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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 연중 제1주간 월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09 조회수756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프닌나는 주님께서 태를 닫아 놓으신 한나를 괴롭혔다.>

사무엘기 상권의 시작입니다. 1,1-8

1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춥족의 라마타임 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엘카나였는데, 에프라임족 여로함의 아들이고 엘리후의 손자이며, 토후의 증손이고 춥의 현손이었다.

2 그에게는 아내가 둘 있었다. 한 아내의 이름은 한나이고, 다른 아내의 이름은 프닌나였다. 프닌나에게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3 엘카나는 해마다 자기 성읍을 떠나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주님께 예배와 제사를 드렸다. 그곳에는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가 주님의 사제로 있었다.

4 제사를 드리는 날, 엘카나는 아내 프닌나와 그의 아들딸들에게 제물의 몫을 나누어 주었다.

5 그러나 한나에게는 한몫밖에 줄 수 없었다. 엘카나는 한나를 사랑하였지만 주님께서 그의 태를 닫아 놓으셨기 때문이다.

6 더구나 적수 프닌나는, 주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아 놓으셨으므로, 그를 괴롭히려고 그의 화를 몹시 돋우었다.

7 이런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었다. 주님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프닌나가 이렇게 한나의 화를 돋우면, 한나는 울기만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8 남편 엘카나가 한나에게 말하였다. “한나, 왜 울기만 하오? 왜 먹지도 않고 그렇게 슬퍼만 하오? 당신에게는 내가 아들 열보다 더 낫지 않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엘카나의 아내 한나는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프닌나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복음<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20

14 요한이 잡힌 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14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는 요한을 체포하여 사해 동쪽에 있는 마캐루스 요새에 가두었다가 참수형에 처했다. 요한이 활동을 마친 다음에 예수님은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예수님의 청중은 그분을 요한이 소생한 것인 줄로 착각할 수 있었다. 요한이 주로 유다지방 요르단 강 유역에서 세례운동을 전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주로 갈릴래아 지방 겐네사렛 호수 주변에서 활약하셨다.

복음이란 낱말과 더불어 하느님의 복음이란 표현도 초대교회에서 바오로가 맨 먼져 사용한 것 같다. 바오로가 전한 복음의 내용은 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인데 이 두 사건에 하느님이 깊이 개입하셨기 때문에 바오로는 하느님의 복음이라 했다. 이제 마르코는 바오로에게서 비롯한 표현을 빌리기는 했으나 그 내용을 바꾸었다. , “하느님의 복음하느님 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전갈을 가리킨다.

14절에서 예수님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 등장하신다.

 

15

15절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집약해 놓았다. 유다교 특히 묵시문학계에서는 하느님의 역사의 흐름을 미리 정해 놓으셨다고 한다. “때가 차서는 역사가 완성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직역하면 하느님의 왕정이다. 하느님은 언제나 임금으로서 자연계와 인류역사, 특히 이스라엘 역사를 다스리신다. 그러니 이는 은밀하고 잠정적인 통치다. 그러다가 역사가 완결될 때가 되면 하느님이 공공연히 그리고 졀정적으로 당신 왕도를 펴실 줄로 유다교, 특히 묵시문학계에서는 고대했다. 이를 일컬어 하느님의 종말 통치라 한다.

 

이제 하느님께서 환희 그리고 힘차게 당신 왕도를 펴실 때가 다가왔다고 하는데 이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느님의 종말 통치가 아직은 아니지만 가까운 장래에 곧 실현될 것이다.

 

그 통치는 예수님의 인품과 업적으로 이미 실현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종말론적 통치의 미래성과 현재성인데 예수님은 그 통치의 두 가지 성격을 다 강조하셨다. 즉 예수께서는 하느님이 당신 인품과 업적을 통해 은연중에 종말론적 통치를 이미 실현하시기 시작했고 오래지 않아 완벽하게 실현하실 것으로 기대하셨다. 예수께서 강조하신 하느님 나라의 특징 두 가지만 더 지적한다.

 

묵시문학계나 요한 세례자와는 달리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구원론적 성격을 강조하셨다. 하느님은 인간의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바라신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버림받은 사람들의 구원을 더욱더 열망하시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소외자들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셨다. 하느님 나라는 결국 하느님 자신이다. “하느님의 나라”, 직역하여 하느님의 왕정은 임금님으로서 환히 그리고 힘차게 선정을 베푸시는 하느님 자신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이요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간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께로 간다는 뜻이다.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 인간이 취할 태도는 회개믿음이다. 회개가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방향전환이라면 여기 믿음은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기쁜 소식을 수락하는 것이다.

 

네 어부를 제자로 삼으시다

이 소명사화는 본디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전해오던 이야기인데 마르코가 이 자리에 배치했다. 그렇게 배열한 동기는 이렇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아울러 마르코에 의하면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신 때와 수난하신 때를 제외하면 언제나 당신 제자들과 함께 지내신다고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활동 초창기에 소명사화를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복음서 집필 이전의 전승자는 엘리야가 엘리사를 제자로 삼은 이야기를 본떠서 1,16-20; 2.14의 소명사화를 엮었다. 그 서술양식을 살펴보면 상황묘사, 소명, 추종 순으로 짜여 있다. 그 내용에 있어서는 심리적 갈등 혹은 인간적 소등 따위를 죄다 없애고 오직 소명과 추종을 간결하게 명시하여 이상적 제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16

원문에는 호수대신 바다”. 마르코와 마태오는 언제나 갈릴래아 바다라 하고, 루카는 항상 갈릴래아 호수라 한다.

 

17

당시 유다교 율사와 제자가 함께 길을 가게되면 제자는 율사보다 몇 발짝 뒤를 따라갔다. 그러니 소명의 말씀은 시몬과 안드레아더러 당신의 제자가 되라는 명령이다. 제자 될 사람이 이름있는 율사를 찾아가 스승으로 모시는게 관례인데, 여기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고르신다.

 

18

율사의 제자들은 율법을 배우는 데 비해,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을 따라다니면서 그분의 인품과 언행을 익히고 나아가서는 그분의 명에 따라 전도활동에 참여한다.

 

19

원문에는 제베대오의 사람 야고보라 했는데 10.35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은 제베대오의 아들들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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