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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판공성사 준비 잘합시다/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12-22 조회수791 추천수4 반대(0) 신고

 

판공성사 준비 잘합시다.

루카 3,1-6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코로나가 좀 진정되어야 아파트라도

맘 놓고 올 수 있는데,

지금은 한마디로 환난의 시대입니다.

오늘 대림 제2주일 복음의 시작은

어느 시대였다고 나오죠?

빌라도가 총독이고,

헤로데가 영주고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라 합니다.

그런 시대에 요한이 나타났다고 나와 있고,

2절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고 나옵니다.

왜 성령이 내렸다고 하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이 내렸다고 되어있을까요?

보통 이런 경우는 성령이 내렸다고 하죠,

예수님도 세례받을 때 성령이

내렸다고 하셨죠.

그런데 요한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이 내렸다고 나와요.

루카 복음은 일단 아름답고,

굉장히 시적이에요.

그래서 복음서 중 성경을

처음 읽는 분께 권하는 복음이

루카 복음이에요.

참 아름다운 기적 이야기들이 많고

문체가 화려하고 여성적이죠.

그 이유는 루카라는 분은 지식인인 의사였죠.

의사였기에 많은 단어를 알고 있었고,

역사적인 지식도 해박했죠.

오늘도 아무 시대라고 하면 끝날 텐데,

굳이 국경 저쪽 나라는 누가 다스리고 하는 등,

지식이 굉장히 해박했죠.

오늘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라는

표현은 상당히 시적인 표현입니다.

그냥 성령이 내렸다 할 수도 있는 것이,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요한에게 내렸다.

말씀과 성령의 관계는 어떤 관계였을까요?

성령이 함께한 언어를

우리는 말씀이라 합니다.

그래서 루카 사가는 굳이 성령이

내렸다는 표현을 할 필요가 없었지요.

이 말씀은 치유의 힘이 있고,

마귀를 쫓아내는 구마의 힘이 있고,

인간을 변화시키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3년 동안 하신 이야기들은

말이 아니라 말씀이지요?

수다 떠는 것이 아니었어요.

내가 미사 전에 여러분과 이야기했던 것은

그냥 말이고지금 강론은 말씀입니다.

말투가 다르고힘의 크기가 다르죠.

제가 얼마 전 제주도에서 했던

3일간의 특강을 들어보셨습니까?

마지막에는 치유 기도도 했습니다.

제주도 신부님께서 신부님,

아직도 제주도에서는 신부님 앓이를

하고 있어요.’ 하세요.

아직도 동광성당 홈페이지나

유튜브에 들어가 본대요.

그때 나는 말장난을 하러 간 것이 아니라,

신학 교수들처럼 지식을

가르치러 간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러 간 것이죠.

2년 만에 하는 강의라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죠.

강론 원고를 보아도 그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는 거예요.

강론에는 줄기가 있고 가지가 있어서,

뻗어나갔다가도 다시 돌아와야 해요.

예화를 들고 다시 가지로 돌아와야 하는데,

이것이 안되면 그날 강론을 망치는 거죠.

강론 노트에는 단 3,

아무리 들여봐도 기억이 안 났죠.

이거 큰일이라고 하다가 성령께서

알아서 하시겠지내 입을 막으시면

하느님 손해지 뭐하며 배짱을 부렸죠.

그런데 첫날부터 제가 강의하면서 느꼈죠.

그분이 오셨네!’

저는 그냥 소리만 낼 테니,

당신이 알아서 제 입을 가지고 노십시오.’

했습니다.

그 첫째 날부터 둘째 날,

셋째 날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많은 치유가 일어났다 합니다.

성령이 함께한 언어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 언어를

우리는 ’, 혹은 언어라 합니다.

이 언어도 기능은 분명히 있습니다.

지식 전달상황 전달의사표시 등

다양한 기능이 있죠.

그러나 제가 배고파.’하는 말을 듣고

치유 받으신 분은 없으세요.

하지만말씀에는 항상 성령이

함께하시어 상대방을 치유시킵니다.

여러분이 남편을 치유시키려면

여러분 하는 말에 성령이 함께 해야 합니다.

대녀를 치유시키고 싶으면,

어둠을 헤매는 냉담자를 구마시키려면,

여러분의 말이 말씀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니 초등학교도 안 나온

배추 파는 할머니가 대학교수 끌고

교리반에 나오잖아요?

할머니 입에서 무슨

어려운 단어가 나왔겠어요?

그러나 한마디를 하더라도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하신 거기에,

그때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온 것입니다.

치유와 구마와 인간 개조,

즉 변화는 그 사람을 밑바닥부터 바꿔요.

