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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씀 묵상의 깊이는 무엇이 좌우하는가?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03 조회수731 추천수3 반대(0) 신고

 

 

수녀님이 미션을 하나 주셨습니다. 미션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 레오 교황님과 같은 분의 말씀과 강론이 천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 심금과 울림을 왜 주는지 형제님 한번 고민해보고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주세요?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한참 고민을 하고 나름 정리를 했습니다.

 

다음은 메일 전문입니다.

 

찬미예수님, 000 수녀님. 메일 잘 받았습니다. 그리고 또 미션을 하나 주셨는데 어려운 미션 같습니다. 부족한 생각이지만 고민을 해 정리를 해봤습니다. 먼저 수녀님의 미션을 수행하기에 앞서서 묵상을 먼저 언급하고자 합니다. 저도 부족하긴 하지만 묵상이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복음묵상입니다. 사실 묵상은 정말 힘든 영역입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복음묵상이든지 말씀 묵상이든지 그건 단순히 성경을 읽고 이해를 한다고 해서 잘 되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지금까지 많이 해왔습니다.

 

묵상이라는 것은 깊이 생각하고 되새기고 음미하는 깊이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써 지식이 있으면 한결 수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깊은 우물속 물을 길어올리려면 두레박에 달린 줄이 길어야 하는 것과 비슷하리라고 봅니다. 이 줄이 길지 않으면 얕은 우물물밖에 길어올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럼 저는 성경을 우물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줄은 하나의 도구나 연장과도 같습니다. 두레박이 있어도 줄이 없다면 그냥 손으로, 두레박을 이용해 물만 먹을 수 있는 그런 우물물만 마실 수 있을 겁니다.

 

깊은 우물물을 마시려면 긴 줄이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바로 이 줄이 연장과도 같습니다. 이 연장은 바로 성경의 단편적인 지식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지식만을 의미하지도 않을 겁니다. 묵상은 단순한 국과 같은 게 아니고 곰탕 국물과 같을 것입니다. 곰탕은 우리면 우릴수록 그 맛이 진할 것입니다. 바로 진국이 나올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즘은 곰탕을 잘 먹지 못합니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곰국을 많이 먹었습니다. 아무리 고소한 곰국이라도 어떤 음식이든지 마찬가지이겠지만 계속 자주 먹게 되면 그 음식에 물리게 되어 있습니다. 보통 보면 그렇습니다. 근데 참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곰국의 재료 자체가 바뀌면 그 곰국에서는 맛은 동일하지만 물리는 맛이 아닙니다. 제가 봤을 땐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할 것 같습니다. 마치 수녀님의 질문에 대한 저의 답변은 이 속에 다 함축돼 있습니다. 진하게 우려낸 곰탕도 맛은 진국입니다.

 

그 진국도 계속 동일한 맛을 내면 그게 나중에는 신선한 맛이 없고 질리게 되는 음식 맛처럼 묵상도 그럴 것입니다. 바로 이 신선한 맛의 깊이를 좌우하는 게 마치 우물의 물을 길어올릴 때 사용하는 줄이 길어야 깊은 우물물을 마실 수 있는 것과 똑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인간은 생각을 언어로 하게 됩니다. 생각은 모양이나 형체가 없기 때문에 어딘가에 물이 그릇에 담겨야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처럼, 그릇에 담겨야 하는 것처럼 담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언어라는 재료입니다. 이런 언어의 재료가 풍부하지 않으면 늘 틀에박힌 사고에 묶여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늘상 반복되게 될 것입니다.

 

음식의 풍부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식재료가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멋진 맛을 낼 수 있듯이 말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셰프라고 하더라도 식재료가 없는 상태에서는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저그런 맛만 낼 것입니다. 바로 그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낚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낚시줄이 길지 않으면 깊은 바다속에 있는 고기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도 레오 교황님의 사순강의집을 보긴 했지만 감탄의 감탄을 하고 감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당시에는 제가 잘은 모르지만 요즘처럼 신학이 발달하지 않았을 텐데 또 신학적인 학문의 자료도 빈약했을 텐데도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하고 놀랄 따름입니다. 저는 멀리 천년 이상의 세월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현 교황님을 비롯해서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저서나 강론을 보게 되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확실히 교황님은 그냥 교황님이 아니시라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베네딕토 교황님은 벌써 21세기가 낳은 신학자라는 칭송을 얻을 만큼 뛰어난 신학자이시기도 합니다. 그게 단순히 학문적인 지식만이 좌우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 외에 신학을 연구하면서 또 그만큼 고뇌하고 끊임없이 하느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시려고 하는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그분들의 생각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천년 이상의 세월에도 그분들의 말씀이 지금도 생동감 있게 전해지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우물에 있는 긴 줄만의 역할만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언급했듯이 그냥 단순히 그렇기만 한다면 그 맛에 질릴 법도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은 바로 말씀에서 깊이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재탕 삼탕 해서 나오는 그런 음식은 식상한 맛밖에 나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신선한 맛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진국이라도 단일한 식재료에서 나오는 맛과 풍부한 식재료에서 나오는 맛이 차이가 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그분들의 말씀은 천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녀님.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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