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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6주일 예수,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12-25 조회수600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마리아. 요셉 성가정 축일은 나자렛의 성가정을 기억하며 이를 본받고자 하는 축일이다. 1921년 이 축일이 처음 정해질 때에는 주님 공헌 대축일다음 첫 주일이었으나, 1969년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성탄 팔일 축제내 주일(주일이 없으면 1230)로 옮겼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부터 해마다 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축일부터 한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가정 공동체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가운데 사랑이 넘치는 보금자리로 가꾸어 나가게 하려는 것이다.

 

 

1독서<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아버지를 공경한다.>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3,2-6.12-14

2 주님께서 자녀들을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게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3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4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5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6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12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13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13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집회서의 저자는,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고,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은 것과 같다고 한다.

 

 

 

2독서<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생활>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3,12-21

 

형제 여러분,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17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18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19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20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21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2

골로사이서 수신인들의 정체가 밝혀진다.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아 세례를 통해 새로 태어나서 거룩하게 되었고 사랑받는 이들이다. 이 표현 속에 믿는 이들은 세례로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존재론적 측면에서 그리스도인임과 동시에 아직 완성을 향해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실존적 측면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어감의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있다. 따라서 거룩한 이들안에는 교회론적 사고가 함축되어 있으며 그 이면에는 유다교 선택사상이 스며들어 있다(신명 7.6; 요한 1.16 참조).

 

“인자비로운 동정심, 친절, 겸손, 온유, 인내”: 일종의 덕행목록이다. 이웃과 더불어 평화를 이루는 삶을 위한 덕행들이다(갈라 5,22-23 참조).

 

입으십시오”; 10절의 “... 입으십시오를 연상시킨다.

 

13

용서하십시오”: 2.13용서하셨습니다를 연상시킨다.

왜 용서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제시다. 마태 6.12보다도 더욱 근본적으로 개개인의 행위와 용서보다 오히려 구원사건을 강조한다(2,13-15 참조).

 

14

완덕은 직역은 완전함”.

 

사랑을 완전성에 도달하는 덕목으로 꼽는다. 사람은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완덕으로 나아간다.

 

15

이어지는 권고는 3인칭 명령형이며 15절과 16ㄱ절이 병행을 이룬다. 여기 2그리스도의의 주체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평화와 말씀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온다.

 

브랴뷰오(“다스리다. 지배하다”)동사는 신약성서에서 이곳에만 한 번 나온다. 본디 경기 때 심판을 보다. 기본 계획이나 방향을 제시하다. 결정하다. 이끌다라는 뜻이다.여기서 평화는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표명하는 근본 개념이며 그 표제로 이해된다.

 

교회론적 표현이다. , 개별적인 수덕의 길을 제시하지 않고 한 몸인 그리스도의 몸과 일치하기를 강조한다. 저자는 한 몸이란 표현을 통해 앞서 12-14절에서 제시한 근본적인 덕행의 길을 걷도록 종용한다.

 

짧은 코로새서에서 네 차례나 감사하라고 말한다. 이같이 감사에 큰 의미를 두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 의무는 구원사건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비롯된다. 세례받은 이가 자신이 받은 은총에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16

이 구절은 분사구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같은 사례는 콜로새서에서 자주 발견된다.

 

그리스도의 말씀”: 신약성서 전체에서 이곳에만 발견되는 표현이다. 1-5에 나오는 진리의 말씀, 복음이 그 의미 파악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면에는 전례 거행이 자리잡고 있다 하겠다. 16절 전체의 표현을 보면 공동체의 전례 거행을 연상하게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말씀은 전례적으로 선포된 말씀으로 이해된다.

 

동사 머물다는 신약성서에서 모두 여섯 번. 콜로새서에서는 단 한 번 이 구절이 나온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믿는 이들 안에 다양한 형태로 또 지속적으로 현존하도록 힘쓰기를 촉구한다.

 

여기서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지혜. 곧 그리스도 사건안에서 선사되는 지혜다.

 

서로는 공동체 구성원끼리 믿음을 더욱 심화시키는 상호관계를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선포한 복음을 이제 독자들로 하여금 서로 가르치고 서로 충고하기를 권한다(1,23.28 참조).

 

마음을 다해”: 직역하면 마음들로”, “마음들 안에서”,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그분 안에 뿌리박은 마음이며 그분의 영인 성령으부터 인도되는 마음이다(3.15 참조).

 

찬미의 목표와 대상은 하느님이다.

