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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12-12 조회수1,459 추천수11 반대(0)

신문사에 있으면서 좋은 점은 매주 신문을 정독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2개의 연재물이 끝났습니다. 호명환 신부님의 프란치스칸 영성66회로 마감되었습니다. 김혜경 교수님의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의 한 장면61회로 마감되었습니다. 저는 두 연재물을 읽으면서 권위에 대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보잘 것 없고 사제도 아니었던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무너져가는 교회를 부탁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가난과 정결 그리고 비움으로 무너져가는 교회에 신선한 영성의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오상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교회라는 에서 벗어나 우주적인 그리스도를 찬양하였습니다. 꽃과 나무, 나비와 벌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생태적인 신앙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우리는 모두 한 형제요, 자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종교, 민족, 국가, 신념, 체제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의 한 장면은 권위의 또 다른 모습을 전해 주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권력을 가지려 할 때, 교회가 높은 첨탑과 제도의 그늘에 머물러 있을 때는 부패와 타락이 생겼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때는 교회의 권위도 조금씩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교황이 다스리던 영토를 내어주었을 때, 세상의 권력에서 멀어졌을 때,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때 교회는 비로소 영적인 권위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연재물은 예루살렘 공의회, 트리텐트 공의회와 더불어 교회를 영적으로 쇄신했던 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지막으로 다루었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세상에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는 공의회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으로 교회가 바티칸의 창문을 열고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경청하는 공의회였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먼저 쇄신되어야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예수님의 권위는 하느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입니다.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며 이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말이 들렸습니다. 타볼 산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셨을 때입니다. 이때도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말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힘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십자가에서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십자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없는 권위는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습니다. 십자가 없는 권위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습니다.

 

21세기에 우리가 대림시기를 지내고, 성탄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그것은 과학과 기술만으로는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 폭력, 살인, 범죄, 욕망은 과학과 기술로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인류에게 충분한 자원을 마련하였지만 인류의 욕망을 채우기에는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두 번에 걸친 세계 전쟁, 식민지 지배의 탐욕을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지금도 난민, 테러, 환경오염, 가난, 질병, 굶주림이 우리 삶의 주변에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자비를 이야기 합니다. 영성의 시대를 살면 원시인류였어도 감사하며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욕망의 시대를 살면 21세기의 풍요 속에서도 우리는 빈곤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과학과 기술 그리고 법칙과 질서로만 살아간다면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과학과 기술의 옷을 입더라도 우리는 영성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아직도 성탄을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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