말씀이 한번 지나가면 안 바뀔 재간이 없고,

치유 안 될 재간이 없고,

마귀가 도망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는 거죠.

이제 말씀과 성령과의 관계를 아셨죠?

그러니우리 교우들끼리 모이는 모임,

혹은 개인 모임이라도,

수다를 떨다 보니 한 자매가 뭔가 심각하면,

속으로라도 기도하십시오.

집에 가서 기도해줘야지가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기도하십시오.

주님지금부터 제 입에서 나오는 성령이

함께하는 말씀으로 저 힘들어하는

자매를 치유시켜주십시오.

어둠에 헤매고 있으니

마귀를 떼어내 주십시오.’

믿는 대로 될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하시는 말씀이

세례자 요한에게 내렸습니다.

그럼성령이 함께하시는 말씀 중에

첫 번째 하느님의 목소리가

무엇이었습니까?

3절에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라고 나옵니다.

세례를 베풀었다가 아니라,

선포하였다입니다.

루카 사가는 정말 표현이 참 아름다워요.

그러니사제들의 말씀 선포의

첫 단추는 회개시키는 것입니다.

사제의 말씀에 회개가 빠져 있으면

앙꼬없는 찐빵고무줄 없는 빤스죠.

하지만첫 말씀부터 끝날 때까지

회개만 말을 하면 사람이 질려버리죠

그래서 종합비타민을 주어야 하죠.

강론을 들으며 많이 웃고,

울기도 많이 울어야 해요.

또 집에 가면서도 엑기스가

남아있어야 해요.

그래회개해야겠다.

죄가 아닌 줄 알았는데 죄였네.’

요즘 제 평일 강론은 여러분들

판공 준비시키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인간관계에 대해 인문학 강의처럼 하면서,

제가 살아오는 이야기도 했죠?

나 떠난 놈들이 못된 놈이라 생각했는데,

분명 내 쪽에서도 분별이 부족하고

떨어지게 한 이유가 있었다 했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만드는 6,

악영향을 주는 것 6,

이렇게 제가 묵상한 것을 설명했잖아요.

그리고 대신관계대인관계,

대물관계가 있는데,

그날을 제가 대인관계만 말씀드렸죠.

앞으로 다른 관계도

인문학 강의처럼 할 거예요.

어쨌든 사제의 말씀 선포의

첫 단추는 회개입니다.

회개를 시키지 않고 예쁘고 꿀처럼

단 이야기만 하면 소용이 없어요.

그런 말씀을 듣고는 치유와 구마가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그 회개는 본인이 아무리

회개하려 해도 안 될 때가 많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기름 부어 제단 앞에

내세운 사제들의 입을 통해 2000년 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그대로 전해지게 하셨죠.

세례자 요한도 회개하라 했죠.

예수님도 회개하라는 것이 첫 말씀입니다.

너희들 이게 걱정하지 마,

건강하게 잘 살 거야.’ 혹은

내가 로마 놈들 다 때려눕힐게.’

그것이 아니었어요.

모든 구약과 신약의 예언자와

선지자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회개하여라.’ 였습니다.

회개와 회두는 같은 말입니다.

여기서 두는 머리 두().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은 아내와 딸

둘과 도망 나옵니다.

그런데 롯이 떠나기 전에

어떤 소리가 나도 뒤돌아보지 마라.

귀를 막아라.’ 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잘 가다가,

뒤에서 건물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번개가 치니 롯의 아내는

아마도 무슨 생각이 났을 거예요.

집 리모델링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돈 많이 들었는데,

가전제품 새로 넣은 거 다 부서지는구나.

마지막으로 집 한 번 보았으면 좋겠어.’

물론 성경에는 안 나와요.(웃음)

그러다가 몸뚱아리가 풀려

딱 뒤돌아보는 순간소금 기둥이 됐죠.

그래서 몸뚱아리만

하느님 앞으로 가면 안 돼요.

결국 몸뚱아리를 하느님 앞에

가게 하는 것은 머리입니다.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을 다 할 수 있어요.

몸은 앞으로 가게 하면서 머리는

저 뒤로 보낼 수 있죠.

그래서 물리적인 머리만

돌리라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마음을 돌리라는 뜻입니다.

머리까지 하느님을 향하게

하는 것이 회개라는 말이죠.

회개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나는 후회라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이제껏 회개했다고

생각하는 것의 90프로 이상은

후회한 것들입니다.

회개와 후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후회는 자기중심적입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지은

내가 싫은 겁니다.

저런 죄지은 내가 싫고,

기분이 나쁘고자존심이 상한 것이죠.

