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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01.1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17 조회수1,006 추천수9 반대(0) 신고

 

(알브레히트 뒤러, ‘율법학자들 가운데 선 예수)

2022년 1월 17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복음 마르 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초등학생 때어머니 심부름으로

석유 가게에 갔던 일이 기억납니다.

석유를 담는 통과 돈을 주시면서

석유를 사오라고 하셨습니다.

석유 가게에 가서 통에 석유를 담고서

계산을 위해 돈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께서 화를 내시며

혼내시는 것입니다지폐를 꼬깃꼬깃

구겨진 채 주었다는 이유였습니다.

빳빳하게 펼쳐진 돈이나 꼬깃꼬깃 구겨진

돈이나 그 가치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인아저씨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받는 사람에게 어떤 돈이 더 기분 좋겠니?

돈은 귀하기에 이렇게 잘 펼쳐서 줘야 한다.”

그 뒤에 돈을 낼 때는 항상 잘 펼쳐서 드립니다.

그리고 마트에서 계산대에 물건을 올릴 때도

최대한 계산원이 쉽게 계산하도록 배려합니다.

남을 배려하면 상대방도

저를 배려한다는 것을 많이 깨닫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만 배려받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받고자 한다면

먼저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랑은 신앙적인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일상생활의

사랑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실 많은 이가 자기 뜻을 따르지 않으면

죄인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부모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합니다.

매일 게임만 하고 있으니 미치겠어요.”

그러나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만 한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까요?

사실 공부만 하는 사람놀기만 하는 사람,

먹기만 하는 사람잠만 자는 사람.

이런 식으로 한 가지만

하는 사람은 옳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면서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만 잘하면 정상일까요?

이 역시 아닙니다신앙생활도

인간 생활과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참 기쁨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식도 하지 않고먹고 마시는 것을

더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착각입니다신앙생활과

일상의 생활은 절대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특히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사랑 안에서 참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살면서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실수할까 봐 계속 걱정하는 것이다.

(엘버트 허버트)

백해무익한 걱정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납니다.

어쩌면 모두가 걱정 기계가 되는 것처럼

계속해서 걱정을 찍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을 한다고 해서

추락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가 안전히 귀가하길 걱정한다고 해서

안전 귀가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아닙니다.

암 검사 결과를 걱정하며 기다려도

암이 아닐 가능성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걱정은 그렇게 유용하지 않으며,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등

되레 해를 끼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걱정에 자유롭지 못한 우리입니다.

걱정으로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걱정보다 지금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합니다그렇다고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변화시키거나

떠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바꿀 수 없거나 피할 수 없다면,

걱정보다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걱정은 백해무익합니다주님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면서 걱정을 줄여 나가야 합니다.

(성 안토니오 아빠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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