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05 조회수790 추천수2 반대(0) 신고

 

누군가는 말을 합니다. 하느님을 체험했다고 말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을 보았다고 하는 말과 같을 것 같습니까? 그건 아닐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제1독서에도 나오고 탈출기에도 나옵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된다고 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때 하느님은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이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하느님 체험은 마음만 먹으면 아주 간단할 수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근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해보면 복음 말미에 제자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다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기적은 단순히 적은 식량으로 많은 사람을 먹이게 했다는 현상에 초점을 맞춘 기적이 아니고 하느님의 마음이 만들어낸 사랑의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같은 현상을 보고도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한 게 아니였습니다. 그저 요술과 같은 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다고 표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조용한 호수에 맞바람이 불어서 풍랑이 일었기 때문에 그들은 살기 위해서 노를 젓느라고 애를 썼습니다. 호수는 악을 상징한다는 것은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호수에 있는 배는 교회를 상징할 겁니다. 악의 한가운데 바로 세상 가운데 지금 위태로운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 있는 제자들이 노를 젓는 모습은 마치 그들의 생명도 생명이지만 그러지를 않으면 배가 전복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배가 전복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교회가 몰락하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원래 예수님의 처음 의도는 그냥 곁은 지나가려고만 하셨다고 복음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집중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셨던 예수님의 의도와는 달리 제자들이 있던 배에 나중에 승선하신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호수 위를 걸으시면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봤다면 아마 그냥 스쳐지나 가시면서 위험에 처한 제자들을 보살펴주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건 둘째치고 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배에 오르셨을 때 바람이 멎었다고 합니다. 바람은 풍랑입니다. 세상을 흔히들 바다에 비유합니다. 이 악한 세상 한가운데 속으로 들어오시니 그 세찬 풍랑도 잠잠해진 것입니다. 이 풍랑을 세속의 한 단면으로만 볼 게 아니고 우리의 마음에도 비추어 묵상하고 싶습니다. 우리 주위를 항상 하느님은 항상 스쳐지나시면서 저희를 보고 계실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시더라도 그런 하느님의 기운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그들이 애써 노를 저었기에 예수님은 그들 곁에 오신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를 젓는 게 단순한 생존을 하기 위한 힘겨운 싸움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건 달리 말하면 완전한 사랑은 아니지만 그것도 작은 사랑으로 저는 묵상하고 싶습니다. 바로 배는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건 악한 세상에서 좌초될지 모르는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신자들의 모습으로 묵상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렇게라도 노력하는 제자들의 모습에 오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했기에 그들 가운데로 예수님이 오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저는 오늘 복음을 이렇게 한번 묵상해봅니다. 아무리 기적을 체험하고 해도 자신의 마음이 그런 사랑의 기적을 사랑의 마음으로 보지 못하면 아무리 우리 주위에 하느님이 다가오셔도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걸 오늘 복음을 통해서 묵상해봅니다. 결국 하느님 체험도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또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완고한 마음에는 하느님의 위대한 사랑도 들어갈 공간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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