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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팬데믹 시대의 선교와 신앙에 대한 진지한 고민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02 조회수803 추천수7 반대(0) 신고

 

요즘 많은 종교 단체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게 있다고 합니다. 우리 천주교도 해당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현 상황에서는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표명을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앙을 어떻게 하면 이탈하지 않고 유지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코로나와 관련된 정책의 방향을 어떻게 전개할지 조금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 유럽의 어떤 나라는 완전 개방의 노선을 취하고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는 배경에는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계속 국민을 통제하다가는 경제도 경제지만 국가의 모든 조직이나 기관이 소통이 되지 않고 있으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몸에 흐르는 피가 잘 순환해야 건강한 몸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와 신앙도 사차원의 세계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가는 게 종교와 신앙입니다. 현실 따로 이상 따로가 아닙니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면 신앙도 그렇고 종교도 위협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이번 설 연휴 때 앞으로 어떻게 해야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 때문에 다양한 자료를 많이 찾아 봤습니다. 특히 인류의 역사와 함께 크나큰 전염병이 있을 때 종교가 어떻게 생존했는가 하는 문제와 그걸 어떻게 대처해왔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 앞전의 글에서도 제가 한 번 언급을 했습니다만 우리는 지금 코로나가 종식이 돼 팬데믹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설령 100프로 완전 원상복구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실제로 사회학자들은 이건 가상의 상황이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일부는 회복이 되겠지만 회복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회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인 임계점을 이미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어렵겠지만 그러나 회복할 수 있는 희망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환경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오염된 바다가 어느 정도 회복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냥 시간만 흘러간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질이 스스로 원래의 수질로 회복되는 데 필요한 자정능력을 가지기까지의 시간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을 이와 비슷한 상황으로 인식하면 여기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불문하고 특히나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무신론자에 비해서 지금의 현 상황에서 좀 더 종교와 신앙의 힘에 의존하여 해결책을 찾으려고 할 것 같지만 현실 속에서는 그게 힘을 잘 발휘하지 못한다는 데에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건 왜 그럴까요? 신앙심이 부족해서 그럴까요? 원론적으로 말하면 그게 정답이겠지만 꼭 원론적인 답만 가지고 볼 문제는 아닙니다. 그 이유는 종교와 신앙도 현실을 떠나서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도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도 현실적으로는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에서는 일차원적으로는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앞으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미래에 대해 불안을 가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우리 모두는 고민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냥 어떻게 되겠지 하고 넋 놓고 바라만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했다가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하면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경제적인 문제만을 언급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경제력이 있다고 해서 신앙에 문제가 없다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 봐도 그렇습니다. 지금 경제력이 상당히 좋은 사람도 이번 코로나가 그런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서 오히려 더 신앙과 거리를 두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우리가 살아가는 1차원적인 경제적인 문제도 신앙과 관련이 있지만 그게 모든 걸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의 인류의 역사를 보더라도 세계1차대전이나 2차대전과 같은 전쟁의 시기가 끝나고 나서 신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 이런 사실에 대한 간접적인 방증이 됩니다. 위기가 또 하나의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는 지금의 시기를 위기로 바라본다면 이 위기를 다시 하나의 기회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비대면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예전에는 비대면 경험이 많이 없었습니다. 원론적으로는 신앙생활이나 모든 현실에서 대면이 가장 좋겠지만 부득불 비대면으로 해야 할 상황에서는 비대면으로 하면서도 그 결과는 대면으로 했을 때와 같은 결과가 나오도록 해야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서 신앙이 위축되거나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면, 비대면 이 양쪽 상황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영역으로 만들고 그런 환경이 자연스런 환경이 되도록 해야만이 이 암울한 터널을 잘 통과할 수 있고 이렇게 됐을 때 언젠가 코로나와 같은 이런 위험이 사라졌을 때 다시 원래의 방향으로 제자리를 잘 잡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시간 동안 우리가 해야 할 게 있습니다.

 

그건 우리가 그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기 때문에 지금 일부 종교에서는 앞으로 종교는, 미래의 종교는 미디어가 종교의 패권을 지배하는 날이 올 거라고 예측하는 종교도 있습니다. 저는 비단 이렇게 예측하는 종교가 있어서가 아니라 벌써 그렇게 될 것을 여러 가지 단면을 보고 미리 그렇게 예측했습니다. 단적인 실례를 하나 들겠습니다. 지금 믿기지 않는 사실 같지만 요즘 개신교 신자들 사이에서 불교 유튜브 강연을 많이 듣는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개신교 입장에서는 하나의 또 다른 위기가 될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이유에 대해서 제가 진단을 짧게 내린다면 저는 양쪽의 종교를 다 경험한 사람으로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런 현상이 벌어진 데에 대한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그건 종교를 떠나서 어떤 면에서는 불교의 이론과 가르침이 더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일반 개신교 신자들도 그냥 막연히 타 종교라 또 자기 종교의 우월성 때문에 막연히 배척했는데 실제 요즘은 유튜브라든지 해서 많이 개방됐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불교의 문화와 가르침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가 있고 또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뭔가 그동안 접하면서 자기가 인식해왔던 것과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새롭게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불교로 개종하려고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예전에는 무조건 배척했는데 지금은 인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불교도 얼마든지 자신의 신앙에 도움이 될 만한 게 있다면 수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실제 요즘 개신교 목사님들도 유명한 스님의 법문을 듣는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을 개신교 내부에서도 공공연하게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암묵적으로는 알고 있고 한편으로는 이것도 또 하나의 자신들의 입지를 위협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많은 고심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였던 것이 지금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유튜브가 많이 생활하가 되었기 때문에 완전 모든 종교가 오픈된 것입니다. 사실 목사님들도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스스로도 종교를 떠나서 훌륭한 가르침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신이 목사라는 신분을 밝히고 감사함을 전하는 목사님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목사님은 사실 대단한 목사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여기서 우리가 하나의 답을 얻어낼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미디어는 계속 개방될 것입니다. 신앙과 종교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미디어의 속에 있는 콘텐츠의 질에 따라 신앙과 종교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세상이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건 비단 코로나 종식 여부와 상관 없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세상도 이젠 미디어가 선교의 방향을 좌우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또 그런 시대가 올 것을 대비해서 우리 천주교도 남의 종교와 비교해서 뭔가 우월적인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서라도 그런 분야에 전력투구하지 않으면 대면, 비대면 시대의 양 시대의 선교에서 뒤처지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앞으로의 미래는 자신의 종교가 얼마나 미디어에 대해 알찬 컨텐츠가 있는지에 따라서 선교의 운명도 결정이 될 날이 올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서라도 그점을 인식하고 충분히 대비해야만 앞으로 우리의 신앙 유산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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