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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묵상: 신앙과 퍼즐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05 조회수2,199 추천수0 반대(0) 신고

 

퍼즐은 어렵거나 깊은 사고를 필요로 하여 어떤 문제를 푸는 형식의 게임을 말합니다. 말은 문제를 푼다고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해결하는 것입니다. 형식은 게임 형식으로 돼 있지만 범위를 넓힌다면 상당히 광범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요즘 제가 새로운 일을 하면서 특히 어제 운전중에 떠오른 묵상이 있었습니다. 현실에서 제가 겪는 어려움이 신앙적인 묵상으로 접근해봤습니다. 여기서 겪는 어려움이라는 것은 소통의 어려움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할 수 있지만 그 수많은 어려움 중에서 어떤 게 가장 어려운 거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중에서 저는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깨닫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소통의 중요함보다도 소통의 장애가 얼마나 중요하지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업체에서 제가 가진 보잘것없는 지식을 전해주고 또 기업체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을 언급하면 그 문제점을 보완해서 해결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게 저의 일입니다. 특히 경남 창원에는 공단이 있는 지역이고 또 국방 관련된 기업들도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이 컴퓨터와 전산으로 이루어집니다. 국내장비도 우수한 장비가 많지만 특히나 이런 장비는 유럽이 강대국입니다. 특히 스위스와 독일이 이 분야에서는 상당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많는 장비를 국내 기업들이 수입을 해 국내 다른 산업 발전의 다른 동력원이 되어 주는 게 이런 기업의 특징입니다. 

 

예전 같으면 50명 정도의 인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도 지금은 그런 장비만 잘 구동시킬 수 있는 인적 인프라만 잘 구축하면 두세 명만 있어도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방문하는 업체는 국내 삼성과 엘지, 현대 자동차와 같은 반도체 소자 관련된 분야의 소재를 생산하고 일정 부분은 키트를 제작해서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분야입니다. 많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로는 지금은 핸드폰하면 국내 삼성을 제일 먼저 연상할 것입니다. 실제 스마트폰은 삼성이 만들지만 모든 게 삼성 자체의 힘만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삼성이 핵심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그걸 상품화하는 데 필요한 하드웨어는 다른 무수한 기업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회사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아니지만 이런 기업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느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첨단분야의 길을 가는 기업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기업들이 힘을 합쳐서 삼성이나 엘지와 같은 가전기업들과 협업을 하고 서로 상생하는 기업문화를 조성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지금 명실상부한 초일류국가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제가 하는 일은 그저 그런 기업에서 자기들이 운영하는 장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저는 기술자인 오프레이트가 아니기 때문에 그 장비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매뉴얼을 설명해 주는 역할만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어떤 부분에서는 그냥 일반적인 영어만 구사할 수 있으면 되는 문제도 있지만 특수분야는 다양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매뉴얼을 해독할 수 있습니다. 저는 특히 그런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 분야에 대해 현장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됩니다. 특히 요즘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고 첨단장비도 로봇이 다 제작하는 실정입니다. 로봇이 작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로 제어를 하고 제어된 프로그램에 따라기계가 작동하여 그 기계로 특수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각 분야에 일하는 사람들과 업무에 대해 상호 유기적으로 협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오랜 세월 학생을 지도한 사람이라 티칭의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당연히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도 요즘 새로운 일을 하면서 많이 느끼는 것입니다만 설명이 잘 이루어지지 안 될 때는 아주 힘들기도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 순간 유레카를 외치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일 전체의 공정이 다 꿰어지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구슬이 꿰어져 보배가 되듯이 말입니다. 저는 이걸 경험하면서 순간 어떤 신앙적인 묵상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묵상주제는 '신앙도 하나의 퍼즐 게임과 같지 않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작은 많은 일이 발생을 했습니다. 근데 그 일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것은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것은 전혀 성질을 달리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땐 그 사건이 다 별개의 사건처럼 여겨져서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이 된 문제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엇인가 하나씩 답이 찾아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연후에 어느 순간에는 '이제 퍼즐이 맞추어지는 것 같은데'라는 말을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나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같은 것에 많이 나오는 대사처럼 말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신앙이 무엇인가 하고 정의를 내려달라고 한다면 가톨릭 교리서에 나오는 일반적인 교리상의, 신앙의 정의를 별론으로 하고 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려워서 그렇다고 보기보다는 사실 단 하나로 정의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치 지리산 천왕봉을 올라가는 데 어느 코스로 가는 게 가장 멋진 코스인가 하는 질문과 같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천왕봉을 오르는 코스는 다양합니다. 사실 같은 코스라도 어떤 계절에는 좋은데 어떤 계절에는 별로인 코스도 있습니다. 신앙도 이처럼 같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앙에 대한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답은 있을지는 모르지만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가 적용되는는 게 당연할 것입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한다면 한방에서 말하는 개념으로 조금 비유를 해서 표현한다면 원처방을 토대로 해서 각 사람마다 그 사람 특유의 체질에 따라 약제를 뺄 건 빼고 더할 것은 더해서 그 사람의 체질에 맞는 처방으로 약을 지어서 복용하는 게 치유의 시간을 더 단축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제가 지금까지 생각한 것을 다시 정리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잘은  모르지만 지금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인입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신앙'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할 주제도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신심이 좋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인지 하고 고민을 했던 적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때로 시련과 역경 앞에서 좌절을 할 때도 있고 또 힘과 용기를 내어서 다시 매진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좌충우돌하면서 이리 넘어지기도 하고 저리 넘어지기도 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좀 더 성숙된 신앙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하는 것도 바로 우리가 하느님을 따라 가는 데 있어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입니다. 

