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예수님은 어떻게 강론을 하셨을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06 조회수635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 복음묵상 글을 쓰면서 이렇게 떨려 본 적이 없습니다. 상당히 조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벽에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우연히 어떤 질문을 카톡으로 받고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에서 오늘 복음에 대한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방대한 해석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놀라움을 넘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밤을 꼬빡 새고 잠시 아침에 눈을 붙이고 오늘 복음을 다시 묵상해봅니다.

 

한 부분만 묵상해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강론을 하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상상을 오늘 저는 묵상하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복음에서도 나오듯이 예수님의 강론은 아주 탁월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는 내용을 미루어 볼 때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강론을 언급하기 전에 우선 먼저 예수님께서 얼마나 말씀을 가까이 하셨는지를 알 수 있고 또 그런 생활을 습관화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의 두루마리를 보시고서 이사야 61장의 내용을 미리 찾으시려고 당신의 의중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그 구절을 찾으셨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물론 성경에는 찾으신 시간은 나오지는 않지만 최소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사야 예언서의 내용 정도는 어디에 있는지 평소에 알고 계시지 않으셨더라면 찾지 못하셨을 겁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전에 먼 친척 때문에 잠시 하나님의 교회에 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 교회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비록 사이비 종교이지만 하나 배울 점이 있다면 하나 있습니다. 성경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찾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을 교육하는 사람은 만약 어떤 사람이 세상적으로 궁금한 게 있거나 성경에 대해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모든 것을 성경으로 그 의문을 해소하게 하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시점에서 그당시를 생각해봐도 그점만큼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 해석이 맞는지 진위 여부는 둘째치고 일단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써는 성경에 나온 표현으로 답을 해 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짧은 시간 다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물론 짜맞추기식, 아전인수격으로 성경을 해석하지만 늘상 교육은 성경 교육밖에는 하지 않습니다. 그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도 본원에 가서 개신교에서도 유명한 성경 학자들을 초빙해서 계속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공부를 하긴 합니다. 왜냐하면 개신교 신자들과도 겨뤄서 그들과도 성경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그렇게 공부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단순히 암송하는 것도 암송이지만 실전에서 빨리 바로 즉석에서 찾아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성경 찾는 것도 훈련을 합니다. 아무리 사이비이지만 그런 노력 하나만큼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사이비 종교도 저렇게 말씀을 연구하려고 한다는 점을 말입니다. 물론 그들만의 논리로 말씀을 짜맞추는 게 큰 잘못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성경을 봉독하시면서 단 한 마디 말씀하셨습니다. 봉독하신 그 말씀이 오늘 듣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사실 여기서 '오늘'이라는 게 하루의 날을 언급하는 그 오늘이 아니라는 걸 성경을 전공한 신부님의 해설을 통해서 봤습니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하시는 전체 과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예수님의 가르침인 강론의 특징 하나를 살펴본다면 순전히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으로 강론을 대체하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오늘 복음 말미에 나오는 표현에서 그들이 말씀에 놀라워하였다는 것도 중의적 표현으로 해석하긴 하던데요 그건 저 같은 사람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 복음 묵상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묵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들 '말씀을 본다'고 하거나 '말씀을 읽는다'고 하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지만 사실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씀에 비추어보면 말씀은 글로 된 활자를 통해 시각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그 말씀은 눈으로는 보지만 눈으로가 아니고 귀로 들어야 그 말씀이 말씀으로서의 온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묵상해봅니다. '말씀은 보는 것이 아니고 듣는 것이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