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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3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12-11 조회수1,630 추천수12 반대(0)

한국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저는 손님에게 집을 내어 주고, 옆에 있는 성당의 사제관에서 며칠 지냈습니다. 지난여름에도 한국에서 신부님이 오셨고, 그때도 그렇게 했습니다. 손님은 뉴욕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선물로 책 한권을 주고 갔습니다. 책의 제목은 세분의 어머니입니다. 저는 방을 내 주었지만, 손님은 제게 마음의 양식을 주었습니다. 오늘은 책에서 읽은 내용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예술품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예술품의 가치를 이야기해 주었고, 아들은 예술품을 통해서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아들은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아버지는 군에서 아들의 사망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군에서 이렇게 전하였습니다. ‘아드님은 다른 이를 구하기 위해서 전사하였습니다.’ 아들 덕분에 목숨을 건진 병사는 아들의 얼굴을 그려서 아버지에게 보내 주었습니다. 예술 적인 가치는 없었지만 아버지에게는 아들을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그림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예술품을 경매에 내 놓았습니다. 상당한 가치가 있는 예술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경매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아들을 그린 초상화를 가장 먼저 경매에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그림을 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추어가 그린 것이고, 예술적인 가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초상화를 사겠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에게는 9달러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사지 않았기 때문에 초상화는 9달러에 팔렸습니다. 이제 남은 예술품을 경매에 올릴 줄 알았는데 그날 경매는 끝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유언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경매의 물건들은 아들의 초상화를 산 사람에게 모두 주시오.’ 가난했지만 마음이 따뜻했던 사람은 단돈 9달러로 많은 예술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술품을 경제적인 가치로만 생각했던 사람들은 경매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는 사람은 아버지를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것으로 우리는 천국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더 두는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맹자는 우리 사람들에게는 4가지의 품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람들이 가진 고유한 품성이라고 말을 합니다. 주역은 또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선행을 행하는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찾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동양에서는 우리가 자선을 베푸는 것은 우리에게 있는 품성이며, 그런 자선은 결국 우리를 이롭게 한다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사람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이나, 직책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강도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쓰러져 신음하는 사람을 못 본척하고 스쳐지나간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생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했던, 빈자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그 일에 쏟아 넣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주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그러한 증여에 쏟아 넣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한해를 정리하는 12월 달을 지내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올 한해를 돌아보면서 나는 과연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나의 사랑과 나의 마음을 담았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또한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이웃과 나누기보다는 소유하려고만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제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항상 기뻐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바오로 사도가 그 말을 할 때,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 있었습니다. 감옥이 호텔도 아니고 어디 휴양지도 아닌데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감옥에 있으면서도 항상 기뻐하라고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분은 점점 커져야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라고 말했던 세례자 요한과 같은 겸손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철저한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많이 소유한 사람이 반드시 많이 나누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일은 작다고 하여 미루지 말고, 악한 일이 비록 작다고 행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선현의 말씀이 귀를 울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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