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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라기(19) 하느님을 섬겨 보아야 쓸데없는 일이다 (말라3,13-15)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22 조회수55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2.1.22.(공동번역)

 

말라기(19) 하느님을 섬겨 보아야 쓸데없는 일이다 (말라3,13-15)

 

13 '이 무슨 무엄한 소리냐?' 하고 내가 꾸짖었더니너희는 '우리가 주께 무슨 못할 말을 하였습니까?' 하는구나그러나 14 너희가 정말로 하는 소리는, '하느님을 섬겨 보아야 쓸데없는 일이다그의 분부를 지켜 보았지만무슨 소용이 있더냐만군의 야훼 앞에서 베옷을 입고 울어 보았지만 무슨 소용이 있더냐? 15 결코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 살 길이 트이는 세상인걸못된 짓을 해야 성공하는 세상인걸하느님을 시험하고도 멀쩡하게 살아 있지 않은가!' (3,13-15)

 

우리는 이미2,17- 3,6절에서 자기 백성들이 말로 공의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며 하느님을 비방하고 비꼬어 조소하며 의심하면서 말로 온갖 패역함을 보이는 일을 하였다.

이러한 패역함이 인격(人格)의 밑바닥에 자리 잡으면서하느님 앞에 거슬리는 불의함과 그릇됨이 생활 속에 만연하여 있음으로 인하여 신앙인으로 잘못됨이 생각과 입술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러한 죄악의 유사한 모습들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생각하여 봅시다.

 

5. 무엄(완악)한 말에 대한 책망(13-15)

 

야훼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이 무슨 무엄한 소리냐?”하였다고 했다. ‘무엄하다는 강팍하다라는 뜻이다.

무엄한 말을 하는 까닭은 하느님께 대한 대단한 불만과 원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무엄한 말로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대적하고도 우리가 주께 무슨 못할 말을 하였습니까?” 하며 자신의 불의를 시인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이것은 그들의 영적 감성이 타락하여 어두워졌고신앙양심이 화인 맞은 자같이 악하여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러면 무엄한 말의 내용은 어떠한가?

 

1)“하느님을 섬겨 보아야 쓸데없는 일이다그의 분부를 지켜보았지만무슨 소용이 있더냐?” 하였다.

당시 자기백성들의 의식에는 하느님을 섬기면 이에 따르는 현세적 보상이 즉시 있고반드시 충족하게 넘치는 줄로 믿었다.

그런데 현실의 상황은 하느님을 잘 믿고 섬기는 자보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않거나아예 하느님을 모르는 불량(不良)한 자들이 더 번성하고 형통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자기 백성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대한 무용론을곧 헛됨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공공연하게 떠들었던 것이다.

쓸데없다라는 말은 헛되다공허하다비어있다는 뜻으로 하느님을 경배하고 봉사하는 일이 공허하고 소용도 없고 무익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로 어의(語義)가 없는 말이다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 헛된 일이며아무런 유익이 없는 무가치한 일로 여기는 영적 신앙실태는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악한 생각이요거짓된 주장인 것이다.

 

2)“만군의 야훼 앞에서 베옷을 입고 울어 보았지만  하였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에 대한 무용론을 주장하는 말이다자기 백성들은 하느님의 택한 백성으로써 당연히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의무요 본분(本分)인 것이다.

구원받은 자의 은혜(恩惠)와 감격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실천할 사항이지어떤 보상과 대가성을 전제한 실천은 모순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자기 백성들의 생각은 하느님의 자녀의 의식으로 순종한 것이 아니고()이나 삯군의 의식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이 된 것이다.

그래서 현재에 상응(相應)한 보상과 축복이 없을 때아주 완악한 말로 하느님을 크게 대적한 것이다. ‘울어 보았지만 은 자신들의 죄를 애통해 하며금식하면서 거룩한 삶을 살고자하는 것을 말한다.

곧 성도(聖徒)로써의 거룩한 삶을 살고자 경건생활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성도로써 이러한 삶을 지향(指向)한다는 것은 훌륭한 태도이다그런데 이러한 삶이 쓸데없는 것으로 말하였으니 완악한 행위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 다윗은 시편42,3절에서 네 하느님이 어찌 되었느냐?' 비웃는 소리를 날마다 들으며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이것이 나의 양식입니다.” 하였다고 했다이렇게 말하는 자들이 전에는 무엇하든 자들이었는가? 4절에서 축제의 모임환희와 찬미소리 드높던 그 행렬무리들 앞장서서 성전으로 들어 가던 일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미어집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람들이 타락하여 지금은 무슨 소용이 있더냐?”며 찾고 의지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고 함으로 3절에서 다윗은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이것이 나의 양식입니다.고까지 하였다.

 

3) 노골적인 완악한 말은 어떤 것인가?

 

“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 살 길이 트이는 세상인걸” 하였다.

교만한 자는 무례한 행동을 서슴없이 방자하게 행하는 자를 말한다이들은 하느님도 없고 율법도 없이 방자(放恣)하게 행하는 불의한 자들로써 세상의 물질이나 흥함으로 거만함을 부리는 자들이다.

그런데 자기백성들은 지금 이들을 흠모하고 부러워하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다어찌 멸망(滅亡)받을 인생들이 좋을 수가 있는 것인가?

 

못된 짓을 해야 성공하는 세상인걸” 하였다.

불신자와 불의(不義)한 악인들이 하느님을 믿고 섬기는 독실한 신자들보다 더욱 번성하고 잘되는 경우가 얼마나 이 세상에는 있다.

악인들의 외형적인 형통함을 인하여 경건한 자들이 생각의 혼돈과 일손이 약화(시편73:13)되는 경우가 있다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임을 성경은 한결 같이 말씀하고 있으며또한 악인의 형통함에 대해서 지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악인을 부러워하지 말고 못된 사람을 시기하지 말아라악한 사람은 앞날이 없고 나쁜 사람의 등불은 꺼진다. (잠언24:19-20)”고 하였다.

그런데 신자(信者)가 좀스럽게 이를 부러워하고선호하는 완악한 말을 서슴없이 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책망을 받기에 너무나 당연한 처사이다.

 

하느님을 시험하고도 멀쩡하게 살아 있지 않은가!” 하였다.

하느님을 시험(試驗)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과 약속을 확인해 본다(10)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의 심판과 경고를 완전히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공의의 하느님심판의 하느님은 없다는 전제하에서 악의적으로 방자하게 말하는 행위이다이를 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百姓)들에게는 하느님께 대한 불만(不滿)과 불평의 의식이 크게 팽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의 삶에 대한 것이 손해이고 헛수고이냥 가득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우리가 스스로 화를 낼 때도 있으며 남을 부러워할 때도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마음의 혼란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의도적으로 시험하는 것이므로이러한 감정이 깊어질 때는 우리가 인내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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