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7 연중 제3주간 목요일 ...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26 조회수1,037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며,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7,18-19.24-29

나탄이 다윗에게 말씀을 전한 뒤

18 다윗 임금이 주님 앞에 나아가 앉아 아뢰었다.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까?

19 주 하느님, 당신 눈에는 이것도 부족하게 보이셨는지, 당신 종의 집안에 일어날 먼 장래의 일까지도 일러 주셨습니다. 주 하느님, 이 또한 사람들을 위한 가르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24 또한 당신을 위하여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영원히 당신의 백성으로 튼튼하게 하시고, 주님, 당신 친히 그들의 하느님이 되셨습니다.

25 그러니 이제 주 하느님, 당신 종과 그 집안을 두고 하신 말씀을 영원히 변치 않게 하시고, 친히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주십시오.

26 그러면 당신의 이름이 영원히 위대하게 되고, 사람들이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다.’하고 말 할 것입니다. 또한 당신 종 다윗의 집안도 당신 앞에서 튼튼해 질 것입니다.

27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당신께서는 당신 종의 귀를 열어 주시며, ‘내가 너에게서 한 집안을 세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 종은 이런 기도를 당신께 드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28 이제 주 하느님, 당신은 하느님이시며 당신의 말씀은 참되십니다.

당신 종에게 이 좋은 일을 일러 주셨으니.

29 이제 당신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시어, 당신 앞에서 영원히 있게 해 주십시오. 주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다윗은 주님께서 해 주신 일과 축복에 대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드린다.

 

 

 

 

복음<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1-25

 

네 가지 단절어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1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네 가지 단절어

21-25절은 네 가지 단절어를 모아 놓은 집성문인데 짐작건데 마르코가 단절어들을 모아 이 자리에 삽입한 것 같다. 복음사가가 그렇게 한 이유는 21-22절의 단절어들이 자신이 내세운 메시아 비밀 사상과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이승의 예수님이 당신 신분을 감추셨지만 그분은 등불이시므로 결국 세상을 비추게 마련이며 그분이 한동안 당신 정체를 숨기셨지만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22).

 

21

이 상징적 단절어의 변체가 어록에도 있었다. 그리고 루카 8.16은 마르 4.21을 개작한 것이다. 단절어의 뜻을 밝히려면 우선 등불상징어에 착안할 필요가 있다. 등불은 엘리야와 모세 두 예언자, 엘리야 예언자의 말, 요한 세례자를 가리키는 상징어다. 그리고 용서를 일컬어 세상의 등불”,“이스라엘의 등불”,“환한 등불이라 했다. 사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을 두고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세상의 빛이라 한다.

 

그럼 어떤 상황에서 이 상징적 단절어를 발설하셨을까? 갈릴래아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가 잡아죽아려 하니 피신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루카 13,31-33)와 비슷한 상황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등불은 숨겨둘 것이 아니라 등경위에 놓아 빛을 내게 해야 하는 것처럼, 당신은 잠적할 생각이 조금도 없고 드러나게 활약하시겠다는 결의를 나타내신 말씀이리라.

 

등불은 등잔불이다. 그런데 등불이 오다는 표현은 우리에게는 무척 생소하나 예수시대 사람들은 유다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무생물을 생물처럼 여긴 경우가 많다. “등불이 오다등불을 가져오다라 풀이하면 덜 생소할 것이다.

 

22

이 단절어의 변체가 어록에도 전해졌다. 그리고 루카 8.17은 마르 4.22를 옮겨쓴 것이다. 지금 숨은 행적은 장차 하느님의 심판 때 드러나고야 만다는 뜻으로 예수 친히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혹은 복음작가가 당대의 속담을 인용한 것일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마련이다. 비밀은 드러나고야 만다 따위 속담은 동서고금에 널리 퍼져 있다.

 

23

9절의 경구를 마르코가 다소 고쳐 반복한 것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9)이 셈족어 표현이라면 누가 들을 귀가 있거든...”(23절 조건문)은 그리스어 표현이라 하겠다.

 

24

여러분이 듣는 것을 유의하시오9,23절 경구의 변체로서 마르코가 덧붙인 것이다. 경구 다음에 있는 상징적 단절어는 어록에도 그 변체가 있다(마태 7.2=루카 6.38). 그런데 또한 여러분에게 더 보태어 주실 것입니다는 어록에는 없고 우리 복음서만 있는 추가구다.

여러분이 되어 주는 되만큼 여러분에게 되어 주실 것이다라는 말은 현재의 선행과 종말의 보상은 정비례한다는 종말론적 인과율이다.

 

되로 주면 되로 맏고 말로 주면 말로 받는다는 속담을 연상케 한다. 종말론적 인과율과는 대조적으로 마르코복음의 추가구에서는 현재의 선행보다 더 많이 종말에 보상해 준다고 이르기 때문에 종말론적 은총률이라 하겠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24절의 단절어는 예수 친히 발설하신 것인가? 초대교회에서 만들어 퍼뜨린 것인가? 아니면 마르코가 속담을 인용한 것인가?

 

25

25절 역시 단절어인데 그 변체가 네 번이나 나온다. 마태 13.12;루카8.18은 마르코가 옮겨쓰면서 개작한 것이다. 돈 관리에 관한 비유 가운데도 변체가 들어 있다. 그 뜻인즉, 현재 영적 부를 쌓는 사람은 종말에 더 받게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조금 모은 것마저 빼앗기고 말 것이라는 종말률이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개탄하는 말을 옮긴 것인가? 아니면 초대교회 내지 예수까지 소급하는 말인가?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