 

이걸 퍼즐에 비유하면 이해가 좀 더 쉬울 것입니다. 우리가 풀어야 할 퍼즐은 바로 하느님을 만나거나 하느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의 한 형태가 바로 신앙이 될 것입니다. 그 하나하나는 우리의 눈에는 지금은 서로 관련이 없는 별개의 일일 수도 있을 겁니다. 또 다른 경우는 지금 우리의 눈에는 별개의 일처럼 일어난 것일 수 있지만 먼 미래 시점에서 만약 이게 하나의 퍼즐로 맞추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가정이 사실로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경우는 앞이 안개속을 해매는 것처럼 막연한 것처럼 보여 암담할 때도 있을 겁니다. 이건 퍼즐이 어떻게 맞추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막연할 수가 있을 겁니다. 만약 퍼즐이 맞추어진 상황에서 시간을 거슬러 소급해간다면 이 시점에서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결론이 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여정도 이런 면이 있을 것 같다는 묵상을 해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가 바로 퍼즐과 같은 것입니다. 이 문제는 문제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말장난 같은데 상당히 이해를 잘 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로서의 문제는 우리가 말하는 '문제점'과 같은 그런 문제이지만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라고 했을 때의 문제는 하나의 '숙제나 과제'와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이 개념을 십자가에 대입하면 십자가는 짐짝과 같은 문제가 아니고 우리에게 맡겨진 숙제라고 생각한다면 십자가를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일을 하면서 제가 아는 분야도 아닌데 완전히는 아니지만 퍼즐이 맞추어져 풀리는 경우가 우연의 일차였을까요? 아닙니다. 정말 끊임없이 고민을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을 하려고 하는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 것입니다. 퍼즐이 풀리고 난 뒤에 다시 퍼즐을 보게 되면서 한 생각이 있습니다. 평소에 그분들이 서로 영역은 다르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모든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져 돌아가기 때문에 평소에 서로 정보를 공유하려고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어떤 문제가 좀 더 잘 해결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것입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교훈 하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조직으로 구성된 조직의 한 일원으로서 존재합니다. 이 일원이 모여 하나의 작은 조직이 되고 이 조직이 모여 하나의 교회인 천주교 각 본당 공동체가 존립하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사례처럼 비단 어떤 특정 조직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이라는 공동체 조직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소통의 장애가 된다면 자기만의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조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각자 저마다 마치 하나의 퍼즐 게임을 주신 것과도 같지 않을까 하는 묵상을 해봅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신앙여정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각자 지금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머리를 싸매고 풀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어렵다고 하면서 포기 아닌 포기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시간이 흘러 어떻게 하다보면 맞추어지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지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단적으로 제가 세 가지의 경우를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돈독한 신심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두 번째는 자신에게 조금 버겁다고 생각해 하느님을 저버리려고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마지막은 그냥 시계추처럼 영혼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퍼즐도 그냥 고민만 한다고 해서 퍼즐이 맞추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고민을 하긴 하데 노력을 해야 합니다.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듯이 우리의 신앙도 퍼즐이 맞추어지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공백은 하느님이 메꾸어주시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자신이 그걸 메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바로 그렇게 됐을 때, 그때 우리가 몰랐던 신앙의 퍼즐이 풀리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퍼즐을 풀기 위해서 오늘도, 내일도 신앙의 레이스를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는 것이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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