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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12.2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12-27 조회수858 추천수8 반대(0) 신고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베드로와 요한)

2021년 12월 27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복음 요한 20,2-8

주간 첫날마리아 막달레나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칼 한 자루를 구입했습니다.

택배를 통해 받은 칼을 보다가

잘 드는지 궁금해서 손을 만졌다가

손을 베고 말았습니다.

칼이 잘 드는지 몸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동시에 부끄러워서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칼질하다 손을 벤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모습을 보인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뜨거운 국물을

허겁지겁 마시다가 입천장이 다 까진 것,

책 읽다가 종이에 손을 벤 것

손톱 정리하다가 깊게 들어가

속살까지 잘라낸 것급하게 움직이다가

넘어진 것 등등어리석은 모습이

내 안에 끝없이 나왔습니다.

제가 잘못해서 얻은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을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말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가 많았습니다하지만 남이

내게 이런 상처를 주면 어떨까요?

그럴 수 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자신에게 너그럽고 남에게 인색한

모습입니다그런데 어떤 사람이든

다 똑같습니다내게 너그러울 수 있다면,

남에게도 너그러워야 합니다.

이런 일관된 모습만이 주님의 뜻을

제대로 따를 수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빈 무덤을 발견하고

11명의 제자를 대표하는 베드로와

신자들을 대표하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알립니다이 둘은

이 말을 듣고 무덤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런데 요한이 훨씬 젊었는지 아니면

뜀박질을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무덤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이상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무덤에 도착했지만,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만 했을 뿐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왜 그랬을까요?

무서워서 그랬을까요?

그보다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제자들을 대표하는

베드로에게 맡긴 것입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제자라고

자신이 먼저 보고 판단하고 결론을

낼 수도 있었지만 모든 판단을 베드로에게

맡기는 겸손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했던 모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이 겸손이 아닐까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고,

자신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절대 하지 않는 겸손의 모습이

그가 사랑받았던 이유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겸손의 모습으로 왔기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역시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반대의 모습을 산다면 분명히

어리석은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모두에게

너그러운 삶을 살아야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계획한 사업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신념은 단 하나, '지금 그것을 하라!'

이것뿐이다(윌리엄 제임스)

행복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집니다.

장래 희망이 뭐야?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문득 나의 장래 희망은 무엇이었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담임선생님이 명연이는 과학을

잘하니까 꼭 과학자가 될거야.”라고

말씀하셔서 한동안 과학자를

꿈꿨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신 아버지를 보면서

나 역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그리고 운동을 좋아해서

운동선수의 꿈을 키운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긴 시간을

차지했던 저의 꿈은 사제였습니다.

어렸을 때 주로 놀았던 공간이

성당이어서 그런지신부님은

늘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런 신부님이 되면

진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룬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궤도 안에

대부분 맴돌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룬

저는 행복한 사람일까요?

꿈을 이룬 그 자체가 행복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그보다 지금

이 순간의 만족이 행복을 가져다주고,

지금 꿈꾸고 있는 또 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 행복한 것이었습니다.

성취 자체는 순간의 행복만을

가져다줄 뿐이었습니다.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는 사람이

행복에 더 가까이에 있습니다.

(성 요한 복음사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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