 

17

17절은 전례문인데, 골자는 후반부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이들의 모든 행위를 결정짓는 근본 잣대다(3.11 참조).

 

아버지로서의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근거는 그리스도 자신 내지 그리스도 사건이다. 1,12-14에서 저자는 신앙인과 그리스도에 대해 하느님이 왜 또 어떻게 아버지가 되시는지 그 상관관계를 밝혔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질서

사회생활 질서 목록이다. 특히 한 가정 안에서 각자가 지켜야 할 질서를 제시한다. 이같은 사고방식은 본디 엄격한 금욕주의에 바탕을 둔 스토아 철학에 뿌리가 있다. 그 배경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론에서는 주인과 종, 신랑과 신부, 아버지와 자녀등 여섯 계층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날 많은 학자는 이 단락을 일종의 격언으로서 사회학적 차원에서 가정의 일치를 도모하고자 하는 내용으로 본다.

 

18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명백한 가르침이다. 이같이 아내에게는 강하던 표현이 남편에게는 약화하여 아내를 사랑하라로 바뀐다. 그러나 종속시키다의 중간태로 사용된 순종하다가 신약성서에서 단순히 누구를 종속시키다는 뜻 외에 질서유지를 위해 서로 병렬시키다. 서로 종속되다는 의미로도 사용됨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주님 안에서 마땅히 그래야 하듯이를 감안할 때, 강제로 누구를 굴복시킨다기보다는 서로 종속되다는 뜻일 것이다.

 

19

남편에 대한 지침은 아무런 부연설명이나 조건 없이 내려진다. 아내를 사랑하고 모질게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20

20절은 자녀가 부모에게 마땅히 드려야 할 공경의 의무를, 21절은 아버지가 자녀에게 배려해야 할 바를 제시한다. 그 모두가 주님께 맞갖은 일이기 때문이다.

가정질서의 의무가 그리스도중심 사상 안에 묘사된다.

 

 

 

 

 

복음<부모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있는 예수님을 찾아냈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52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52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소년 예수 성전에 가다

신약성서 가운데 오직 루카 2,41-52에만 예수 소년기가 있다. 짐작건대 루카는 이 이야기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채집하여 수록했을 것이다. 소년기에서는 예수 소년이 뛰어나게 총명했다고 하고 또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 한다. 루카복음에서는 종종 공적 예수님을 지혜의 소유자 또한 하느님의 아들이라 하는데 소년기에서는 지혜의 소유자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공적 모습을 그분의 소년시절로 소급, 투사했다. 무릇 위인들의 전기가 자서전을 보면 으레 그들을 신동으로 표사하는 법이다. 예로 66~701차 유다독립전쟁때 독립군 사령관으로 행세하다가 전세가 불리해지자 로마군에게 투항한 요세푸스는 말하기를 자기는 이미 14세 때 학식이 뛰어나 제관장들과 유지들이 자기에게 자문을 구하러 계속 찾아왔었다고 한다.

 

41

남자 아니 열세 살이 되면 해방절,오순절,초막절, 이렇게 세 차례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 갔다. 해방절은 유다교 월력으로 니산 달 15. 그러나 예수시대에는 해방절과 무교절이 겹쳤기 때문에 순례자들은 한 주간 동안 예루살렘에서 지냈다.

 

42

아마도 열두 살 난 예수님은 아직 순례 의무가 없었으나 그래도 부를 따라가신 것은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애착을 드러낸다 하겠다.

 

46

선생들은 율사들.

 

47

40.52 참조.

 

49

신약성서에 수록된 예수님의 맨 첫 번 말씀이다. 여기서는 예수님이 벌써 소년시절에 하느님의 아들로 자처하신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공적으로 활약하면서 하느님의 아들로 자처하셨고, 부활하신 다음에는 초대교회가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로 받들었다.

 

원문에서는 제 아버지의 것들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제 아버지의 집이라고 옮겼다. “제 아버지의 일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51

39절 반복.

나자렛으로 돌아가서19: 1.29반복.

 

52

40절 반복.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요셉 성인은 정말 대단한 분이십니다. 결혼도 하기전에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였는데도 결혼하여 가정을 꾸미고 결혼해서는 부부의 의무인 성생활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시라고 우리는 믿으므로 충분히 예측하고도 남습니다. 오늘날에는 부부가 결혼하여 살면서 성생활을 하지 않거나 못하면 이혼사유가 됩니다, 그런데 요셉성인은 이 모든 것을 이겨내면서도 가정을 이끌었습니다.  당연히 성가정이지요.  하느님을 모시며 예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성가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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