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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2주간 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12-05 조회수1,386 추천수12 반대(0)

대림시기를 지내면서 우리는 주님의 탄생을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오셨던 주님의 탄생을 기억합니다. 우리에게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기다림과 기억은 시간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시간이 없다면 기다림은 의미가 없습니다. 기다림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없었다면 기억도 없을 것입니다. 기억은 시간 속에 생겨난 추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시계를 보면서 시간을 확인합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 약속을 하고, 시간 속에서 일을 합니다. 그렇다면 시간은 무엇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시간은 변화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그렇습니다.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은 모두 시간의 에 갇혀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시간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시간은 우리들 기억의 산물이다.” 우리의 기억이 없다면 시간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시간에 대해서 뉴턴은 우주의 공간에 좌표처럼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좌표는 미분과 적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시간에 대해서 칸트는 허구이며 관념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시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2가지 차원의 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물리적인 시간입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입니다. 부자도, 가난한 이도 하루 24시간을 사용합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삶의 중요한 척도가 됩니다. 역사가 기록되고, 문화와 문명이 만들어집니다. 나이는 물리적인 시간에 의해서 정해집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톱니바퀴 속에서 일하고, 사랑하고, 늙고, 병들어 죽게 됩니다. 두 번째는 의미의 시간입니다. 결혼기념일, 서품기념일, 생일, 축일, 은경축, 본당 설립기념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시간과는 다른 시간입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술, 문학, 철학, 종교는 의미의 시간 속에서 발전하였습니다. 의미의 시간을 살면서 우리는 질문합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로 갈까?’ 오직 인간만이 의미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성서는 의미의 시간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마치 한 토막 밤과도 비슷하나이다. 당신이 앗아가면 그들은 한바탕 꿈 아침에 돋아나는 풀과도 같나이다. 아침에 피었다가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서 말라버리나이다. 사람을 진흙으로 돌아가게 하시며 인간의 종락들아 먼지로 돌아가라. 주님 당신만이 영원히 계시나이다.(시편90)”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미의 시간입니다. 참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 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바싹 마른 땅은 샘터가 되며 승냥이들이 살던 곳에는 풀 대신 갈대와 왕골이 자라리라.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물리적인 시간 속에서는 볼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예언자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희망현실이 되도록 함께하는 이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웃들은 예수님께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이웃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중풍병자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치유해 주셨습니다. 저는 봉성체를 다니면서 10년 이상 자리에 누워있는 중풍병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본인도 힘들지만, 가족들도 함께 아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풍병자는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가족들과 이웃들이 함께 할 때, 중풍병자는 힘을 얻을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5년 동안 중풍병자인 아내를 위해서 헌신 하시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말도 하고, 비록 휠체어에 의지하지만 밖으로 나가서 산책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들도 함께하니 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꿈과 희망은 혼자일 때는 그대로 꿈과 희망으로 남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함께 할 때면 꿈과 희망은 현실이 될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함께하는 우리들의 열린 마음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노력을 보시고, 큰 축복을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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