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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 주일 주님 세례 축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08 조회수665 추천수0 반대(0) 신고

주님 세례 축일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주님의 세례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드러낸 사건이다. 그러므로 주님 공현 대축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전례력으로는 이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가 끝나고, 다음 날부터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1독서<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2.1-4,6-7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이사야 예언자는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2독서<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0,34-38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36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37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34

입을 연다라는 표현은 장중한 선언에 앞서 나온다.

차별대우하다라는 표현은 레위 19.15에서 외모를 보고 또는 뇌물을 받고 한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더 좋아한다는 뜻을 지닌다.

 

35

영접받다는 칠십인역에서 하느님이 제물을 받아들이신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더 나아가 하느님이 반기시는 삶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충실한 행동과 의인들의 기도가 하느님께 영접받는다고 말하는 잠언 12.2215.8의 내용이 이 구절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로마 2.10-11에 보면 의로운 행동의 개념이 하느님의 공평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베드로는 말을 통해 루카는 그리스도교의 구원 앞에서 인종적 장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36

이 구절의 그리스어 본문은 문법적으로 난해하여 여러 가지 번역과 해석이 가능하다. 여러 논증을 바탕으로 필자는 관계대명사가 없는 본문을 원저자의 본문으로 받아들인다.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은 하느님이 어느 민족도 차별대우하시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하느님은 이 말씀을 보내실 때 그리스도를 통해 평화의 복음을 함께 전하셨다. 이 평화의 복음이란 구원의 메시지인데 37절 이하에 소개되는 예수의 행적과 직결된다. 이 예수가 만민의 주님이시라고 선포함으로써 루카는 구원의 보편성을 천명한다.

 

37

고르넬리오와 그의 집안사람들이 예수사건을 잘 알지 못할 터인데 베드로는 그런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말은 문학기법의 한 표현이다. 우리말에서 아시다시피의 뜻을 지닌다. 이 말이 나오는 2,22에서도 여기서처럼 지상 예수의 구원행위가 언급된다. 이와 비슷한 표현.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같이는 사도행전에만 나온다. 이 두 표현은 청중의 부족한 지식을 좀더 완전하고 자세한 정보로 보완해주거나 청중으로 하여금 중요한 사건을 상기하게 하려는 인사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사용된다.

 

38

루카는 예수사건이 요한의 세례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사건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다 전체를 거쳐 예루살렘에서 끝나게 된다.

하느님이 예수를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으셨다는 표현은 루카 4.18을 반영한다. 공생활 시작과 더불어 소개된 예수의 나자렛 첫 설교는 이사 53,661.1을 바탕으로 예수의 선교활동 전체를 조명하는 청사진을 제시한다. 성령과 능력의 연결에 대해 루카 1,17: 4,14: 24.49; 사도 1.8 참조. 복음에서 예수의 능력은 치유행위에서 드러난다.

 

선을 베푸는이라는 표현은 루카가 헬라 통치자들을 가리키는 칭호, “은혜를 베푸는 자에서 영감을 받아 사용한 것 같다.

 

하느님의 인도와 보호를 가리키는 칠십인역의 표현. 이 표현은 소위 양자 그리스도론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루카가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 부여하는 일반적 인물묘사에 해당한다. 양자 그리스도론이란 하느님이 인간 예수를 당신의 양아들로 채택하셨다는 학설이다. 하느님이 예수와 함께 계시다는 생각은 2,22에도 반영된다.

 

 

 

 

 

 

복음<예수님께서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렸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5-16,21-22

그때에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21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상으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15

1세기에는 요한 세례자를 메시아로 받드는 요한교도가 있었다. 여기서 루카는 그들의 견해를 옮긴 것 같다.

 

16

역사적으로 볼 때, 요한은 하느님이 종말에 오시면 불로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 예고했다. 그런데 어록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이 내리는 사실을 감안해, 예수님이 성령과 불로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개작했으리라.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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