하느님 마음 아픈 것은 생각도 안 합니다.

고해소에 들어와서 많은 사람이

후회만 하다가 나가요.

후회만 하다 나가면 다행,

가끔은 남 고발까지 하고 나가요.

왜 시어머니 고발하고

남편 고발하냐 하면 그분들 이야기를 해야

자기 이야기가 나온대요.

후회는 자기중심적이라,

후회하는 사람은 절대 하느님을 못 만나요.

절대 치유 안 되고,

절대 구마 안 일어나요,

절대 인간 개조가 안 돼요.

그러니 늘 성사를 보아도 찝찝한 거예요.

고백서에 들어와서 눈물 펑펑 흘리면서

하느님제가 맘 아프게 한 죄인입니다.’

성모님 성심을 아프게 한 죄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 거의 못 보았어요.

회개는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동안 내가 냉담을 해서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습니다.

제가 남의 말을 함부로 하고 다녀서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피눈물 흘리신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후회와 회개의 차이를 아셨죠?

지금 이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판공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름다운 성사를 위해서

늘 성찰한 것을 적어가라 합니다.

성찰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성찰할 때 이미 하느님과

나와 길은 열립니다.

그 길 위의 돌덩이들은 사제의 입을 통해

고백소에서 예수님이 치워주실 것이지만,

길은 성찰할 때 열립니다.

죄 중에 있으면 길 자체도 보이지 않습니다.

깜깜하고진흙밭이고 수렁만 보이지만,

성찰을 통해 그 길이 보이는 겁니다.

성찰할 때 어떻게 하라구요?

하느님 마음을예수님의 성심을,

성모님의 성심을성령님의 성심을

아프게 한 것을 찾아야 해요.

유다스는 딱 한 번 배반하고 자살했지요.

후회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성모님 얼굴을 어떻게 뵙나,

내가 미쳤지그 은전 30냥이 뭐라고.

나는 구원 못 받아.’

구원받고 못 받고도 본인이 판단해요.

많이 그 당시에 유다스가 성모님과

다른 제자들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했다면 어땠을까요?

저를 패 죽이세요.

예수님의 눈빛을 보았어요.

그렇게 맥없이 끌려갈 줄 몰랐어요.’

유다스는 실제로 은전을 받을 때부터

자기중심적이었어요.

내가 아는 예수님은 분명 당신 몸 하나는

지킬 분이야저렇게 잡혀가시다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실 거야.

그러면 돈은 돈대로 생기고

스승님도 살아나는 거야

당시 총무직책이었던 유다스는 은전 30냥이면

12명이 3달 먹을 빵을 살 수 있다는

유혹으로부터 헤어날 수 없었어요.

예수님이 빵 걱정했겠습니까?

워낙 두목은 걱정 안 해요.

항상 어디를 가나 총무가 식당 어디를

잡아야 하는지예산과는 맞는지 고민하죠.

이렇게 처음부터 자기중심적이었던

유다스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자기중심적으로 후회하죠.

난 구원 못 받아.’

반면 베드로 사도는 첫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배반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나서 네가 반석이다.’

하시며 교회를 맡기셨잖아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했는데도

일대 교황이 되셨어요.

?

첫닭이 울었을 때 베드로는

땅을 치고 통곡했어요.

기가 막혀서 말도 못 하시는

예수님의 그 눈이 떠오른 거예요.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이 나쁜 놈아 나를 모른다고 해?

이 한마디 못 하시고 깊은 한숨만.’

예수님의 그 연민 어린 눈이 생각나면서

땅을 치며 통곡한 거죠.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베드로의 치명적인

죄책감을 해결해 주려고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3번을 물으시죠.

예 사랑합니다.’

한 번두 번세 번을 물으십니다.

세 번 배반한 베드로 사도의 입을 통해서

다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음으로써

그 상처를 치유해주신 거죠.

그러면서 교회를 책임지라 하며

일대 교황으로 임명하신 거죠.

유다스는 딱 한 번 배반했지만,

후회했기 때문에 자기 멸망으로 빠지고,

죽어서도 하느님을 못 만났어요.

베드로 사도는 세 번 배반했지만,

철저하게 예수성심성모 성심,

성령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통곡하며 회개했기에,

으뜸 사도가 될 수 있었고

지금도 존경을 받는 것이죠.

오늘 이 강론을 듣는 교우분들,

올해 판공성사만큼은 후회하고

나오지 마시고정말 회개하세요.

