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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19.“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1-12-19 조회수1,318 추천수4 반대(0) 신고

 

                                             루카 1, 39-45(대림 4주 주일)

 

대림 4 주일입니다. 성탄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오실 분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며, <복음>에서는 오시는 분이 어떻게 오시게 되는 지를 보여줍니다.

 

먼저 <1독서>에서 미카 예언자는 오실 분에 대한 네 가지 정보를 알려줍니다. 첫째는 그분은 ‘보잘 것 없는 작은 고을 베들레헴’(미카 5,1)에서 태어날 것, 곧 그분께서는 인간의 능력에 따라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지혜에 따라 오신다는 사실이요, 둘째는 “해산하는 여인의 아기”(미카 5,2)로 태어날 것, 곧 그분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이요, 셋째는 “목자로 나서리라.”(미카 5,3)는 것, 곧 그분께서 백성을 인도하고 먹여주고 보호해주고 안전하게 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이요, 넷째는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미카 5,4)는 것, 곧 그분께서는 평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평화이신 당신을 건네 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독서>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오시는 분이 짐승의 피로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내놓으실 대제사장으로 오실 것이요, 그것은 당신의 뜻이며 바로 그 뜻을 이루러 왔다(히브 10,7)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2독서>“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 10,7)라는 말씀의 실현을 보여줍니다. 곧 오늘 <복음>에서는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루카 1,45)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문장에 다 같이 들어있는 말은 “이루다”는 단어인데, 앞 문장에서는 능동형으로, 뒤 문장에서는 수동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오시는 분“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안에서 그 뜻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믿는 이들 안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은 그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께서 이루시며, 우리는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응답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안에 계시는 그분이 당신의 뜻에 따라 일하시도록 수락하고 승복하는 일입니다. 곧 그분이 주인이 되시어 일하시도록 허용해드리는 일이요, 그분을 믿고 신뢰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신뢰의 극치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 것도 구하지 않고, 아무 것도 거절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들은 “하느님의 뜻”을 확실하고 이해하고 명확하게 알고서 응답하려 합니다. 마치 “하느님의 뜻”을 확실히 알기만 한다면 그것에 응답할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마음이 불신에 가려졌거나, 그 뜻을 알아야 하는 자신을 앞세우거나, 자신이 그 뜻을 이루고 싶어서 “하느님의 뜻”의 불확실성을 탓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뜻”은 본질적으로 계시되어 있지만, 동시에 신비에 가려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선한 뜻’(마태 11,26;루카 10,21)을 지니신 주님의 사랑과 호의에 의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마더 데레사의 일화가 있습니다.

 

영성 안내자로 살아가고 있는 존 캐버너가 자신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캘커타에 봉사활동 하러 갔을 때에, 수녀님께서 물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존이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자 수녀님께서 되물었습니다. “무엇을 기도해 드릴까요?” 존이 ‘확실하게 알고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하자 수녀님께서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위해 기도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당신이 추구해야 할 것이 아니라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존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수녀님은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고 또한 믿고 있는 분처럼 보입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수녀님께서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한 번도 확실하게 알고 믿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늘 가지고 사는 것은 신뢰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도 하느님을 신뢰하도록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길은 우리가 이끌려가게 될 곳을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분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아브람을 불러내실 때, 목적지를 알려주거나 지도를 마련해 주지도 않으면서 떠나라라고 하셨고, 그는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이 없지만 신뢰로 믿음의 길을 갔었듯이 말입니다. 성모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말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십자가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셨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주님이신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좋은 뜻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면 충분합니다. 믿음의 길은 확실하게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이미 우리 가운데 와 계신 분의 동행을 신뢰하고 의탁하는 일입니다. 곧 그분의 선한 뜻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그 모범을 보여주었던 샤를르 푸고의 기도를 함께 드려 봅니다.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저와 모든 피조물 위에 이루어진다면, 이 밖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하여 하느님께 제 영혼을 바칩니다. 당신은 제 아버지이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알고 이해하기에 행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행할 때 실현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밝혀주고 있는 마리아가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마리아가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뜻이나 바람을 이루어진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행복하십니다.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루가 1,45)

주님!

제가 행복한 것은

믿고 사랑하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당신의 희망 때문입니다.

늘 저보다 먼저 사랑하고, 더 사랑하고, 더 믿고 더 희망하시기 때문입니다.

결코 사라질 수도, 빼앗겨 질 수도, 멈춤도 없는 당신의 희망이

바로 오늘 제가 진정 행복한 이유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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