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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02 조회수624 추천수3 반대(0) 신고

1독서<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22-4.6

사랑하는 여러분,

22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4,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2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의 영입니다. 그 영이 오리라고 여러분이 전에 들었는데, 이제 이미 세상에 와 있습니다.

4 자녀 여러분, 여러분은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거짓 예언자들을 이미 이겼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분께서 세상에 있는 그자보다 더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5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6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을 알고 또 사람을 속이는 영을 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영의 식별에 대하여

2,18-29에서처럼 4,1-6에서도 이단자(“거짓 예언자”)의 정체와 참 그리스도인의 정체를 밝힌다. 여기 이단자들을 예수 가현설 영지주의자로 본다면 다음과 같은 해설이 가능하다: 이단자들은 악령의 사주를 받아, 예수께서 진짜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고 단지 사랑인 양 환각 작용을 불러일으켰을 뿐이라는, 예수 가현설을 퍼뜨렸다. 이에반해 참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의 아들이 참으로 사람이 되셨다는 예수 강생 신앙을 견지했다. 이단들의 예수 가현설을 규탄하고 예수 강생 신앙을 천명하는 말씀이 2요한 7절에도 나온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론 이단사상을 규탄하는 1요한 2.22; 4.15; 5.1.5를 눈여겨보면, 특히 1요한 5.6을 음미해 보면 요한서간집에 나오는 이단자들은 초월적 그리스도(하느님의 아들)와 역사상 예수를 전혀 별개의 존재로 본 것 같다. 그렇다면 이들은 체린투스마냥 양자를 분리시킨 분리 그리스도론 영지주의자들이다.

 

바오로도 성령의 작용인지 악령의 작용인지 식별하는데 그리스도론적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아무도 하느님의 영 안에서 말하면서 예수는 저주받으라고 할 수 없으며 또 성령 안에서 아니면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무나 와서 일찍이 우리가 선포한 적이 없는 다른 영을 여러분이 받아들이거나 혹은 여러분이 일찍이 받아들인적이 없는 다른 복음을 여러분이 받아들이거나 할 때 여러분은 잘도 참습니다”(2고린 11.4).

 

3

반그리스도는 본디 종말에 하느님의 적수로 와서 설칠 흉물을 가리켰다. 요한서간집에서는 이단자들을 흉물로 또는 흉물의 화신으로 보았다.

 

4

그들거짓 예언자들”, 곧 이단자들이다.

 

 

 

 

 

 

복음<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2-17.23-25

그때에

12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13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14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5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이민족들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7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4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25 그러자 갈릴래아, 데카폴리스, 예루살렘, 유다, 그리고 요르단 건녀편에서 온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갈릴래아 전도 시작

마태오는 주로 마르 1,14-15를 참고하여 4,12-17을 엮었다. 그 기회에 가파르나움 정착 기사를 참작하여 나자렛을 버리고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에 있는 호숫가 가파르나움으로 가서 사셨다”(4.13)는 구절을 만들어 덧붙였다. 또한 이사야의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에 있는 호숫가 가파르나움에 정착하셨다고 풀이했다. 4,12-17의 구조는 요셉이 유다에 정착하기 두려워 갈릴래아로 가서 나자렛에 정착함으로써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의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2,22-23).

 

12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는, 요한이 인기를 이용하여 정치적 흑심을 품을세라 체포하여 사해 동쪽 천연요세 마캐루스에 가두었다가 참수형에 처했다. 요한이 체포된 것을 넘겨졌다고 하는데, 예수님이 체포되신 것도 넘겨졌다고 한다. 두 분의 가르침과 삶은 매우 닮아서 마치 운명공동체 같다. 요한이 활동을 마친 다음에 예수께서 활약하시기 시작한다. 요한은 주로 유다지방 요르단 강 유역에서 활동했고,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지방 호수 북편에서 활약하셨다.

 

13

바티칸 사본, 시나이 사본 수정문에서는 나자렛 대신 나자라라 한다. 13절에서는 가파르나움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밝히기보다 15-16절 이사야 인용문의 영향을 받아 다소 부정확하게 서술한다. 실상 가파르나움은 납달리 지파의 땅에 속한 포구였을 뿐, 즈불룬 지파의 땅과는 관련이 없었다. 가파르나움은 북부 요르단 강이 갈릴래아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입구에서 서쪽으로 10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어촌이었다. 거기에는 세관도 있었고 헤로데 안티파스 영주의 소부대도 주둔해 있었다. 그리고 거기 수제자 시몬 베드로의 집이 있어 예수께서 가파르나움에서 활약하시는 동안에는 그 집에 묵으셨으리라 여겨진다. 예수께서는 가파르나움 전도에 주력하셨지만 성과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 불행을 예고하셨다.

