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곡식류 및 그 곡식으로 만들어진 빵과 과일류까지 다 포함한다.

이 단어가 여기서는 복수형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이것이 입증된다.

 

이어서 다니엘은 포도주 대신에 물을 줄 것을 청원한다.

다니엘서 1장 8절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술은 이교도의 제사와 관련되었을 수도 있으며, 방탕한 생활을 지양하고,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영위하게 위해 율법이 금하지 않은 술까지도 거부하며 오로지 물만을 마시기를 원했을 수도 있다.


'그런 뒤에 궁중 음식을 먹는 젊은이들과 저희의 용모를 비교해 보시고'(13)

 

다니엘은 자신이 시험을 요청한 사안에 대해 자신감있는 태도로 말한다.

다니엘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역사하심을 통해 놀라운 일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진수성찬과 포도주를 먹지 않고 채식과 곡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자신과 자기 친구들의 얼굴빛과 건강 상태가 다른 동료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좋을 것임을 확신한다.

 

여기서 '비교해 보시고'에 해당하는 '웨예라우'(weyerau)는 '마르예'(marye; '얼굴')의 어원이기도 한 동사 '라아'(raah; '보다')의 수동태 3인칭 복수로 '(젊은이들의 용모와 저희들의 용모가) 보일 것입니다'라는 의미이다.

즉 얼굴빛과 건강 상태는 감독관이 면밀히 살펴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확연하게 드러날 정도로 분명하다는 것이다.

다니엘서의 이러한 자신감은 주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 종들을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다니엘은 자신의 신앙적 신념대로 행한 후에 나타나는 결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바빌론 감독관의 결정에 맡겼다.

여기서 '하십시오'에 해당하는 '아세'(aseh; deal,treat)는 번역 그대로 행하라는 의미인데, 문맥에서는 '처분하십시오'라는 뜻이 들어있다.

이러한 처분은 음식에 관한 결정권뿐 아니라 다니엘과 그 동료들에 대한 징계도 포함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다니엘의 자신들에 대한 처분에 대한 의탁 역시 하느님께 대한 확신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않아 죽임을 당한다고 하여도, 자신들의 신앙의 정절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도 있다.

 

 

 

 

오늘복음에서 자신을 깨닫고 보고 버리라 하신다.


(루카21,1-4)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 궁핍한 과부가 생활비를 다 넣었다고 좋아하실 주님이실까? 肉의 부모도 가난한 자식이 생활비를 다 털어 용돈을 준다면 마음이 아파, 받을 부모 없다. 

그렇듯 가난한 당신의 자녀가 생활비를 헌금으로 다 넣었다고 칭찬하시는 주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문 1절을 다시보면,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 이 부분에서 ‘눈을 들어’~를 빼고 ‘예수님께서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로 하셔도 어색하지 않다.

요점은 헌금을 하는 사람의 눈이 아닌, 주님의 눈으로, 하느님의 관점으로 보셨다는 것이다. 

헌금은 내 죄를 대속하시고 죽으셔서 나를 살리신 그 예수님의 죽음, 그 사랑이 감사해서 내 목숨과 같은 돈을 드리는 것이 헌금이다. 죄의 나(목숨)는 죽었습니다, 버립니다. 라는 신앙 고백인 것이다.

 

과부의 생활비, 곧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린 것을 칭찬하신 것이다. 부지들은? 자신의 목숨, 돈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곧 감사의 헌금이 아닌 자신들의 의로움을 위한 예물로 드렸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로 죄의 용서, 의로움을 위한 예물이 이제는 필요 없게 되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히브10,18)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 그들은 제사와 윤리의 그 자기 의로움이 컸기에 그리스도의 대속, 그분의 의로움으로 받는 구원의 의미, 필요성, 간절함이 없기에 자신들의 의로움, 자신의 목숨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들의 그 빛이 어둠인 것을 모르기 때문에~ 헌금을 감사의 새 노래로 드릴줄 모르는 형식과 의무로만 했던 것이다.

