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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라기(4) 우리가 하느님 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요 (1,6)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07 조회수74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2. 1. 7. (공동번역)

 

(4) 우리가 하느님 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요 (말라기1,6)

 

아들은 아비를 어렵게 알고 종은 주인을 어렵게 아는 법인데 나를 아비로 어렵게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나를 주인으로 어렵게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나 만군의 야훼가 너희 사제들에게 말 하였다너희 사제라는 것들은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있다.' 그랬더니너희는 뻔뻔스럽게도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 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요당치도 않습니다.'” (1,6)

 

하느님께서는 야곱을 사랑한다고 하셨다그 사랑은 곧 이스라엘 자기 백성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또한 그 사랑이 곧 우리를 사랑한다는 사랑인 것이다하느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깊이 사랑하는 애정을 지금까지 논리적으로 증거(證據하셨다.

그 사랑을 근거하여 이제는 자기 백성들의 잘못과 신앙적인 많은 불의(不義)들을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회개(悔改)할 것을 촉구하고 계신다.

 

2.타락한 제사장(祭司長)(6-14)

 

제사장들은 하느님의 성전의 모든 제사(祭祀업무뿐만 아니라 모든 영적인 신앙(信仰)문제를 총괄한 맡아 수고하는 거룩한 직분자들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종교 지도자들로써 하느님을 제일 가까이 모시고 섬기는 자로써 만인이 추앙하고 존경하는 대상들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이들에게 지대한 관심(觀心)과 애정(愛情)을 쏟으시고 지금까지 은혜(恩惠)와 축복(祝福그리고 큰 환대를 아끼지 않으셨다그런데 직분이 중()하고 귀()하면 귀할수록 사명과 책임도 큰 것이다.

 

당시 제사장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존귀(尊貴)한 위치에서 자신들이 영예와 존경을 한 몸에 받고 누렸지만 그들의 의무에 대한 봉사와 섬김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시켰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충성스러움이 그들에게 보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도리어 하느님 앞에서의 심각한 범죄(犯罪)와 타락(墮落)의 양상을 보인 것이다이에 대해 하느님의 사자 말라기 예언자는 그들의 온갖 타락의 죄악을 지적하면서 제사장의 본연의 위치에서 헌신과 충성을 다할 것을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1)제사장들이 하느님을 불경(不敬)하는 죄()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해 6절에서 나 만군의 야훼가 너희 사제들에게 말 하였다고 제사장들에게 말씀하셨다. “만군의 야훼는 하느님이 온 우주의 통치자로써 만국의 주제자 이심을 뜻하는 것이다.

말라기 예언자는 제사장들을 향할 때나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엄중히 경고하며 그들을 일깨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라기 예언자가 만군의 야훼” 이름으로 제사장들에게 말씀하심은 듣는 자들이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그의 말씀을 청종(聽從)하라는 것이다.

또한 낮아지며 겸손히 그 뜻을 받들어 살라는 것이다.

옛날에는 왕의 명령에는 사약(死藥)이라도 절하고 받아 마시며 죽었던 것이다.

  당시 하느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하실 말씀이 많았다그들에게 맡겨진 거룩한 제사업무가 변질이 되어 도리어 하느님을 모독(冒瀆)하는 엄청한 불의(不義)의 죄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이를 참아 볼 수가 없어 말라기 예언자를 보내어 말씀하신 것이다.

 

제사장을 어떻게 호칭하고 있는가?

 

 너희 사제라는 것들은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있다천벌받을 것들” 라고 하셨다하느님이 새로 지은 이름이다얼마나 수치스러운 이름인가이러한 이름이 지어진 것은 그들이 하느님을 바로 공경하지 못한 삶 때문이었다.

제사장들이 그 삶이 더러울 때 하느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욕하는 자들이 된 것이다.

여기 내 이름은 하느님 자신을 상징하는 것으로써 본서에 10번이나 언급되어 있다.

 

하느님이 공경(恭敬받아야 할 이유

일반적 상식과 도덕으로도 하느님을 마땅히 공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6절에서 아들은 아비를 어렵게 알고 종은 주인을 어렵게 아는 법인데 ” 이 일반적 상식에서 예언자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자녀와 종들은 부모와 상전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은 자연(본성)의 법칙이다이러므로 가정의 질서가 지속되는 것이다이것이 가장의 미덕이요 장점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버지와 같으신 분(출애4:22, 신명32:6)이시다또한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구속(救贖)하여 소유함으로 그들의 주()가 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자녀로써 공경하고종의 자세로 공경하는 지극함의 정성과 봉사가 있어야 했다.

⦾ 그런데 제사장들에게는 하느님께 대한 공경하는 이 기본정신이 되어 있지 아니하였다.

 

제사장들은 아비인 하느님을 공경함이 없었다.

6절 나를 아비로 어렵게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하셨다여기 어렵게 아는(공경)”는 원어로 까보드로써 영광을 의미한다오직 하느님에게만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진심의 생활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당시 제사장들은 하느님을 세상 아비만큼도 취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경하는 진실한 헌신과 봉사가 없었던 것이다.

 

제사장들은 주인이신 하느님을 두려워함으로 공경하지 않았다.

-6절에서  나를 주인으로 어렵게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 하였다. “어려워하다는 것은 노예적인 공포심이 아니고 도덕적인 공포 곧 하느님을 거스려 범한 죄 때문에 두려워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이 하느님을 섬기는 가까운 존전에서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 있었다는 것이다.

두려워한다는 말은 때로 존경한다는 뜻으로도 번역되는 말이다이러한 뜻으로 볼 때 제사장들은 하느님께 대한 존경과 존귀함을 돌리는 신앙의 삶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섬기는 제사행위가 형식이 되고 가짜가 되고 결국에는 하느님을 멸시하는 무시무시한 죄악을 양산하게 되었던 것이다.

 

⦾ 지혜자가 잠언4:23절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그것이 바로 복된 삶의 샘이다.”고 하였다당시 제사장들은 하느님을 공경하는 순수한 마음이 상실될 때에 그 생활이 하느님을 멸시하는 무서운 죄악속으로 빠져 들어간 것이다.

이에 대한 제사장들의 반응그 답변은 어떠한가?

 

2.타락한 제사장들의 답변(答辯)

 

1)첫번째 답변:

-6절 반절에서 “'우리가 하느님 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요당치도 않습니다.'” 하였다.

하느님을 자칭 공경한다는 거룩한 일을 하는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범죄하고 있으면서도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부패(腐敗)되고 마비(痲痹)된 심령(心靈)을 보여준다.

예언자의 책망하는 말씀에 이들은 위선과 완악함을 보이면서 자신의 삶에서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다고 변명(辨明)하고 발뺌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발뺌에서 우리가 알 것은 자신들이 저지른 불의한 행위를 반성하고 회개하고자 하는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예언자의 책망을 도리어 경멸히 여기고 비웃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들이 얼마나 완악하고 교만한가를 알게 하여 준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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