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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1 월요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30 조회수1,014 추천수2 반대(0) 신고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청소년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요한 보스코 성인의 말이다. 그는 1815년 이탈리아의 토리노 근교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양을 치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어머니의 엄격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라 사제가 되었다. 특히 청소년을 사랑하였던 그는, 젊은이들의 교육에 심혈을 이울여 오다가 1859년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그리스도교 생활을 익히게 하려고 살레시오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1872년에는 살레시오 수녀회도 세웠다.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19세기의 탁월한 교육자로 꼽히는 그는 1888년에 선종하였고,1934년에 시성되었다.

 

 

1독서<압살롬에게서 달아납시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5,13-14,30; 16.5-13

그 무렵

13 전령 하나가 다윗에게 와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쏠렸습니다.”

14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어서들 달아납시다.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압살롬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오. 서둘러 떠나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가 서둘러 우리를 따라잡아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고, 칼날로 이 도성을 칠 것이오.”

30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계속 올라갔다.

16.5 다윗 임금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울 집안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 그곳에서 나왔는데, 그의 이름은 게라의 아들 시므이였다. 그는 나오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6 온 백성과 모든 용사가 임금 좌우에 있는데도, 그는 다윗과 다윗 임금의 모든 신하에게 돌을 던졌다.

7 시므이는 이렇게 말하며 저주하였다. “꺼져라. 꺼져! 이 살인자야, 이 무뢰한아!

8 사울의 왕위를 차지한 너에게 주님께서 그 집안의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돌리시고, 그 왕위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다. 너는 살인자다. 이제 재앙이 너에게 닥쳤구나.”

9 그때 츠루야의 아들 아비사이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 죽은 개가 어찌 감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저주합니까? 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

10 그러나 임금은 츠루야의 아들들이여, 그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소? 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하고 말할 수 있겠소?“

11 그러면서 다윗이 아비사이와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목숨을 노리는데, 하물며 이 벤야민 사람이야 오죽하겠소?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12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 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13 다윗과 그 부하들은 길을 걸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다윗 임금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쫓기게 되자, 그는 주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심한다.

 

 

 

 

복음<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20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1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이는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게라사의 미친 사람을 고치시다

회당에서 미친 사람을 고치신 첫째 구마사화에 이어 둘째 구마사화다. 첫째 구마사화는 일정한 서술양식을 따라 전개되었다. 둘째 구마사화도 처음에는 비슷한 양식을 지녔겠지만, 전승과 편집 과정을 거치면서 그 양식이 많이 파손되었다. 여기서 후대에 전승자와 편집자가 여러 차례 손질한 부분을 일일이 밝힐 수는 없다. 다만 귀신들이 돼지들에게로 옮겨가자 돼지들이 집단적으로 익사했다는 소재는 전승과정에서 덧붙인 것이고, 귀신들렸던 사람의 반응은

 

마르코 복음서를 편집하면서 덧붙인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는 사실만 지적한다. 5,1-20 강운데 12-13절과 18-20절만 빼어도 구마사화의 원형에 훨씬 가까워진다. 그리고 누가 왜 구마사화를 꾸며서 전했을까? 그 형성 배경을 묻지 않을 수 없는데, 이에 대한 답변을 시도하려면 우선 예수님이 이방인 지역 게라사에서 이방인 미치광이에게 혜택을 베푸신 점을 유의해야 한다. 예수님은 주로 이스라엘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상대로 활동하셨지 외국으로 가서

 

이방인에게 혜택을 베푸신 적이 거의 없다. 어쩌다 예외는 있는데, 여기 구마이적사화와 시로페니키아 부인의 딸을 고쳐주신 구마이적사화가 그런 경우다. 예수님께서 이방인도 돌보셨다는 이야기는 초대교회 신도 가운데서 이방인 선교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곧잘 내세우던 것이었다.

 

그러니 게라사의 미친 사람을 고쳐주신 구마사화 역시 이방인 선교 정당화의 근거라 하겠다. 그럼 이 구마사화는 초대교회 신도 가운데 어느 종단에 속한 사람들이 꾸몄을까? 유다인들은 이방인이나 이방인 지역에 대해 매우 경멸하는 태도로 말하는데 그런 언사가 여기 드러나는 사실을 눈여겨볼 때 유다계 그리스도인 가운데서 이방인 선교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이 구마이적사화를 꾸며 전했을 것이다.

 

1

대부분 사본에서는 게라사라 한다. 게라사는 갈릴래아 호수 동남쪽으로 55키로미터 떨어진 도시로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요르단 유역 열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게라사는 돼지들이 갈릴래아 호수에 빠져죽었다는 소재를 고려할 때 터무니없이 동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마태오는 호수에서 동남쪽으로 불과 10키로미터 떨어진 가다라로 고쳤다. 그러나 가다라 읍 역시 호수에서 너무 멀어 12-13절과 맞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 지리에 정통한 오리게네스는 게르게사로 고쳤다. 게르게사는 호수 동쪽 물가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고 그 남쪽으로 5리 떨어진 곳에 벼랑이 있기 때문에 12-13절과 잘 어울리는 장소였다.