그들의 예물이 그들 자신을 위한, 그 자신을 더 믿는, 그래서 버리지 못하는 그들의 속셈, 위선을 주님의 눈이 보신 것이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태16,25) 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아멘!!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21,1-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4)

 

예루살렘 성전은 이방인의 뜰, 여인의 뜰, 이스라엘의 뜰, 사제들의 뜰 이렇게 네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방인의 뜰은 성전의 마당으로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를 하실 때 장사치들과 환전상들을 몰아내셨던 곳으로 이방인들도 들어올 수 있었던 곳이고, 여인의 뜰은 성전에 들어가기 전의 홀에 해당하는 곳으로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여인들의 장소이며, 이스라엘의 뜰은 성전 안의 회중석에 해당하는 이스라엘의 남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며,  사제들의 뜰은 성전 안의 제단에 해당하는 사제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이들 성전의 네 지역에서 헌금함 바로 여인의 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시다가 갑자기 헌금하는 가난한 과부가 당신의 시야에 들어와 보시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 당시 성전에는 13개의 나팔 모양을 한 헌금함이 있었으며, 각각의  용도와 지향이 그 위에 기록되어 있다.

 

13개의 헌금함 중에 한 개는 자발적인 기부금을 모으는 헌금함이었다. 아마도 빈곤한 과부는 일반인들을 위한 자발적인 기부금을 모으는 헌금함에 렙톤 두 닢을 넣었다고 본다.

 

여기서 '빈곤한'으로 번역한 '페니크란'(penichran; poor)의 원형 '페니크로스'(penichros)는 극도로 가난한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며, 당시 '과부'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경제적 활동이 극히 제한을 받았던 가장 가난한 계층의 사람으로서 늘 구제의 대상이 된 신분이었다.

 

그리고 '두 렙톤'으로 번역된 '렙타 뒤오'(lepta dyo; two mites)에서 '렙톤'은 유대 화폐의 최소 단위로서 로마 화폐 과드란스의 2분의 1에 해당한다(마르12,42).

한 렙톤은 당시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이었던 데나리온의 128분의 1에 해당된다.

 

그리고 당시의 성전 규정상 한 렙톤을 헌금하는 것은 금지되었기에, 두 렙톤은 당시 헌금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액수의 헌금이었다.

 

이것은 여기에 등장하는 빈곤한 과부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적 통찰력으로 두 렙톤이  그 과부의 생활비 전부이며,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음을 아셨다.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 21장 4절에서 그 과부가 가장 많은 헌금을 했다고 판정하신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신다.

 

예수님께서 판정을 내리는 두 대상의 형편과 관련된 두 단어가 나온다. 

하나는 '풍족한'으로 번역된 '페릿슈온토스'(perisseuontos; abundance; wealth)이고, 다른 하나는 '궁핍한'으로 번역된 '휘스테레마토스'(hysterematos; penuary; poverty)이다.

 

'페릿슈온토스'(perisseuntos)의 원형 '페릿슈오'(perisseuo)는 '양과 수를 초과하다'(exceed)는 뜻으로 어떤 것이 풍부하여 흘러 넘치는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부자들의 경제적인 상태가 흘러 넘칠 정도로 풍부했다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들은 이렇게 흘러 넘치는 재물 중에 일부를 하느님께 바쳤다.

 

이것과 대조를 이루는 '궁핍한'으로 번역된 '휘스테레마토스'의 원형 '휘스테레마'(hysterema)는 '부족', '모자람'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물질이 부족해 기본적인 필요조차 채우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과부의 철저하게 빈곤한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단어이다. 모든 것이 부족한 과부는 너무나 빈곤한 가운데 헌금을 바쳤는데, 그것은 과부의 생활비 전부였다.

 

여기서 '생활비'로 번역된 '비온'(bion)의 원형 '비오스'(bios)는 '삶', '생명' 자체를 가리키거나, 또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뜻한다.

말하자면 이 과부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물질마저 모두 바쳤고, 이것은 그녀의 생명을 바치는 것과 같음을 가리킨다.

 

이렇게 과부는 양적인 면에서 부자의 헌금에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은 금액을 하느님께 바쳤지만, 그것의 가치는 절대적 양의 개념에 있어서 흘런 넘치는 부자의 헌금보다 더 귀한 것을 바치는 자들의 마음과 태도로 평가되어야 한다.

 

인간의 겉이 아니라 속 마음을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부자한테는 있으나마나한 헌금과, 과부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헌금의 가치를 절대적 양의 개념으로 평가하지 않으시고, 그 바치는 자의 마음을 기준으로 평가하신 것이다.

 

 

 

[매묵]2017년 11월27일 [(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매일미사 묵상/가난한 과부의 헌금 그림 등 3장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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