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03 조회수1,461 추천수9 반대(0)

포이에르바하,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은 모두 신()을 부정하였고, 철학, 정치, 문학, 정신의 분야에게 종교를 자리를 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신은 인간의 자기 투사라고 하기도 했고, 신은 죽었다고 하기도 했고, 역사는 계급투쟁의 산물이라고 하기도 했고, 인간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에 의해 지배당한다고 하였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사상가이며, 혁명가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 모두 독실한 종교적인 기반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포이에르바하는 신학 전공 대학생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유다인으로 태어나 그리스도인으로 자랐습니다. 니체는 루터교 목사의 아들이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유다인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이들이 예측한 대로 신은 죽고, 종교는 사라지고, 더 이상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없는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신론을 주장하던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는 해체되었고, 신앙이 회복되었습니다.

 

지식인, 신앙인,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많은 경우에 교회에 있었습니다. 교회와 국가는 같은 이익을 추구하면서 제국주의를 통해 식민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현지인들의 문화와 종교를 없애려고 하였습니다. 경제적인 수탈은 물론 문화적인 파괴를 일삼았습니다. 서구인들의 침략에 맞서서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테러를 자행하는 것도 종교의 이름이었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여성들의 인권을 탄압하였고, 종교의 이름으로 아이들이 현대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계율과 법의 이름으로 신앙인들에게 죄의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윤리와 성윤리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억압하기도 하였습니다. 극단적인 창조론 교육은 자명한 과학의 결과를 무시하였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종교의 이름으로 원주민의 문화와 종교를 탄압하고, 신의 이름으로 테러를 감행하고, 식민지에서 수탈한 자원과 인력을 동원해서 화려한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러기에 지식인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신앙인들은 죄의식에 새로운 탈출구를 찾았습니다. 젊은이들은 자유를 찾아 떠나갔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헤로데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헤로데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하느님 사람인 세례자 요한을 죽였습니다. 2000년 교회의 역사에서 교회는 헤로데와 같은 잘못을 하였습니다. 교회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교회에 권한과 권력이 주어졌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교리논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성화상을 인정하는 주장과 성화상은 우상이라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서 죽이기도 했고, 서로를 파문하기도 했습니다. 성지를 회복한다는 이름으로 십자군 전쟁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였고,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야 했습니다. 교회의 개혁을 바라는 소리를 외면하였고, 교회는 분열하였습니다. 교회의 창문을 굳게 닫았습니다. 변화되는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 세상 사람들에게서 선포되었고, 교회의 재산은 빼앗기고, 교회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헤로데와 같은 어리석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교회는 오늘 복음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다윗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윗은 비록 죄를 지었지만 하느님께 진심으로 뉘우쳤습니다. 그는 모든 일을 하면서 거룩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영광의 말씀으로 찬미를 드렸습니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찬미의 노래를 불렀으며 자신을 지으신 분을 사랑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그의 힘을 대대로 들어 높이셨으며 그에게 왕권의 계약과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왕좌를 주셨습니다. 교회가 2000년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다윗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막과 광야에 들어가서 깊은 침묵 속에 하느님의 뜻을 찾았던 은수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기꺼이 나누어주고 수도자가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도와 건물로 보이는 교회가 아니라 관상과 묵상을 통해서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썩어 고목이 될 수밖에 없는 교회는 새로운 순이 돋아나고, 여전히 외롭고, 지친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21세기에도 다윗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평생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였던 마더 데레사, 아프리카에서 헌신하였던 이태석 신부님,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님이 있습니다. 21세기 교회를 이끌어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있습니다.

 

신앙의 길에는 늘 두 개의 깃발이 있습니다. 교만과 권력을 추구하는 헤로데의 깃발이 있습니다. 겸손과 회개 삶을 추구하는 다윗의 깃발이 있습니다. 선택은 우리의 자유입니다. 선택의 책임 또한 우리의 몫입니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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