적어도 일주일 정도 틈날 때마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어떤 죄가 생각나면

휴대폰에라도 표시해놓았다가,

나중에 성사 보기 전날에

첫째둘째이렇게 죄를

꼭 집어서 사제에게 고백하세요.

그리고 고백할 때는 반드시

제가 이런 죄로 인하여

하느님의 성심을 거슬렀습니다.

’ ‘제가 이런 죄로 인해

저를 위해 전구 해 주시는

성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습니다.’

라는 아름다운 말을 하세요.

그런 고백을 듣는 사제는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런 고백을 들은 사제가

치유되는 거예요.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그리하여 요한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그래서 모든 사제 말씀의 첫 단추는

회개 말씀이 들어가야 하고,

격려와 위로의 말로 끝맺어야 합니다.

그래나 같은 죄인도 하느님이 사랑하신대,

다시 한번 일어나 열심히 해보자.’ 해야 합니다.

미사 후 파견 때 저는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기쁘게 삽시다.’ 합니다.

우리는 기쁘게 살기 위해,

기쁘게 사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미사에 온 것입니다.

매일 미사하고 성체를 영해도

기쁘게 살지 못한다면,

매일 미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향주삼덕의 두 번째 망덕의 핵심은

기다림이 아니라 기쁨이라 했습니다.

기쁨을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대림절이 기쁨이잖아요.

저는 교우들의 입에서 말씀과

말이 분명하게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말을 해야 할 때는 정확하게

의사표시를 해야 하고,

상황표시를 해야 하지만,

정말 말씀이 필요한 순간이면

속으로 화살기도 해야 합니다.

성령을 청하셔야지요.

제 안에 계시는 성령님,

당신 힘으로 지금부터는

말씀이 나오게 도와주십시오.’

생각하지도 못할 놀라운 언변을

주신다고 성경에 나오잖아요.

그렇기에 배추 장사 할머니가

대학교수를 입교시키는 겁니다.

말이 아니라 말씀을 했기 때문에!

여러분들 자식과 남편 가운데

냉담자 있을 거예요.

성당 안 가?’

이것은 말씀이 아니라 시비입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말씀은 언어도 있지만,

행동도 있어요.

저 사람이 요즘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

자기도 양심이 있는지라 이번에

성사 보겠다 하지요.

그때 막 눈물이 나오는 거죠.

내가 언어와 행동으로

성령이 함께하는 모습을 내 남편에게 보였더니,

내 며느리에게 보였더니사람이 바뀌네.

저절로 먼저 하느님 찾겠다고

두드리는 거예요.

이것이 말씀의 힘이에요.

겉으로 볼 때 말씀은

성령이 함께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행동은 개떡으로 산다면 그것은

말씀이 아니죠.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음 믿음이라 나옵니다.

이번 대림절은 판공힘쓸 판,

공로 공힘써 기도하는 시기,

힘써서 회개하는 시기.

온 힘을 다해 성찰하는 시기,

그래서 온 힘을 다해 고백소에서

겸손하게 삼위일체 하느님,

성모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을

뉘우치는 시기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가르쳐드린 대로

정말 아름답게 고백을 하세요.

제가 이런 죄로 인해 예수성심의

마음을 아프게 했나이다.’

남이 나로 인하여 지은 죄 있을 것이니,

신부는 도무지 이 죄인을 벌하고 사하소서,’

옛날 구교 신자들에게서는 들었던 말입니다.

남편이 나 때문에시누이가 나 때문에,

우리 신자가 나 때문에

지은 죄 있을 것이니이 죄인을 벌하소서,

이름도 못 쓰고 숫자도 못 세는

할아버지 할머니였지만,

귀동냥으로 교리를 배우셨죠.

그리고 고백소에 들어오시면

늘 후회가 아니라 회개하고 나가셨죠.

주일 몇 번 빠졌습니다.’

사제 혼자 있기도 좁은 고백소에

예수님이 서 계신 이유가 그게 아니잖아요

주일 몇 번 빠졌다는 이야기도 해야 하지만,

더 큰 것이 있잖아요.

네 마음 안에 있는 바윗덩어리

치워야 하지 않니?’

그 바위가 깔고 앉아 있으면,

용서도 안 되고희망도 안 생기도

용기도 안 난다고 했죠.

그 바윗덩어리 치우러 왔으면 치우고

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못 치우고 나갑니다.

그래서 성찰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고백할 때 마귀는 어떤 식으로든

유혹해도 넘어가지 마세요.

내 죄가 진홍색처럼 붉더라고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만

정직하고 겸손하게 고백하면

이 세상 용서 못 받는 것이 없어요.

거룩한 판공성사 보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2021년 대림 제2주일 (12/05)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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