 

14

마태오는 이사 8.23-9.1을 많이 고쳐 예수 사건에 적용했다. 아시리아 왕 다글랏빌레셀이 북부왕국 이스라엘을 장악하고 백성을 아시리아로 끌고갔다. 그가 갈릴래아에 이스라엘 백성 대신 많은 이방인을 이주시켜 이방인들의 갈릴래아가 되었다(2열왕 15.29). 그러나 이사야는 장차 다윗의 후예 가운데서 왕자가 태어나 갈릴래아를 해방시키리라고 예언했다. 위의 사건과 예언을 마태오는 예수 출현에다 적용했다.

 

15

여기 요르단강 건너편은 요르단 강 서편을 가리킬 것이다. , 납달리 지파의 땅, 나아가서는 갈릴래아 지방을 가르키겠다. 예수께서 이방인들의 갈릴래아에 나타나신 것은 장차 이방인들에게 베푸실 구원 혜택을 예고한다.

 

16

예수는 큰 빛.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와, 죽음의 어둠과 그늘 밑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나타나시리로다”(루카1.78-79).

 

17

하늘나라와 사람들의 회개는 예수님의 선포와 설교의 가장 핵심적 주제다. 마태오는 서른세 번에 걸쳐 하늘나라라는 표현을 썼고 네 번에 걸쳐 하느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썼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두려워한 나머지 하느님의 나라나 그 뜻은 같다. 그럼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을 뜻할까?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 하느님 친히 임금님으로서 다스리심을 뜻한다.(이사 52.7). 압축해서 하느님의 종말 통치 또는 하느님의 종말 왕정. 줄여서 종말 신정. 더 줄여서 신정이라 하겠다.

 

예수께서는 주로 비유로써 하느님의 나라를 암시하셨고, 주로 기적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구원능력을 보여주셨다. 이처럼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미 시작되었고 장차 종말에 이르러 완성될 것이다. 임박한 신정에 대비하는 길은 회개뿐이다. 하느님을 등진 인간이 하느님께로 되돌아서는 것이 회개의 참뜻이다.

 

전도여행

마태오는 마르 1,32-34; 3,7-12에 있는 두 집약문을 참작하여 자기 나름대로 독창적 집약문을 만들었다. 예수님의 활약상을 집약하여 가르침. 선포. 치유라 한다. 가르침과 선포는 합쳐서 말씀인데 그 정수를 산상설교에서 대할 것이요, 치유의 구체적 사례들은 기적 집성문에서 볼 것이다.

이 집약문은 산상설교의 상황묘사이기도 한데, 별의별 병자들이 모두오고(24), 나아가 각지의 이스라엘 백성이 총동원되어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들었다는 인상을 준다(25). 25절의 지명을 유심히 살펴보면 갈릴래아와 데카폴리스, 유다와 요르단 강 건너편(요르단 강 동부)이 각기 짝을 이루고 그 중간에 예루살렘이 나온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사람을 사귈때는 '예수님께서도 사람이셨으니 사람을 보고 사귀어야지, 다른 것을 보고 사귄다면 그와 무엇을 두고 서로 다투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사람도 같은 가톨릭을 믿고 있는 형제자매였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종교가 달라도 하느님께서는 모든이의 하느님이시므로 처음부터 금을 그어놓고 사귄다면 진짜인 예수님을 배제하고 사귀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한다면 종교간의 대화도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같은 종교를 믿는다고 같이 생활을 하여왔는데 영지주의를 믿는 이들속으로 빠질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종교속에 숨어있는 잘못된 가르침에 빠질 염려가 다분히 있겠지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숨을 거두셨으니 하느님이 돌아가셨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분명히 삼위일체이신 같은 분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엄연한 위격이 있습니다. 성부수난설이니 영지주의니 이런 사상들은 단죄를 받은 것들입니다. 주의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시니 신성만이 아니라,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으니 사람이면 그 존재자체로서 당연히 있는 인성또한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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