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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공현 대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01 조회수1,564 추천수10 반대(0)

1985년 신학교 4학년 때입니다. 군에 가기 위해서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 의무관은 현역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저는 30개월 군 복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방위, 면제판정도 있었습니다. 방위는 18개월 집에서 출퇴근 하는 군 복무였습니다. 면제는 말 그대로 군 복무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신체검사를 마치고 친구들끼리. ‘면제는 신의 아들, 방위는 사람의 아들, 현역은 어둠의 자식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신체는 건강하지만 국가 유공자의 자녀이기에 현역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독자도 현역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에도 현역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국가에서 정한 기준에 대해서 의심해 본적도 없고, 국가에서 정한 기준은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선발에도 성적을 중심으로 학생을 뽑지만 농어촌 전형, 지역 전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적만으로 뽑을 경우에는 지역과 농어촌에 사는 학생들이 불리하기 때문에 정한 기준입니다. 미국에서도 대학생을 뽑을 때 이민자들에 대한 배려가 있다고 합니다. 이민자들이 미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라고 합니다.

 

오늘 문득 공정과 정의라는 말을 생각해봅니다. 진화론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적자생존, 약육강식, 자연도태라는 말을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이익이라는 절대적인 가치와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정의는 실력, 능력, 업적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대학의 선발 기준, 직장의 선발 기준도 철저하게 실력과 능력을 중심으로 정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야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능력과 실력, 업적에서 뒤떨어지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사회에는 또 다른 기준이 있습니다. ‘공정이라는 가치입니다. 노약자와 어린이를 우선 보호하는 제도입니다. 능력과 업적이라는 기준에서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소득이 없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고, 생활비를 지원합니다. 이것도 능력과 업적이라는 기준에서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성직자이기에 병원비 일부를 탕감 받은 적이 있습니다. 성직자들을 위한 자선기금이 있다고 합니다. 정의로운 사회가 분명 바람직합니다. 모두가 같은 선상에 있다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반칙과 불법이 통용되지 않기에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두가 같은 출발점에 있지 못합니다. ‘금수저와 흙수저가 있습니다. 타고난 신체의 능력이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타고난 정신의 능력이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정의보다는 공정이라는 가치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주님공현 대축일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 드린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하느님의 아들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만민에게 하느님의 아들로 드러나셨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한 번 공적으로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입니다. 그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왔고,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께서 공적으로 드러난 것은 주님의 성탄, 동방박사의 경배, 세례 때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정의는 창과 칼, 권위와 권력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공정을 세우기 위해서 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오늘 성서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화답송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그리고 오늘 제2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빛은 정의롭게 비추지 않습니다. 빛은 공정하게 모든 곳을 비추기 마련입니다. 주님의 영광도 정의롭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모든 곳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습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성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 때문에 더 기뻐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셨고,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셨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위선과 교만을 질책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갈릴래아의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신 것은 공정을 위해서 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에페소인들에게 보내 편지에서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혈연이나, 능력, 학벌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삶으로 증거하고, 신앙의 빛으로 비추어야 참된 상속자가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당과 교회는 성탄을 맞으면서 트리를 만들고 그 위에 예쁜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도시의 밤에 많은 십자가가 붉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불을 밝히고, 트리의 전구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로 우리들의 신앙의 불을 밝히는 것, 희망의 빛을 비추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주님을 드러내는 주님께 경배하는 참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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