 

2

유다인들이 보기에 게라사는 이방인 지역이라 불결한 곳이고, 무덤 역시 불결한 곳이다. 그리고 불결한 짐승인 돼지를 기르기 때문에 또 한번 불결한 곳이다. 2절과 6절에서는 구마사와 부마자의 상봉을, 3-5절에서는 부마자의 비참상을 서술한다.

 

6

7절은 구마사화에 흔히 나오는 부마자의 방어사다. 그런데 예수님의 정체를 밝혀 1,24에서는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 하고 3.11에서는 하느님의 아들이라 했는데 여기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한다. 칠십인역에 의하면 이방인들만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란 표현을 쓴다.

 

7

구마자가 귀신을 내쫓을 때 흔히 하느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명한다는 주문을 사용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부마자가 그 주문을 입에 담는다. 우스꽝스럽게도 구마자의 주문을 홍내내는 말이다.

 

9

흔히 귀신의 정체를 파악해야만 귀신을 추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귀신의 이름을 묻는다.

대부대는 원문의 레기온을 번역한 것이다. 레기온은 라틴어의 레기오를 음역한 것이다. 레기오는 6천 명 단위의 로마군 부대를 가리킨다. 그러니 게라사의 미친 사람에게는 호전적인 로마군 부대와 같은 귀신들이 무수히 달라붙었다는 것이다.

 

10

귀신은 이방인 지역이 살기에 적합한 곳인지라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안을 제시하는데 구체적인 대안이 12절에 나온다.

 

12

12-13절은 어느 전승자가 덧붙인 것인데 당대의 구마이적사화를 참작하여 그럴듯하게 꾸며넣었다. 12절에서 귀신들은 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데, 그들이 살기에 적합한 동물인 돼지들에게로 옮겨가고 싶다고 한다.

 

13

예수께서 귀신들의 대안을 받아들이신다. 구마자가 추방령을 내릴 때 귀신더러 사람에게서 짐승에게로 옮겨가라는 말을 하는 사례가 있다. 그리스 구마사화에서는 구마자가 귀신더러 이렇게 말한다. “황소 머리로 들어가라. 거기서 고기를 처먹어라. 거기서 피를 빨아라. 거기서 눈을 망쳐라. 거기서 머리를 멍하게 하라 ...” 바빌론 구마사화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부마자 대신 돼지를 주어라. 부마자의 살 대신 돼지고기를 주어라. 부마자의 피 대신 돼지피를 주어라 ...” 그럼 귀신들이 거처를 잘 옮긴 것일까? 돼지들에게 붙으면 좋으려니 했겠지만 돼지들이 미쳐서 죄다 익사했으니 귀신들은 큰 실수를 했던 것이다.

 

14

14절은 본디 11절과 직결되어 있었다. 돼지 치던 사람들은 원래 미친 사람이 낫게 된 것을 보고 놀란 나머지 게라사 도시와 그 주변 시골로 달려가 사실을 알렸을 것이다. 14-17절은 치유이적사화 끝에 으레 나오는 목격자들의 반응인 셈이다. 우리 구마사화 역시 본디는 14-17절로 완결된 것 같다. 실제로 마태오의 경우 그렇게 끝맺는다.

 

17

게라사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네 지역을 떠나 주십사고 한 것은 정말 그렇게 하시기를 바라서 한 말이 아니고 단순히 예수께 대한 두려움을 그렇게 표현했을 따름이다(루카 5.8 참조).

 

18

치유된 사람의 반응은 대체로 마르코가 복음서를 집필하면서 덧붙인 것이다. 그 내용을 풀이하면 이방인 가운데 예수 생전에 제자가 된 사람은 없지만 예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는 데카폴리스 지방에 예수사건을 선포하는 전도사가 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20).

 

19

여기 주님은 하느님이다.

 

20

데카폴리스는 요르단 강 유역 열 도시를 일컫는 총칭인데, 그 주변 대다수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방인이었다. 열 도시 가운데 스키토폴리스만 강 서편에 있고 나머지 아홉은 동편에 위치했는데, 중요한 도시만 꼽는다면 필라델피아, 게라사, 펠라, 가다라, 힙포스, 다마스커스이다.

선포명사와 선포하다동사는 초대교회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낱말로써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외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선포의 내용이 넓어져 십자가와 부활 사건뿐 아니라 예수께서 하신 일이 모두포함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마귀는 영이기 때문에 마귀보다 영이 강한 힘으로 떼어내야 한다.  그러니 예수님 이름으로 뗀다.

돼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즉 돼지가 마귀가 아니라 마귀라는 영이 그속으로 들어가니 돼지조차도 미쳐버렸던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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