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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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04 조회수1,356 추천수13 반대(0)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읽었습니다. 책의 내용 중에 안톤 채호프의 어느 관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관리가 오페라를 관람하면서 심한 재채기가 생겼고, 참으려다 그만 앞에 있는 분의 머리에 침이 튀었습니다. 앞에 있는 분은 모시는 장관님이었습니다. 장관님에게 재치기가 심해서 그만 침이 튀었다고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잘 못들은 것 같아서 한 번 더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장관님은 알았네, 괜찮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죄송한 나머지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장관님은 알았다니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오페라를 감상할 여유도 없었고, 다음날 일찍 장관님께 가서 어제는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습니다. 그러자 장관님은 웃으면서 다 잊어버렸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소심한 관리는 걱정과 한숨을 쉬면서 하루를 보냈고, 다음 날 아침에 그만 죽었습니다. 티베트의 속담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처는 물론 아픕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상처가 덧나는 것은 상처에 손을 대기 때문입니다. 모기에 물리면 가렵습니다. 그러나 가렵다고 계속 긁으면 모기 물린 자리에서 피가 나기 마련입니다. 구덩이에 빠지면 더 깊이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구덩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걱정과 두려움은 구덩이를 더 깊이 파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호수 위를 걸을 때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만 두려움에 빠졌고, 물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두려워하느냐?” 그리고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재우시고, 호수 위를 거르시는 분이심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걱정과 근심이 앞선 사람은 컵에 남은 반잔의 물을 보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네.’ 그러나 희망과 용기를 가진 사람은 컵에 남은 반잔의 물을 보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직 반이나 남았네.’ 컵에 남은 물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나의 생각에 따라서 그 물은 걱정덩어리가 되기도 하고, 갈증을 풀어주는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꽃이 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본향으로 가는 존재임을 자각한다면 이 세상에서의 두려움과 걱정은 나를 영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진화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우리의 몸은 두려움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연약한 인간을 압도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자연재해, 사나운 동물, 독이 있는 벌레, 먹으면 죽을 수 있는 식물, 추위, 배고픔, , 폭력, 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이겨내고, 피하기 위해서 인간은 두려움을 기억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두려움은 인간의 지혜와 협력으로 하나둘씩 해결되어 왔습니다. 지금, 진화의 피라미드에서 인간은 다른 모든 생물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차원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걱정, 근심, 불안, 초초와 같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未得先愁失(미득선수실) 當歡己作悲(당환기작비)’ 근심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기쁜 마음이 벌써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현대물리학인 양자역학은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몸을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이것은 뉴턴의 물리학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마치 빛이 상황에 따라서 파동과 입자로 변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내가 걱정, 근심, 두려움, 초조와 불안으로 가득차면 내 몸도 그렇게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좋은 체격을 가졌어도, 많은 배움이 있어도 그것들은 무기력하게 되고 맙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 희망, 믿음, 온유함과 친절로 가득차면 나의 몸 또한 그렇게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비록 건강하지 못해도, 많은 배움이 없어도 얼마든지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물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빵공장을 세우고, 수상 스키를 타라는 뜻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들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는 뜻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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