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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율법에 매이지 않는 사람은 사랑을 완성한 사람이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18 조회수606 추천수3 반대(0) 신고

 

화요일 복음의 연장선에서 수요일 복음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먼저 전체적인 틀입니다. 계명과 율법은 우리를 구속하는 게 아니고 그게 우리를 보호하는 기능도 있다고 하는 게 저의 화요일 복음 묵상의 일부 요지입니다. 오늘 수요일 복음의 묵상글 제목을 제가 '율법에 매이지 않는 사람은 사랑을 완성한 사람이다'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에 동의를 하시는지요? 보통의 경우에는 동의도 잘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게 무슨 말인지 하고 어리둥절할 수 있을 겁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사랑을 완성한다."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바는 이런 게 아니고 오히려 이와는 다른 역발상입니다. 지금부터 그에 관한 내용을 묵상해보겠습니다. 

 

세상에서도 이런 말은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법 없어도 살 사람이다' 이와 같은 표현 말입니다. 이 말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요? 이분법적인 논리로 접근하면 다른 사람은 법이 있어야 산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좀 더 확대를 하면 이런 사람들은 만약 법이 없다면 법 질서를 어기며 살 사람일 경우가 다분히 높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준법정신이 강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겉으론 법을 지킬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어떤 물리적인 제제가 가해지기 때문에 그 제제를 받지 않으려고 법을 지킨다고도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법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에게 법이라는 것은 법 자체의 존제 유무가 그 사람의 행동이나 자유를 구속하지 못합니다. 이미 그는 인간이 만든 법 이전에 이미 벌써 인간 내면에 있는 '양심의 법'에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엔 지식이나 학벌 같은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람은 선천적으로 이미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피조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에 그런 마음, 바로 하느님의 마음도 기본적으로 내재돼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게 가능할 수 있다는 것도 그냥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 양심의 소리는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긴 하지만 그 근본 속성은 하느님의 소리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의 음성 파일이 인간의 마음에서 재생된 것과도 같다고 보면 어떨까요? 우리도 만약 유튜브를 통해서 어떤 신부님의 강론을 듣는다고 해서 폰이 강론을 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소리는 폰에서 나오지만 실제 그 목소리가 전해주는 가르침은 신부님의 가르침입니다. 바로 이런 원리를 적용하면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긴 하지만 근본적인 소리는 하느님의 소리입니다. 하느님은 사랑 그자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바람과도 같은 분이십니다. 

 

바람은 그물이 있어도 그 그물을 통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물로 포획을 하려고 해도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듯이 모든 율법은 사랑으로 다 대변할 수 있고 또 '사랑' 하나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이미 사랑을 완성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사랑을 완성한다는 것은 사실상 아주 힘든 일일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그만큼 하느님이 되기가 싶지 않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게 말처럼 쉽게 될 것 같으면 하느님이라는 존재 자체에서 나오는 위엄 또한 약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게 단순히 어려운 일이라서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과 관련해서 묵상을 해보면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사랑의 마음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우리 인간의 내면에 있는 완고함이라는 속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도 묵상을 해봅니다. 하느님께서 원래 저희를 창조하실 때 그 본성 속에 사랑이라는 DNA를 우리의 마음 가운데 심어놓으셨는데 그만 완고함이란 녀석이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 우리를 포위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 포위망을 뚫으면 사랑이 우러나오는 것이지만 그 포위망을 뚫지 못하면 그 속에 갇혀서 계속 나오지 못하게 되는 형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머리로는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 좋은 말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또 그렇게 살자며 호소를 한들 입으로만 앵무새처럼 부르짖고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그건 자신을 속이는 것만 아니고 남도 속이는 것이 되게 됩니다. 어디 남만 속이게 되는 것일까요? 하느님도 속이는 것이 됩니다. 정작 본인은 하느님을 속이는 주체의 당사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신 존재이기 때문에 그걸 우리가 피부로 의식을 잘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불쌍한 사람을 보게 되면 하느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인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오늘 복음에 나오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처럼 우리의 마음이 오그라든 완고한 마음 또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는 이 두 마음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측은지심의 마음이 이기게 되면 바로 그게 자비로 이어져 자비를 실천하게 되지만 오그라든 완고한 마음이 우세하게 되면 오늘 복음에서도 나오지만 하느님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게 되는 모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사랑 실천도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 마음속에 오그라든 손처럼 완고한 마음도 손을 펴듯이 펴야만이 그 사랑 실천이 빛을 낼 수가 있는 것이지 사랑실천과 따로국밥처럼 놀게 되면 그 사랑실천은 가식적인 사랑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이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의 마음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마음속 한켠에 완고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어서도 그럴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이걸 펴도록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길이 바로 우리도 어떤 틀이나 규정에 얽매여 자연스럽지 못한 왜곡된 신앙이 아니라 하느님처럼 참사랑의 기쁨과 자유를 만끽하는 신앙으로 발돋움하게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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