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제(신부)여! 예수님을 듣고 싶습니다. (루카5,17-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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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21-12-06 | 조회수87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1년 12월 6일 [대림 제2주간 월요일] 사제(신부)여! 예수님을 듣고 싶습니다. 복음(루카5,17-26) 17ㄱ 하루는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갈릴래아와 유다의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도 앉아 있었다. = 하느님의 뜻, 지혜(智慧), 진리(眞理)로 오셔서 모든 죄인(罪人)들의 죄를 대속(代贖)해 주시고, 주실, 하늘의 용서, 구원의 말씀을 가르치셨을 것이다.(4장에서부터~~) 그런데 율법(제사와 윤리)으로 그 주님의 뜻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곧 주님의 지체(肢體)로 그분이 주시는 죄의 용서, 자유, 의로움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반대자(反對者)들이다. 17ㄷ예수님께서는 주님(야훼하느님)의 힘으로 병을 고쳐 주기도 하셨다. = 하느님의 힘, 곧 죄의 용서(容恕), 구원의 능력(能力)인 말씀으로 고치신 것이다.(마태8,16참조) 18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 율법(律法, 제사와 윤리)의 의로움 때문에 십자가의 대속, 그 주님의 의로움을 누리지 못하는(로마3,19-25 10,1-4 참조) 곧 머리(주님)의 명령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중풍병자(中風病者)다. 19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일 길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내고, 평상에 누인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보냈다. 20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 치유가 아니라 용서(容恕)다. ‘죄의 용서가 치유’라는 것이다. *믿음으로 주님을 만나려면, 곧 영원한 보호자, 구원자, 주님을 만나려면 사람이 지은 집은 영(靈)을 보호할 수 없는 영원한 것이 못되는 것으로 그 사람이 지은 집의 지붕은 부서져야(벗겨져야)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믿음을 갖은 그들의 믿음에 동참(同參)한(따랐던) 중풍병자(中風病者)가 영혼(靈魂)의 치유인 용서(容恕)를 받은 것이다. 21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 지혜, 말씀으로 오신 하느님이심을 모르는 그 율법학자들의 믿음 없는 소리다. (요한1,17-18)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22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23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 사람의 관점(觀點)으로 물으신 것이다. 말로 하는 용서(容恕)보다 중풍병자(中風病者)가 일어나 걷는 것이 더 어렵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용서로 병자(病者)가 일어나 걷는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죽음으로 이루어지는 어려운, ‘큰 일’인 것이다. 24ㄱ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 모든 죄(罪)를 대속(代贖) 하셨기에 모든 것에 권한(權限)이 있으신 것이다. (에페1,7)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24ㄴ그러고 나서 중풍에 걸린 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 용서(容恕)가 자유(自由)다. 죄를 주었던 율법과 중풍병자를 주었던 땅의 말, 법의 가르침에서 일어나(벗어나) 새로운 삶, 새로운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이다. 주님의 용서는 병상(病床)에서 일어날 수 있는 힘이다. 병으로 누워있었던 지긋지긋했던 평상(平床)까지 들고 갈 수 있는 능력(能力)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처럼 주님의 대속으로 용서받아 구원 받았음을 믿는 이는, 자신의 허물, 잘못을 진솔하게 고백(간증)할 수 있는 것이다.(사도22,4-5참조) 25 그러자 그는 그들 앞에서 즉시 일어나 자기가 누워 있던 것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26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얻는 용서, 그 깨달음, 믿음이 없기에 주님의 일을 ‘신기한 일’로 보는 이들이다. 말씀을 ‘하느님의 일’을 진리로 믿기 위한 가르침이 아닌 ‘사람의 일’로 육의 만족, 마음의 감동을 주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1티모6,20-21) 20 티모테오!, 그대가 맡은 것을 잘 지키십시오. 사이비 지식의 *속된 망언과 *반론들을 멀리하십시오. 21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지식을 받아들여 믿음에서 빗나갔습니다. (티토1,13-14) 13 이 증언은 참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엄하게 꾸짖어 그들의 믿음이 건전해져서, 14 유다인(인간)들의 *신화, 그리고 진리를 저버리는 *인간들의 계명에 정신을 팔지 않게 하십시오. = 그리고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 진리(眞理)의 가르침을 청(請)하자는 것이다. ‘신부(사제)님! 믿음을 위한 진리(眞理)의 복음(福音)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그리스(헬라) 사람들처럼~ (요한12,20-21) 20 축제 때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온 이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도 몇 명 있었다. 21 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믿음을 위한 진리의 가르침으로, 중풍인 불구의 신앙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룰 수 있도록 모든 사제들과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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