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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01.1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18 조회수836 추천수3 반대(0) 신고

 

(안식일 논쟁.)

2022년 1월 18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

복음 마르 2,23-28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제가 군대 생활을 할 때,

우정의 무대라는 텔레비전 프로가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군인들의 장기 자랑이 주 내용이지만,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이며

가장 유명했던 것은 그리운 어머니

코너였습니다어머니가 가림막에

실루엣만 보이고그 실루엣만 보고서는

자기 어머니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병이

무대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이렇게 말합니다.

뒤에 계신 분은 제 어머니가 맞습니다!!!”

한 사병의 어머니일 텐데,

아들이라고 자청하는 사병이

자그마치 2~30명입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이유,

어머니에게 안부 인사를 텔레비전을 통해서

하겠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

보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에 어떻게든 가까이

다가서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사랑의 힘으로 이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종종 잊어버리고 맙니다.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착각 속에서 힘든 삶을 계속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랑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고철저하게 사랑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사랑을 보려고 하지 않고

또 실천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율법이라고

주장하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에 관하여

바리사이들과 충돌을 일으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밀밭 사이를 질러가게 되었는데,

제자들이 밀이삭을 잘라

손을 비벼 먹은 것입니다.

이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예수님께 따져 묻습니다.

안식일에 걷는 행위도 금지되는 등

일상생활에서의 금지사항이

39개나 되었습니다이런 식입니다.

가벼운 산책은 할 수 있지만

1km 이상을 걸으면 율법을

어기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안식일에

시계태엽을 감지 않으며,

편지를 뜯지 않으며,

불을 지피지도 않습니다.

예수님 시대는 이보다 훨씬 엄격했었지요.

밀 두 이삭 이상을 따면 그것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추수 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손으로 이삭을 비비는 것은 곡식을

타작하는 것과 같다고 보았습니다.

율법이 하느님의 법이라면 그것은

사람을 잘 살게 하려는 것이지

사람을 율법으로 얽어매서

괴롭히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이 신성한 것이라면 그 안에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섬기며 거룩하게

되기 위한 것이지 사람이 성전을 위하여

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원칙에서 벗어난 모든 것은

진짜 주님의 뜻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지켜야 할 것,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아무리 수치스러운 일을 했더라도

땅에 떨어진 평판을 고치는 것은

우리의 힘만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라 로슈푸코)

죄책감과 수치심.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특정 행동을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고 자신이 끼친 해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후회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죄책감이 아닌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잘못된 행동을 한 라는 사람

전반을 부정적으로 인식합니다.

또한 잘못에 대한 뉘우침보다

부끄러움을 더 크게 느낍니다.

잘못에 대한 행동적 자기 비난은

죄책감을 가져오지만특성적

자기 비난은 수치심을 가져옵니다.

죄책감을 느낄 때 사람들은 후회하며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나 보상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으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수치심을 느낄 때면 좌절감과

자신이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감정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그래서 자신이 상처 준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겨를이 없고,

문제 해결보다 이대로 사라지거나

이 더러운 기분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주된 목적이 됩니다.

죄책감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수치심은 내 삶의 어떤 변화도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주님의 사랑을 내 안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분명히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안식일 논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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