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주간 토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21 조회수1,512 추천수13 반대(0)

한국의 원로 사목자께서 미국에 오셨다가 선종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신부님들이 오기가 수월치 않아서 미국에 있는 사제들이 신부님을 위한 장례미사에 함께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선종하면 교구장님이 미사를 집전합니다. 전임 본당의 교우들이 연도를 하고, 미사에도 함께 합니다. 미국에서 선종하였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보내준 신부님의 영정사진을 들고 뉴욕에서 샌디애고로 갔습니다. 멀고, 낯선 미국에서의 선종이지만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신부님의 장례미사에 함께 하면서 박해시대를 생각하였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아무도 신부님을 위해서 울어 줄 수 없었습니다. 신부님의 시신은 이민식 빈첸시오가 모시고 미리내에 안장하였습니다. 이민식 빈첸시오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모친 고 우술라의 시신도 김대건 신부님 옆에 모셨습니다. 92세에 선종한 이민식 빈첸시오도 김대건 신부님 옆에 묻혔습니다. 한국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도 복음을 전하다가 길 위에서 선종하였습니다. 신앙인들에게 죽음의 장소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다면 죽음의 장소와 상관없이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주심을 믿습니다.

 

카인에 의해서 억울하게 죽었던 동생 아벨은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아벨은 하느님께 정성껏 예물을 드렸습니다. 부자의 집 앞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죽었던 라자로도 아브라함의 품에서 편안한 안식을 얻었습니다. 화려한 궁궐에 살았던 헤로데는 많은 사람들의 추모를 받으며 죽었지만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죽였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평생 부자로 잘 먹고 잘 살던 부자는 큰 무덤에 묻혔지만 어둠의 세계로 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호소를 했지만 하느님의 품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의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지 않고, 교만과 욕심에 가득한 죽음이었다면 선종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사울과 요나탄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했던 사울의 죽음을 애도하였습니다. 평생 함께 했던 친구 요나탄의 죽음을 애도하였습니다. 비록 안타까운 죽음이었지만 다윗의 애도와 기도가 함께 했기에 사울과 요나탄은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원로 사목자께서도 사제의 길을 충실하게 가셨기에 비록 먼 타국에서 선종하였지만 아브라함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친척들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미쳤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미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오리를 가자는데 십리를 가주기 때문입니다. 왼뺨을 때리면 오른 뺨을 내 주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시기 때문입니다.’ 출세와 성공 그리고 부와 명예를 쫓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지금도 예수님께서 미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류의 영적인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땅을 기어 다니는 애벌레의 수준에서 하늘을 훨훨 날아가는 나비의 수준으로 올려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내면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을 보여 주셨고, 이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맛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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